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김만배 이화영 이한성 모두 동해서 활동…‘제2 대장동 될라’ 현지 우려 목소리 커
“착각은 자유, 망상은 해수욕장.”
강원도민들 사이에서 유명한 격언이다. 강원도 동해시 소재 망상 해수욕장이 영동에서 어느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지만 망상 해수욕장 인근엔 이렇다 할 관광 인프라가 마련돼 있지 않다. 동해 시민들은 “관광지로 개발할 경우 망상 해수욕장은 엄청난 시장성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문순 전 강원지사는 망상지구를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하며 개발 의지를 불태웠다. 최 전 지사 역점 사업 중 하나였다. 사업 기간은 2013년 2월 4일부터 2024년까지다. 사업 기간이 만료에 가까워지는 가운데, 망상지구 개발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사실상 개발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감지된다.
동해이씨티 회장이자 ‘미추홀 건축왕’으로 잘 알려진 남헌기 씨는 망상 1지구 개발사업 시행사업자였다. 망상 1지구는 내륙에 9200여 세대가 입주할 수 있는 주택단지 및 공공시설 등을 개발하고, 두 개 구역으로 나뉜 해안 부지에 호텔·리조트를 세우는 사업이다. 토지 면적으로만 따지면 망상지구 개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구역이 1지구다.
그러나 수익성만 놓고 보면, 다른 평가가 나온다. 동해시 소재 한 부동산업 관계자는 “수익성만으로 따져 보면 망상 해변에 위치한 2지구와 3지구가 면적은 작지만 좀 더 알짜배기로 평가받을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인근 다른 부동산 관계자도 “강원도 동해시 특성상 주택단지 분양에 수익성이 예상치를 웃돌지는 미지수”라면서 “하지만 호텔과 리조트만 짓는 사업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2지구와 3지구는 주택단지 등 공공시설이 아니라 호텔과 리조트만 들어서는 부지라서 사업성이 좋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망상 1지구 사업 시행자가 남헌기 씨라는 사실이 집중 조명됐다”면서 “그런데 2지구와 3지구 사업자가 누구고 자본이 어떻게 투입될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 등은 베일에 가려 있다”고 했다.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동자청) 계획에 따르면 망상 2지구와 3지구는 리조트·호텔 등 관광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일요신문은 5월 11일 망상 2·3지구 개발사업 시행사를 직접 방문, 개발사업 진행 상황을 질의했다. 현장 관계자는 “현장 사무실엔 토지 협의 관계 때문에 직원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면서 “시행사업자는 서울에 있는데 (사업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SPC(특수목적법인) 현장 직원”이라고 소개하며 “본사 일은 정확히 파악을 못하고 있고 토지 수용 협의 과정에서 감정평가 단계 업무를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본사 대표가 누구인지 묻자 이 관계자는 “이름만 안다”고 했다.
이처럼 베일에 가려 있는 2·3지구 개발사업과 관련해 동해 현지에선 ‘대장동팀’ 핵심 인물들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들과 동해의 인연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다. 그중 한 명은 화천대유 최대주주 김만배 씨다. 복수의 동해 현지인들은 “과거 김만배 씨가 동해에 자주 다녀갔다”고 전했다. 취재에 따르면 김 씨가 자주 동해에 다녀간 시점은 2012년 초였다. 제19대 총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2022년 6월 김만배 씨는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 측은 ‘2012년 4월 남욱과 배 아무개 씨로부터 받은 현금 2억 원을 세어보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바로 전달했기 때문이냐’고 질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씨는 “아는 형이 검찰수사를 받다가 공천을 못 받아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출마를 했다”면서 “그 형을 만나 일행들에게 여비도 주고, 휴가 내고 선거운동도 돕고, 동네 사람들 밥도 사주고 하면서 8000만 원을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는 형이 누구냐’는 질문에 김 씨는 “이화영”이라고 답했다. 남욱 변호사 등이 준 2억 원 중 8000만 원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선거운동 등에 활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동해 현지에서 만난 법조계 관계자는 김 씨 진술에 대해 “본인 진술 신뢰성을 높이는 차원인 것으로 본다”면서 “정치자금법 위반은 공소시효가 7년, 공직선거법 위반은 공소시효가 6개월이다. 이 발언으로 본인이 처벌받을 염려가 없다보니 이런 발언으로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2012년 4월 강원 동해·삼척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였다. 이 전 부지사는 무소속 후보로 동해·삼척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졌다. 2011년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민주당 경선에서 최문순 전 지사와 경쟁을 치른 지 1년 만에 당적 없이 선거에 출마했다.
