개인신상·성향 파악해 등급 평가한 문서 유출…육군 측 “시범 적용 후 문제 있다고 봐 활용 안해”
최근 유출된 ‘간부 음주운전 사고 예방 위험 수준’ 문서를 제보한 아무개 간부의 말이다. 이 문서는 4월 중순 OO사단 소속의 한 여단이 만들었다. 해당 문서는 계급, 성명과 함께 위험 등급 평가를 담고 있다. 해당 문서는 모두에게 공개된 건 아니다. 그렇지만 비밀번호가 부대 공용 번호로 걸려 있어, 공용 비밀번호를 알 만한 사람은 누구나 볼 수 있다.
최근 군부대에서는 음주운전 예방에 적극적이다. 군 간부 음주운전 적발 사례는 조금씩 줄고 있지만 여전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2년 10월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4년간 간부(부사관·장교) 및 병사, 군무원 음주운전 적발 및 징계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총 1557건 음주운전이 적발됐다. 음주운전은 2019년 479건, 2020년 443건, 2021년 392건, 2022년 7월 기준 243건으로 해마다 조금씩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들어 음주운전을 심각하게 보는 사회적 인식이 확대되면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앞서의 문서를 만들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문서는 최초 OO사단에서 해당 여단으로 양식을 공유했다고 알려졌다. 육군 관계자는 “최초 OO사단에서 양식을 공유한 건 맞지만 취합하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해당 문서를 제보한 A 씨는 “고위험군에 대해 관리하는 표를 만들고, 또 이걸 자랑이라고 사단 병영문화혁신위원회에서 발표했다. 사단 참모장이 사단 예하 대대에서 즉시 시행하라고 했다”면서 “급하게 중대 등에서 종합하고 여단에 보고하던 중 여단장이 문제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일시 중지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육군 관계자는 “음주 관련 문제는 군복을 벗을 수 있을 정도로 처벌이 따르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안다”면서 “다만 한 개 부대가 시범 적용을 해봤는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결과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부대 별 내용 취합 자체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당 내용은 군 내부 이슈 등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 ‘캡틴 김상호’를 운영하는 김상호 씨가 공개했다. 김상호 씨는 “해당 문서가 문제인 건 단순히 간부 음주량만 파악한 게 아니라 성향 파악까지 했다는 게 문제다. 문서를 보면 비고란에 ‘가정 문제(독박육아)’, ‘지각 이력’ 등이 있다는 이유로 음주운전 중위험군으로 분류했다. 괴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모두 음주운전을 할 잠재적 범죄자냐고 묻고 싶다”고 말했다.
A 씨에 따르면 더 큰 문제는 해당 문서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A 씨는 “해당 문서가 외부적으로 공개된 건 아니지만 부대 공용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 부대 내에서 알 만한 사람은 볼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개인신상이나 민감한 정보가 담겨 있는 문서를 만들고 이렇게 관리한다는 게 씁쓸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육군 관계자는 “해당 문서가 공개적으로 올라온 건 아니다. 지휘관 참고 자료로 써놓은 게 유출이 된 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부대 내 음주운전 관리는 이것만이 아니다. 군 간부 사이에서는 더 큰 문제로 ‘음주문화 근절 캠페인’을 꼽는다. 부대 앞에서 금요일 등 음주 가능성이 높아질 때 간부들이 부대 앞에서 ‘오늘 음주는 가족 간 이별’, ‘음주운전 안 돼’ 등의 피켓을 들고 서 있는 행사다. 이 행사는 군 간부 사이에서 큰 비난 대상이 됐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군 간부 B 씨는 “춥든 덥든 외부에 서서 피켓을 들고 있어야 한다. 그냥 현수막, 전광판에 띄워 놓아도 되고 인형을 세워도 되는데 사람이 서서 피켓을 들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뭐냐”면서 “일반 회사에서 일과 끝나고 회사 문 앞에서 서서 피켓 들고 있으라고 하면 어떤 말이 나오겠냐. 한국 군대가 군인을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 정까지 없애는 행사였다”고 말했다.
김상호 씨는 한국 군대 특유의 '지휘관 무한 책임'이 이상한 관리 방식과 행사를 만들고 있다고 관측했다. 김 씨는 “최근 군에서 음주 사고 예방 체크리스트라는 게 돌았는데 ‘부대원들의 적정 주량을 파악하고 있는가’, ‘회식 전 참석자 귀가 대책은 강구됐는가’ 등이 적혀 있었다. 술 한잔 하고 싶어도 행정이 발동하는 모습”이라면서 “개인사고는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부대 내에서 음주 사고가 터지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지휘관이 책임지니 어처구니없는 행정과 통제를 낳고 있다. 결국 획기적으로 자율과 책임을 개인에게 부여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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