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권 성행위 수반 AV 금지법 논의 중…보는 건 합법? 국내 접근 루트 대부분 ‘저작권 침해’
5월 2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열린 넷플릭스 예능 ‘성+인물: 일본편’ 관련 라운드 인터뷰에서 정효민 PD가 한 말이다. 4월 25일 글로벌 공개된 넷플릭스 예능 ‘성+인물: 일본편’에는 MC 신동엽과 성시경이 일본 현지 성문화를 직접 체험하며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모습이 담겼다. 다만 다소 노골적인 방송을 두고 MC들에게 비판이 집중됐고 SBS ‘TV 동물농장’과 tvN ‘놀라운 토요일’ 등 현재 신동엽이 출연 중인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하차를 요구하는 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편집 방향 등에 대해서는 거듭 정당성을 주장했다. 정 PD는 “출연자들의 진짜 생각을 공유하면 우리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는 데서 시작했다”며 “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과 담론이 교양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로까지 뻗어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과연 그럴까. 일본 AV가 처한 현실과 이를 보는 한국인들, 그리고 일본 AV가 일본과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살펴보도록 한다.
#“일부 암이 있다고 해서 전혀 다루지 않아야 하나”
“성인 엔터테인먼트에서 AV는 주류인 부분이다. 거의 1조 원에 가까운 시장이고 ‘편의점의 나라’라고 불리는 일본에서 AV는 편의점 산업 규모와 맞먹을 정도로 AV 산업이 큰 산업이라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라운드 인터뷰에서 정효민 PD가 한 말이다. 정 PD는 “성인 관련 산업은 명과 암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데, 일부 암이 있다고 해서 전혀 다루지 않아야 하나.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암’은 일본에서 불거지고 있는 성착취 논란 등을 언급하는 내용으로 정 PD도 조사 과정에서 이런 부분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본에서 AV는 상당히 큰 산업이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일본 AV를 바라보는 시선이 최근 크게 달라지고 있다. 2022년 5월 25일 일본 중의원 내각위원회는 ‘AV 출연자 피해방지 구제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6월 16일 일본 참의원에서도 가결됐다.
‘AV 출연자 피해방지 구제법안’의 대략적인 내용은 출연 계약을 AV마다 건별로 체결하고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재한 서면 계약서를 교부하도록 했다. 또한 출연자가 반대하는 성행위 촬영은 거절할 수 있도록 했고 촬영이 끝나고 4개월 뒤부터 유통 및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4개월 이내에 배우가 계약 해지를 원하면 해당 AV는 판매와 유통이 이뤄질 수 없다. 또한 유통 및 판매가 이뤄졌을지라도 1년 이내에 배우가 계약 해지를 원하면 바로 해당 AV의 판매와 유통이 금지된다.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엔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지나치게 출연자 보호에 방점이 찍힌 법안이지만 오랜 기간 일본 사회에선 AV 출연자의 피해 사례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기 때문에 통과된 법안이다. 실제로 연예인을 지망해 에이전시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가 AV 출연을 강요당한 사례가 많았고 AV 출연 목적의 인신매매 범죄까지 벌어졌었다.
이제 일본 정치권은 한발 더 나아가 ‘성행위 수반 AV 금지법’까지 검토에 들어갔다. 소위 말하는 ‘AV 금지법(AV 禁止法)’이다. 2017년에 설립된 AV인권윤리기구 등 ‘AV 강제 출연 피해’를 지적하며 관련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일본 시민단체들이 꾸준히 AV 금지법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일본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소속 쓰쓰미 가나메 중의원 의원 등이 당 차원의 검토를 약속하는 등 정치권이 반응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에서 AV 산업은 편의점 산업 규모와 맞먹을 정도의 산업이지만 AV 금지법이 도입되면 지금 기준의 일본 AV는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정 PD는 ‘일부 암이 있다고 해서 전혀 다루지 않아야 하나’라고 말했지만 일본 정치권은 ‘일부 암이 있다고 아예 금지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 성인콘텐츠 전문가는 “넷플릭스 예능 ‘성+인물: 일본편’에 출연한 일본 AV 배우들처럼 자기 일에 자긍심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원치 않는데 AV에 출연하게 된 피해자들이 많아 일본은 그들을 보호하는 법안까지 만들었다”며 “만약 한국에서 한 여성이 원치 않는 데 AV를 촬영하게 되고 그 AV가 버젓이 유통되는 일이 벌어지면 어떻겠나. 몰카 사건이나 성착취물 사건만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텐데 일본에선 실제로 그렇다”고 지적했다.
