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같다면 금태섭·김종인 등과도 함께할 수 있어…장혜영 의원 원내대표 선출 비토는 비겁한 선택”
류호정 의원은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정의당 소속 의원(강은미 배진교 심상정 이은주) 중 단 1명도 장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류 의원은 장 의원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를 계기로 당의 미래를 둘러싼 계파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란 분석이다. 정의당은 6월말 자강론과 신당론 중 하나를 당의 노선으로 택할 예정이다. 이정미 대표 등 정의당 주류 세력은 내부혁신을 뜻하는 ‘자강론’을 주장한다. 반면 류호정 의원은 ‘정의당 해체 후 신당 창당’을 외치는 소장파로 꼽힌다. 일요신문이 5월 10일 류 의원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정의당 현 상황을 진단해달라.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멈춰 서 있는 상태다. 재창당 노선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주류 세력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 상황에 이르게 된 건 조국 사태 등 몇몇 사건이나 정치적 변곡점 때문이 아니다. 당이 긴 시간 동안 변화하지 않은 채로 있었고 그 결과 당이 침체됐다. 큰 책임은 지도부에 있겠으나, 당의 안정 때문에 내부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지도부와) 함께 머물러 있었던 것이 크다. 우리가 안주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 내외부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할 말을 했었어야 했다.”
―당이 왜 변화하지 못했을까.
“거대 양당은 일거수일투족을 언론에서 다루면서 비판과 피드백을 받는다. 반면 정의당은 언론에서 실시간 취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변화 없이 머무르기 쉽지 않았나 싶다. 물밑에서 각각의 정파들이 협상하고, 정해진 결과대로 표결한 지도 오래됐다. 이제는 공개적으로 다양한 생각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신당론을 주장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자강론 내용을 보면 그동안 해왔던 거 그대로다. △노동 중심 정당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당 △현장으로 가는 정당 등이다. 3년 전에도, 8년 전에도 했던 이야기다. 더 열심히 하자는 말도 항상 해왔던 거다. 하던 대로 해서는 침체를 극복할 수 없다. 두렵고 불안할지라도 걸어보지 않은 길로 가야 한다.”
―신당의 청사진을 들려줄 수 있나.
“계획이 있기 한데 아직 공개하긴 이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세부적인 부분을 보고 있다. 정리가 다 되면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재창당이란 당명만 조금 바꾸고, 강하게 다짐을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신당 창당 정도까지 가야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4월 15일 장혜영 의원 등과 함께 정치그룹 ‘정치유니온 세 번째 권력’을 출범했다.
“장 의원은 21대 국회 입사 동기이자, 가장 가까운 의원이다. 평소 사적으로 의견을 나눌 기회가 많았다. 진보 정치나 정의당이 가야 할 길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비슷했다. 안주가 아니라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둘이서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정말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시민들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조성주 정치발전소 이사장 등 생각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만들게 됐다.”
―정치그룹 출범 배경은 무엇인가.
“시민들이 좋은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기대하도록 하고 싶다. 최근 시민들이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좋은 정책들이 국회를 통과해서 내 삶을 실질적으로 바꿔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늘어나는 무당층 비율만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다. 각 정당에 좋은 정책이 없어서가 아니다. 정치권이 갈등을 조율하고, 대화와 타협해서 긍정적으로 바꿔나갈 것이란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그룹의 내년 총선 목표는.
“거대 양당제 폐해가 크다. 정치혐오 원인 중에 양당제가 있다. 정책 경쟁 없이, (반사이익을 얻고자) 서로 비난만 한다. 이기면 여당, 져도 제1야당인 구조다. 시민들을 무한경쟁에 내몰고 있으면서, 정치는 왜 경쟁하지 않는가. 좋은 정책을 갖고 경쟁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내년 총선에서 제3, 4당이 생겨서 정치가 더 나쁜 길로 가지 않도록 적절히 견제하는 국회가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정치 불신도 서서히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도 제3지대 신당 창당 추진을 공식화했다.
“세 번째 권력과 비슷한 지점들이 있다고 봤다. 정쟁만이 난무하는 정치 비판한다. 좋은 경쟁자라고 생각한다. 서로 좋은 정치를 향한 경쟁을 해나갔으면 좋겠다.”
―금태섭 전 의원·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등과도 함께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함께할 수 있다는 걸 지금 이야기하는 건 좀 이르지 않을까 싶다. 다만 큰 틀에서 취지 공감하는 분들이라면 최대한 많이 만나고 결합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금태섭 전 의원,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등) 생각을 같이 할 수 있다면 누구든 함께할 수 있다.”
