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율 따져 대출 알선 ‘로스닥’, 소송금융 서비스 ‘로앤굿’, 판결 결과 예측 ‘엘박스’ 제재 검토 중
이 밖에도 엘박스 등 정보기술(IT)을 접목한 ‘리걸테크’(Legal Tech)가 활성화되고 있다. 기술적 변화에 가장 느리게 반응하는 게 법조계라고 하지만, 현행 법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사각지대가 발생했고 그 때문에 기존 변호사 업계와 갈등이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변협 "로스닥, 법 위반 소지"
최근 대한변협은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스닥’에 대해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법무부에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월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 로스닥의 사업 구조가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취지다.
로스닥은 기존에 없던 사업모델을 내세운 리걸테크 기업이다. 고객이 사건요지서를 작성해 의뢰하면 로스닥이 자신들이 모은 승소 사례 빅데이터 AI를 통해 승소할 가능성을 도출해낸다. 이 승소율을 기반으로 대출을 알선해준다. 소송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고객에게 회사가 도출해 낸 승소율이 담보가 돼, 금융기업과의 대출을 연동해주는 것이다. 승소율이 높으면 대출금리가 낮아지고, 한도는 높아지는 방식이다.
로스닥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로스닥과 연계된 금융기관은 30여 곳. 웰컴저축은행을 포함한 저축은행 16곳과 캐피털사 5곳, 대부업체 및 크라우드펀딩 대출 8곳 등이다. ‘승소하면 패소한 측의 변호사 비용 부담으로 대출상환이 가능하다’는 문구를 홈페이지 전면에 내세워 홍보하고 있다. 로스닥 운영사 측은 소송비용 대출 알선이 힘없는 법률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식 서비스는 7월부터 예정돼 있다.
하지만 AI 판단 결과를 담보로 잡는 것이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스쿨 출신의 한 변호사는 “기존에 로톡 등 여러 리걸테크 기업들이 판결문을 토대로 유무죄, 양형 등을 예상하는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소비자 오인 소지가 있어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며 “그렇기에 로톡도 서비스를 중단한 것인데, 승소율을 가지고 대출까지 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로앤굿'도 예의주시
로앤굿도 법조계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거론되는 곳이다. 2020년 창업한 로앤굿은 현재 여러 변호사로부터 제안서를 받고 상담할 수 있는 법률상담과 변호사를 선임할 때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는 소송금융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투자업계로부터 100억 원 넘는 투자금을 유치했을 정도로 주목받기도 했다. 국내 최초로 소송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승소 가능성이 높은 의뢰인에게 변호사 비용(착수금)을 지급하고 최종 승소 시에만 약정금을 상환하는 형태다. 다만, 패소할 경우 이는 소송금융 회사의 손실로 처리된다.
이미 영미권에서는 20여 년 전 처음 출시된 사업모델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불법 소지가 있다는 게 대한변협의 판단이다. 현행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승소율을 진단하는 것은 금지된 상태다. 대한변협의 한 간부는 “AI가 판단한 승소율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알선하는 동시에 변호사를 연결해주거나, 승소 가능성을 토대로 금융상품을 연결해 수익을 내는 사업 모델은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법무부에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 대응을 요구했다”고 귀띔했다.
5월 9일에는 로앤굿 대표 관련 논란에 대해 논평을 내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대한변협은 9일 로앤굿 민명기 대표(변호사)가 청년고용지원금 1억 2000만 원을 부정수급한 혐의로 기소된 것에 대해 “사설 플랫폼을 위법하게 운영한 것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공식논평을 냈다. 변협은 2022년 민 대표에게 정직 1년 처분을 내린 바 있는데, 기소 후 추가논평까지 낸 것을 두고 ‘로앤굿’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로앤굿 측은 “대한변협이 로앤굿이 신규 사업자라는 점을 문제 삼아 시장 진출을 방해하고 있는데 그런 기준이면 어떤 회사가 새로운 기술을 시도할 수 있겠냐”고 반발했다.
하지만 대한변협 측은 “리걸테크라고 하지만 결국 소송을 유도하고 그 과정에 ‘금융상품’을 넣어 수익을 내는 모델이 올바른 것이냐”며 “로스닥과 로앤굿처럼 금융상품을 끼고 있는 사업모델은 문제 여지가 있기에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가이드라인 세워줘야"
다른 법률 플랫폼 '엘박스'도 변협의 제재 검토 대상에 올랐다. 2019년 5월 김앤장 변호사 출신인 이진 대표가 창업한 엘박스는 판결문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중에서 대한변협이 지적하는 부분은 엘박스의 AI 판결 결과 예측 서비스다. 엘박스가 보유한 197만 건의 법원 판결문에 AI 기술을 접목해 판사별 판결 성향 분석부터 판결 결과를 예측하는 서비스다. 이 부분이 로스닥과 같은 기준으로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리걸테크의 맏형 격인 '로톡'도 대한변협과 여전히 갈등이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와 법무부가 신기술을 접목한 산업 육성 및 규제 개혁 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대한변협이 법률 로톡 가입 변호사를 징계한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의 처분 심의 기간도 계속 연장되고 있다. 앞서 대한변협은 로톡 가입 변호사 9명을 징계했는데, 법무부 징계위는 이에 대한 이의신청 사건 결정을 3개월 더 연장해 6월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소형 로펌의 한 대표 변호사는 “판결문 검색이나 형량 예측은 분명 도움이 되는 기술이지만 어느 정도의 통제는 또 필요한 것 같다”며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이슈인 터라 정부가 나서서 윤리적인 부분까지 고려한 가이드라인을 세워줘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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