무소속 출마엔 사연이 있었다. 이 전 부지사는 선거 직전 제일저축은행과 현대자동차그룹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기소되며 민주당으로부터 받은 공천을 반납했다. 민주당은 다른 후보를 이 지역구에 공천하지 않았다. 사실상 민주진영 후보로 이 전 부지사를 내세운 양상이었다.
2012년 4월 11일 펼쳐진 선거에서 이 전 부지사는 낙선했다. 후보 6명이 출마한 가운데,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공천을 받은 이이재 후보가 3만 3845표(44.83%)를 얻어 당선됐다. 4선 의원 출신으로 새누리당 공천을 못 받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최연희 후보가 2만 1171표(28.04%)를 얻어 2위로 선거를 마쳤다. 이 전 부지사는 7804표를 얻어 10.33% 득표율로 3위에 그쳤다.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지 15일이 지난 2012년 4월 26일 이 전 부지사는 동해에 소재지를 둔 컨설팅 법인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법인 이름은 ‘D 컨설팅’이었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D 컨설팅 사업목적 중엔 분양 및 임대업, 부동산 중개업 등이 포함돼 있었다. D 컨설팅엔 또 다른 사내이사가 등기돼 있었다. 그는 바로 천화동인1호(현 더스프링) 대표이사로 잘 알려져 있는 이한성 씨다.
이 씨는 이 전 부지사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제17대 국회의원(서울 중랑갑)으로 재직할 당시 보좌관을 지냈던 핵심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이 씨와 이 전 부지사는 총선 낙선 이후 곧바로 동해에서 컨설팅 법인을 통해 의기투합했다.
지난 5월 11일 일요신문은 D 컨설팅이 소재지를 두고 있던 동해시 천곡동 사무실 두 곳을 직접 방문했다. 첫 번째로 등록돼 있던 사무실 소재지엔 현재 학원이 들어와 있었다. 두 번째로 등록된 사무실은 호텔 겸 레지던스 건물 3층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두 사무실 모두 동해시청,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 등 주요 관공서가 밀집해 있는 지역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D 컨설팅은 2017년 12월 해산된 것으로 간주됐다. 2017년 3월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 사외이사로 선임됐는데, 사외이사 선임 이후 9개월 뒤 동해 현지 컨설팅 법인이 해산된 셈이다.
2021년 이 전 부지사는 이 씨와 동해에서 컨설팅 법인을 함께 설립한 것과 관련해 “10년 정도 연락을 안했다”면서 “사무실을 하나 만들기 위해 만든 법인인데, 그때 (이 씨가) 이름을 올려놔준 것이며, 3~4년 전 통화를 했을 수는 있지만, 2008년 이후 사이가 서먹해져서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 씨는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의혹 핵심 인물 중 한 이다. 그가 대표로 있는 천화동인1호는 화천대유자산관리 관계사 가운데 가장 많은 배당금을 챙겼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동안 천화동인1호는 배당금으로 1208억 원을 수령한 것으로 추정된다. 천화동인1호 배당금 행선지와 실소유주 정체는 여전히 대장동 의혹 최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대장동 개발사업 및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을 관통하는 키맨들이 2012년에 공통적으로 동해에 흔적을 남겼다. 그로부터 얼마 뒤인 2013년 2월 4일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 지정이 확정됐다. 사업 기간은 2024년까지로 예정됐다. 그러나 2023년 5월 기준 망상 해수욕장엔 어떤 개발사업도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망상 1지구는 ‘미추홀 건축왕’이자 동해이씨티 회장인 남헌기 씨가 시행사업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 중심에 섰다. 1지구 개발이 답보상태인 상황에서 망상 2·3지구 호텔·리조트 개발사업은 2023년 하반기 착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반발 목소리도 나온다.
5월 11일 정현호 망상 제2지구 대책위원장은 “공공성을 담당하는 1지구 개발이 답보 중인 상황에서 2지구와 3지구 호텔·리조트 개발이 선행되는 것은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 본래 공공적인 취지와 달리 수익성만 추구하겠다는 것 아니냐”라면서 “이런 식으로 사업이 진행되면 외부에서 자본을 조달한 이들이 막대한 수익을 얻을 것이고, 지역 주민들은 소외되는 상황이 찾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은 지자체가 공공성을 약속하고, 막대한 수익은 화천대유가 독식해 문제가 된 것”이라면서 “공공성이 있는 1지구 사업을 건너뛰고 2지구와 3지구에 호텔과 리조트 개발을 먼저 진행한다면, 망상지구는 소수가 개발 수익을 독점하는 제2의 대장동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해=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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