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송유진 기자 eujin0117@ilyo.co.kr |
‘그 고속도로에선 대체 무슨 일이….’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를 동서로 관통하는 ‘옐로헤드 하이웨이 16’은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눈물의 고속도로’라고 불린다. 근사한 호수와 만년설이 쌓인 설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건만 대체 어떤 사연이 있기에 이런 슬픈 이름이 붙은 걸까. 놀랍게도 이곳이 ‘눈물의 고속도로’라고 불리는 이유는 연이어 발생한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 때문이다.
지난 42년 동안 이 고속도로 위에서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들의 수는 무려 43명. 이 가운데 일부는 처참하게 살해된 채 고속도로에서 떨어진 한적한 숲속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으며, 일부는 시신은커녕 여태 행방조차 묘연한 상태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경찰의 안이한 태도다. 40명이 넘는 여성들이 실종될 때까지 이렇다 할 증거나 용의자를 전혀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희생자들 대부분이 토착 원주민이기 때문에 경찰이 수사에 게으름을 피웠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번 실종 사건은 캐나다 전역에 ‘인종 차별’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실정이다.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눈물의 고속도로’ 실종 사건은 대체 어떻게 벌어졌으며, 왜 하필 이 구간에서만 여성들이 사라지고 있는 걸까.
브리티시 콜롬비아의 프린스 조지와 프린스루퍼트를 잇는 ‘하이웨이 16’의 약 1347㎞ 구간.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이곳이 ‘공포의 구간’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는 데다, 1000㎞가 넘는 긴 구간에 달하도록 인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고속도로 곳곳마다 개발이 덜된 벌목 도로 구간이 연결되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샛길로 빠져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러니 여성들이 혼자서 고속도로를 걸어 다닌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될 터. 하지만 실제 이곳에서 실종된 여성들 대부분은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고속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돼 더욱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여성들이 ‘공포의 구간’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던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실종된 여성들 대부분이 인근 마을에 거주하는 토착 원주민들이라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워낙 한적한 곳에 사는 데다 대부분은 자가용을 구입할 형편이 못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도로로 나와 차를 얻어 타고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지역 여성들 사이에서는 히치하이킹은 흔한 일이었으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범죄의 표적이 됐던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실종여성조사위원회’의 크리스 프리몬드 대변인은 “마을은 멀리 떨어져 있고, 고속도로는 한참을 길게 뻗어 있다. 이곳에서는 라디오도 안 나오고, 휴대전화도 안 터진다”라며 “이런 곳에서는 누구나 나쁜 생각을 품기만 하면 쉽게 희생자를 찾을 수 있다. 가령 희생자를 차에 태우고 한 시간을 달려서 시신을 협곡에 던져 버리면 아무도 찾을 수 없다”며 심각성을 나타냈다. 지금까지 ‘눈물의 고속도로’에서 실종되거나 살해된 여성들은 1969년 글로리아 무디(27)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43명에 달한다. 모두 10~20대의 젊은 여성들이었으며, 이 가운데는 14~15세 소녀들도 있었다.
희생자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첫째, 마지막으로 목격된 모습이 홀로 귀갓길에 오르는 모습이었다는 점, 둘째 실종된 장소가 고속도로 인근이라는 점, 셋째 거의 대부분이 이뉴잇족 원주민 소녀들이라는 점이다.
가장 최근 실종된 여성은 지난해 5월 고속도로 인근에서 사라진 매디슨 스콧(20)이었다. 호숫가에서 열린 캠핑 파티에 참석한 후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진 것. 당시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스콧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는 훅스백 호수 인근이었으며, 시간은 새벽 3시 무렵이었다.
실종된 지 며칠 후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당시 야영지에서 발견된 것이라곤 스콧의 텐트와 픽업트럭뿐이었다. 1년이 지나도록 묘연한 딸의 행방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스콧의 부모는 현재 사례금 10만 달러(약 1억 1500만 원)를 건 채 애를 태우고 있다.
