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본격화했지만 인수 후보군 잇따라 ‘손사래’…가격 조정 등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국적 원양 선사인 HMM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세계로 화물을 운반할 수 있는 장거리 수송 능력을 갖춘 해운물류기업이다. 선복량(해운 공급 능력) 기준 세계 컨테이너선사 순위 8위에 해당한다. HMM의 2022년 총 매출액은 18조 5868억 원을, 영업이익은 9조 9455억 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 대비 35% 증가한 수치로 역대급 실적이다.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매각을 추진할 적기로 판단한 배경 중 하나다.
그런데 마땅한 인수 후보군이 나오지 않고 있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고려되던 포스코그룹과 현대차그룹은 HMM 인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HD현대중공업 역시 인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한해운 등 다수 해운계열사를 보유한 SM그룹은 지난해 6월까지 약 1조 원의 자금을 들여 HMM 지분을 5.52%까지 사들였지만 이후 주식 가치가 절반 가까이 떨어지면서 상당한 손실을 기록했다. SM그룹은 지분 인수를 놓고 경영권 인수가 아닌 ‘투자 목적’이라고 못 박은 상태다.
HMM이 시장에서 인기가 없는 이유는 몸값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현재 40.6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지분 가치는 약 4조 원이다. 게다가 영구채 이슈도 있다. 양측이 보유한 2조 6800억 원가량의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모두 보통주로 전환할 경우 산은과 해진공의 보유지분은 71.7%까지 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감안하면 매각 대금만 몸값이 최대 1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구채의 중도상환이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HMM이 보유한 현금으로 영구채를 중도상환 후 남은 현금도 배당으로 돌릴 경우 경영 프리미엄을 더하더라도 매각 대금이 낮아진다.
더 큰 문제는 HMM 외부 상황이다. 해운업황이 침체 국면에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컨테이너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5월 5일 기준 998.29다. 지난해 1월 사상 최고치인 5109.60을 기록한 것에 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2017년 국내 1위의 해운기업이었던 한진해운이 파산절차에 돌입할 당시 SCFI는 900 부근에서 머물렀다. 물류업계 한 관계자는 “컨테이너 하나당 2만 달러 가깝게 치솟았던 운임이 현재 2000달러 미만으로 추락했다. 현장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량이 넘쳐서 못 실었는데 지금은 컨테이너 물량이 지나치게 줄었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말했다.
완제품이나 중간재를 운송하는 컨테이너선은 글로벌 경기와 국내 무역 수출량 변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국내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는 1년 사이 수출액이 40%가량 급감했고 대중국·베트남 수출액도 올해 1분기 30%가량 하락했다. 그나마 곡물이나 광석 등을 운반하는 벌크선은 중국 리오프닝의 수혜를 입었고 발틱운임지수(철광석, 곡물 등 원자재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글로벌 지수)도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지만 HMM의 벌크선 매출 비중은 아직 6% 수준이다.
보호무역주의의 강화도 악재다. 이휘영 인하공업전문대학 항공경영과 교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무역장벽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점도 불안한 요소”라며 “미중 패권경쟁으로 RCEP이나 CPTPP 등 블록이 생성되고 있고 서로 관세와 보복관세를 부과하려는 무역의 냉전화가 일어나면 교역과 해상운송이 필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난 2월에 낸 보고서에서 HMM의 올해 영업이익을 전년 대비 98% 감소한 1629억 원으로 예상하며 2분기부터 적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해외 선사와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머스크를 누르고 1위로 올라선 스위스 선사 MSC그룹은 5월 11일 기준 750척을 운용하며 492만 7783TEU(길이 20ft의 컨테이너 박스 1개를 나타내는 단위)를 공급 중인 상황에서 신규로 124척(164만 3832TEU)을 발주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73척(80만 7677TEU)을 공급중인 HMM도 공급량의 33%에 달하는 26척(26만 5027TEU)을 신규 발주한 상태지만 전체적인 물량에서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구교훈 배화여대 국제무역물류학과 겸임교수는 “향후 3년간 현존하는 선대의 30%가량이 새롭게 충원될 예정이다. 근데 물동량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 감당하기 어려운 경쟁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며 “HMM이 반복적으로 매각을 미루다가 시기를 놓친 셈”이라고 말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육·해·공을 아우르는 종합물류기업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MSC그룹, 머스크, CMA CGM그룹, 하파그로이드, 에버그린 라인 등 HMM보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글로벌 대형 선사들은 이미 1~2년 전부터 종합물류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구교훈 교수는 “글로벌 선사들은 전투적으로 항공이나 통관 회사를 설립하고 인수하며 영역을 늘리고 있다. 해상뿐만이 아니라 엔드 투 엔드 물류 서비스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HMM은 유독 해운만 고집하고 있는데 이처럼 리스크가 분산이 안 되면 업종이 침체기를 맞이했을 때 한진해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격을 낮추더라도 매각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이 인수 매물로 나온 상태에서 표류하고 있으면 중장기 전략을 세울 수가 없어 경쟁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하락한 업황이 반영이 안 된 상태에서 높은 매물가로 나왔으니 매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고 몸값을 내려서라도 하루 바삐 매각을 성사시켜 중장기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 관계자는 “영구채 이슈와 현재 주가 이슈 등을 고려해서 내부적으로 협의가 진행 중이다.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지 아직 구체적으로 나온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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