―진영 연대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세 번째 권력’에서 진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중도나 보수가 되려는 것이냐는 오해를 받는다. 제3지대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바뀌는 것은 신념이나 이념이 아니다. 우리가 발의한 법안들의 통과 가능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 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것을 할 수 있다면 누구든지 만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처절하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의당 현 상황과도 맞닿아 있어 보인다.
“주변에서 ‘똑똑한 척, 고고한 척 있냐’라며 정의당을 ‘샌님’이라고 표현한다. 당이 대변하고자 하는 약자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럽고 치사한 일을 당한다. 그런데 정의당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더 처절하게 일했는가. 법안 발의에 필요한 최소 의원 정족수가 10명이다. 정의당 자력으로 발의조차 못 한다. 통과시키는 건 더욱 어렵다. 그래서 법안 발의에만 의의를 두는 경우가 있다. 발의한 법안을 통과시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그러려면 정의당을 큰 그릇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진교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관례를 깼지만, 순서가 됐는데 안 해줬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다. 장혜영 의원은 2020년에도 원내대표 내정돼 있었는데, ‘다음번에 할 수 있지 않냐’라며 양보를 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다음이 없게 됐다. 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다 똑같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다른 목소리를 두려워한다. 정의당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비겁한 선택이고, 하던 대로 하는 선택이다. 전 이미 해봤던 길을 다시 가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고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해서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원내대표 선출 전말을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장 의원과 저를 향해) ‘어려서 잘 모른다’고 실제 말해놓고 당내 우려와 걱정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장 의원은 원내부대표, 원내대변인, 정책위의장 등을 역임하며 능력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분명한 전문가고 유능한 국회의원이다. 장 의원이 원내대표를 맡았어야 한다. 그러면 30대 원내지도부를 구성해서 변화와 도전을 시작했다고 시민들께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당 소속 의원(강은미·배진교·심상정·이은주) 중 단 1명도 장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을 평가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말로 생기는 논란이 너무 많았다. 시민들에게 정치 피로감을 높였다. 그래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무당층, 혐오층이 더 많아지지 않았나 싶다. 대통령은 갈등 정치보단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타협해야 하는 포용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문재인 정부를 탓하는 시기는 지났다. 스스로 정치 능력을 증명하셔야 할 때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영수회담을 해야 한다고 보나.
“만나야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정치인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대통령은 그걸 하지 않고 있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만나면 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버리셨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 그림자만 붙잡고 정치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와 노조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불법을 단속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건 윤석열 정부에서 떨어진 지지율을 올리고자 노조 혐오 프레임을 갖고 그림을 그린 것이다. 지지율 올려보겠다는 얄팍한 그림 때문에 (노동자가) 죽음에 이르게 됐다고 생각한다. 1000여 명 소환 수사를 했다. 불법을 단속하겠다고 하면서 하도급 문제 등 노조가 요구하는 것에 대해선 개선 의지를 보여준 적이 없다. 편향과 탄압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일이 없었다면 죽지 않을 분이다. 평범하게 4인 가족을 꾸려나가던 노동자였다. 무리한 수사 속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끝없는 노동 혐오에 대해서 돌아보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4월 27일 야권은 국회 본회의에서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특별검사 법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당초 패스트트랙에 반대하지 않았나.
“반대하다가 찬성으로 갑자기 뒤집은 것이 아니다. 검찰 수사가 잘 진행됐으면 특검법까지 오지 않아도 됐는데, 검찰청 항의 방문을 통해 (수사가) 잘 이뤄지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국민의힘도 국민적 공분이 일어난 사안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었다. 국민의힘이 법사위를 계속 파행시켰다. 그래서 남은 것이 패스트트랙밖에 없게 됐다.”
―2019년 민주당과의 패스트트랙 연대 뒤 정의당이 받아 든 결과는 비례 위성정당 창당, ‘조국 사태’ 후폭풍 등이었다.
“지금 패스트트랙은 2019년과 다르다. 정의당이 입장을 갖고 스스로 판단을 한 것이다. 선거 제도와 거래하지 않았다. 2019년에 거래 후폭풍을 겪었다. 왜 같은 선택을 다시 하겠나.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각각의 법안들을 다룰 것이다.”
―최근 김건희 여사가 대선 후보 시절 약속했던 ‘조용한 내조’에서 벗어나 ‘광폭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대선 기간 중에 각종 논란과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본인 스스로 활동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걸 깬 거다. 약속을 어겼다는 점도 비판받을 만하지만, 영부인 활동 그 자체로 이상한 건 아니다. 국민들도 활동하는 것만으로 뭐라고 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활동을 이어나갈 거면, 공적 시스템 안에서 활동했으면 좋겠다. 대통령실 참모들이 어영부영 역할을 부여받으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지 않나. 제2 부속실 폐지 공약 때문에 못 하고 있다면, 공식적인 팀이라도 설치해야 한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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