이와 관련, <밴더후프 오미네카 익스프레스>의 한나 화이트 기자는 “스콧의 실종으로 인해 지역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온 마을이 아직도 충격에 휩싸여 있고 모두들 혼란스런 상태다”라고 전하는 한편 “스콧은 똑부러진 여성이었다. 술에 취해서 호수에 빠져 익사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녀의 성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라며 단순 사고사로 치부하는 일부의 의견에 반대를 나타냈다. ‘눈물의 고속도로’ 실종사건과 연결해 생각할 경우 그녀가 연쇄살인범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지금까지 고속도로에서 실종된 여성들의 시신이 발견된 경우는 여러 차례 있었다. 가령 1974년 실종됐던 14세 소녀 모니카 이그나스는 실종 한 달 만에 자갈 채굴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으며, 1988년 실종됐던 알베르타 윌리엄스 역시 실종된 지 한 달 만에 죽은 채 발견됐다. 이밖에도 1994년에는 6개월 사이 연달아 실종됐던 이뉴잇족 15세 소녀 세 명의 시신이 길가에 버려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시신이 발견된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여태껏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행방불명인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경찰의 늑장수사가 한몫을 했다고 믿는 지역민들이 많은 것이 사실.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경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며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그 이유가 피해자들 대다수가 백인이 아닌 이뉴잇족 여성들이기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 2005년 실종된 타마라 칩맨(22)의 숙모인 로어나 브라운은 “사람들은 백인 소녀들의 실종 사건에 대해 더 신경을 쓴다. 때문에 실종자 가족들은 자신들이 진지하게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한 시점을 살펴보면 피해자 가족들이 이런 의심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002년 6월 백인 여성인 니콜 호어(25)가 실종된 후부터 경찰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언니네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 프린스 조지 인근의 주유소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던 호어는 그후 행방이 묘연해졌으며, 여태껏 생사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 호어가 사라진 후부터 ‘하이웨이 16’의 연쇄 실종 사건은 전국적인 뉴스가 됐으며, 경찰 역시 수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비난을 의식한 듯 경찰은 2005년 가을, 이뉴잇족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을 딴 26명으로 구성된 특수수사팀인 ‘이파나(E-Pana)’를 결성했다. 수사팀은 먼저 1994년 시신으로 발견된 15세 원주민 세 명의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으며, 조사는 곧 60년대 실종 사건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너무 늦은 걸까. 경찰의 수사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은 채 답보 상태를 거듭했고, 여태껏 이렇다 할 용의자 한 명 수사선상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경찰이 구체적인 행동을 보였던 경우는 지난 2009년 프린스 조지에 사는 한 남성의 집을 급습했던 것이 전부였다. 당시 이 남성은 호어가 실종된 주유소 인근에서 소변을 보기 위해서 잠시 차를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찰은 남성의 집에서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했다.
▲ 캐나다 ‘옐로헤드 하이웨이 16’에 설치된 ‘눈물의 고속도로 표지판’. 여성에게 히치하이킹을 하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적혀 있다. |
이처럼 경찰 수사가 진척을 보이지 않자 몇몇 개인들은 답답한 나머지 직접 나서서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프린스 조지에 거주하는 토니 로미언의 경우, 웹사이트(highwayoftears.ca)를 개설해서 실종자들의 사진과 함께 마지막 목격 장소 등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가 하면, 전직 기마경찰대이자 현재 밴쿠버에서 사립탐정으로 활동하고 있는 레이 마이클코는 직접 나서서 실종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그는 “나는 원주민들과 잘 통한다. 경찰은 아니지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파나’ 팀을 총괄지휘하는 브루스 훌란은 “우리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희생자 가족들에게 경찰에 대한 신뢰를 보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사건을 보면 현재로선 경찰을 곧이곧대로 믿기란 사실 어려워 보인다. 여성들 스스로 다음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길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