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 직원이 임시 스막에서 휴대폰 150여 대 훔쳐…보안 시설 갖추지 않은 삼성전자 비판 목소리 일어
최근 평택 고덕산업단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절도 피해를 당한 협력업체 직원 A 씨의 말이다. 현재 A 씨 외에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스막 룸’(Smock room)에서 절도를 당했다는 피해 신고가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피해자 사이에서는 이번 절도 피해가 삼성전자 과실도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23년 3월 경기 평택경찰서 등에 따르면 삼성반도체 공장 스막 룸에서 휴대전화 도난을 당했다는 신고가 잇따라 접수됐다. 스막 룸은 반도체 공장 라인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공간이다. 작업자는 이곳에서 방진복으로 갈아입는다.
이번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스막 룸은 주로 협력업체 직원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소위 ‘본 스막’이라는 곳을 이용하는데, 본 스막이 꽉 차자 임시 스막을 만들어서 운용 중이다. 임시 스막은 배관, 전기, 반도체 관련 등등 매우 다양한 협력업체 직원들이 하루 1만 명 넘게 반도체 공장으로 투입되며 사용하는 공간이다.
피해가 일어난 곳은 삼성 P3 건물 반도체 사업장이었다. 이곳 4층 임시 스막은 임시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로커 혹은 물품 보관함이나 귀중품을 맡길 만한 관리 인원도 없었다고 한다. 큰 공간에 옷걸이만 있고, 탈의실인 만큼 CC(폐쇄회로)TV도 없기 때문에 절도범이 물건을 훔치기 너무 좋은 곳이었다. 절도범 B 씨는 이곳에서 휴대전화, 에어팟 등 전자기기, 귀중품, 현금, 심지어 사내 식당 식권까지 닥치는 대로 털기 시작했다.
B 씨가 본격적으로 절도에 나선 건 올해 초로 추정된다. 그때부터 협력업체 직원 사이에서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업무 때문에 휴대전화를 아예 안 들고 출근할 수도 없어 출근한 뒤 스막 룸에 둔 옷 사이에 넣어 놓고 현장에 들어가야 했는데 그때마다 털어갔기 때문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범인 B 씨는 3시부터 5시 사이, 직원들이 현장으로 일하러 들어가는 시간대를 노렸다고 한다. B 씨는 해당 시간대 스막 룸에 사람이 거의 없는 점을 알아낸 뒤 여유롭게 훔쳤다고 전해진다. 스막에서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협력업체 직원 C 씨는 직접 잠복을 해보기도 했다. C 씨는 “하도 열받아서 가끔 잠복하고 지켜보면 3시부터 5시는 정말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당초 수사기관 등에서는 휴대전화 도난 신고 사례가 너무 많아 공범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경찰이 종합한 피해 사례에 따르면 B 씨가 하루 동안 훔친 최대 휴대전화 수는 12대였기 때문이다. 하루 만에 혼자 다 훔쳤다기에는 그 양이 너무 많아 공범이 있었을 것으로 본 것이다.
결국 피해 사례가 쌓이면서 평택경찰서가 수사력을 집중해 5월 7일 B 씨를 체포하게 됐다. CCTV 등을 토대로 남성 동선을 추적한 뒤 휴대전화를 중국으로 보내려던 B 씨를 잡아낸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은 이미 훔친 휴대전화 대부분을 중국으로 팔아넘긴 뒤였다고 한다. 경찰은 미처 B 씨가 중국으로 넘기지 못한 휴대전화 7대만 확보해 둔 상태다. 경찰에 따르면 B 씨는 휴대전화 털이를 계속하려면 임시 스막에 접근해야 해 이곳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여러 곳을 오가며 일을 했다고 한다.
경찰에 신고했던 직원 C 씨는 “경찰은 혼자 들고 걸어 나가기엔 휴대전화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하루에 수십 대씩 오가는 자재 차량을 이용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그런데 B 씨는 대범하게도 안전모 안에 휴대전화를 숨긴 뒤 걸어서 보안검색대를 여러 차례 오가며 빼돌렸다고 한다.
신고된 피해 사례를 종합해 보면 휴대전화 피해액만 최소 5000만 원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것도 피해자 신고를 종합해서 나온 결과일 뿐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접수된 피해 신고만 150건 정도인 터라 실질적으로는 200대 이상이 되지 않겠냐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한다.
A 씨는 신고하지 않은 사람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A 씨는 “사실상 탈의실에서 절도를 당한 상황인 데다, CCTV도 없어 찾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 신고를 안 한 사람도 많다. 워낙 도난이 잦다는 생각이 퍼져 있어서 경찰 신고해 봤자, 어차피 찾기 어렵다고 생각해 단념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경찰도 아직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가 많을 것으로 보고 임시 스막 등에 ‘P3 임시스막 휴대전화 연쇄 절도 피의자를 검거했다. 2023년 1월 1일부터 4월 25일까지 휴대전화를 도난 당하고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를 찾는다’고 걸어둔 상태다.
문제는 B 씨가 피해자들에게 보상해 줄 여력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경찰에 따르면 B 씨는 휴대전화를 훔쳐서 판 돈을 도박에 탕진한 뒤라고 전해진다. C 씨는 “휴대전화를 산 지 3주밖에 안 돼 도난을 당했는데 보상을 받을 길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삼성전자가 보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C 씨는 “삼성전자가 임시 스막에 제대로 된 보안 시설이나 하다못해 사물함이라도 갖다 놨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아니냐”면서 “하루이틀도 아니고 4개월 넘게 털어가는데 보안 검색에서 잡지도 못했다. 삼성전자 책임도 큰 만큼 피해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인 만큼 예의주시하고 있다. 수사 결과가 발표되면 그때 입장을 정리해서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A 씨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A 씨는 “최소한 스막 털이가 한창이라고 원성이 높던 3월에는 뭔가 조치가 있어야 했다. 휴대전화 외에도 현금, 식권, 귀중품 등을 털린 사람들이 많고 이들이 신고하기도 어려워 정확한 피해 규모 파악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면서 “삼성전자 임직원이 쓰는 본 스막에서는 이런 일이 없는데, 협력업체 직원이 쓰는 임시 스막은 신경을 안 써주니 우리만 이런 피해를 겪은 것 아니냐”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정확한 피해 규모 추산이 아직 안 된 만큼 경찰 수사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답변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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