#“AV를 개인이 보는 것은 불법은 아니다”
“AV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건 불법의 영역이지만 AV를 개인이 보는 것은 불법은 아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AV 제작이 합법이다. 전 세계적으로 AV가 합법인 나라들이 적지 않게 있더라. AV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라운드 인터뷰에서 정효민 PD가 한 말이다. 기본적으로 일본 AV는 실제 성행위를 수반한 성인물이다. 앞서 언급했듯 일본에서도 성행위 수반 AV를 금지하는 법안(AV 금지법)이 논의 중이지만 현재는 합법이다. 포르노 등으로 불리는 이런 AV가 합법인 국가가 일본 외에도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AV 제작 및 배포가 불법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보는 것은 합법일까.
몰래카메라나 리벤지 포르노, 성착취물 등 디지털 성범죄물은 제작과 배포는 당연히 불법이며 개인이 다운로드 받아 보는 것도 불법이다. 다만 한국에선 제작 및 배포가 불법인 AV를 개인이 보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진 않고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경우가 불법이다. 제작 및 배포가 불법인 상황에서 개인이 AV를 어떻게 접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각종 웹하드 사이트에서 다운로드를 받는 방식으로 일본 AV를 시청하는데 이는 불법이다. 그동안 웹하드는 리벤지 포르노와 몰카 등이 공유되는 것이 강하게 지적받아 왔고 지금은 이런 디지털 성범죄물은 웹하드에서 찾아보기 힘들 만큼 정화됐다. 그렇지만 일본 AV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포르노 등은 여전히 불법 유통되고 있다.
웹하드 사이트에는 제휴를 맺은 합법콘텐츠와 불법콘텐츠가 공존하고 있다. 여기서 일본 AV는 대표적인 불법콘텐츠다. 웹하드에서 일본 AV를 다운로드 받는 행위는 저작권 위반으로 불법 행위다. 일본 여행을 가서 일본 AV를 직접 구입해 한국으로 가져와 개인이 보는 것은 불법은 아니지만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
앞서의 성인콘텐츠 전문가는 “유명 웹하드 몇 곳에 접속해보니 넷플릭스 예능 ‘성+인물: 일본편’에 출연한 일본 AV 배우들이 출연한 일본 AV도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모두 불법콘텐츠로 수위도 상당히 높았다”면서 “제작진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요즘 그 배우들이 나온 일본 AV가 웹하드에서 상당히 인기다. 업로더들만 예상치 못한 수익을 올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일본 AV 제작사들이 한국 웹하드들을 상대로 저작권법 위반으로 대규모 소송을 제기하면 난리가 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말도 덧붙였다.
#“AV가 범죄율을 낮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라운드 인터뷰에서 정효민 PD는 “AV가 범죄율을 낮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데, 우리가 AV를 미화한다고 볼 순 없다”며 “19세 이상의 가치판단을 가진 성인이라면 이런 걸 논의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럴까.
일본 AV업계에서 언급조차 암묵적으로 금기시 되는 최악의 사건이 있다. 바로 ‘바키 사건’인데 AV제작사 바키(Bakky)에서 내놓은 스너프 시리즈가 연출한 영상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는 게 알려지면서 일본 열도가 충격에 빠졌다.
2004년 당시 바키 사는 연매출이 100억 엔(약 1150억 원)에 이를 정도로 잘나가는 AV 제작사였다. 바키 사의 대표 쿠리야마 류는 ‘AV 업계의 카리스마’로 불렸으며 페라리를 타고 다닐 만큼 큰돈을 벌었다. 참고로 스너프 필름(Snuff Film)은 원래 실제로 살해를 하거나 모살 또는 자살하는 장면을 촬영해서 보여주는 영상물을 일컫는 말인데 일본 AV 업계에서는 ‘연출되지 않은 실제 성행위 영상물’로 알려져 있다.
바키 사는 스너프 시리즈를 찍기 위해 신인 여성 AV 배우에게 거액의 출연료를 제안해 계약서에 사인을 받는다. 그런데 출연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 갑자기 옆방에서 대기 중이던 수십 명의 남성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집단 성폭행이 시작된다. 심지어 고문이 자행되기도 했다. 심지어 동시에 50여 명의 남성이 몰려드는 영상물도 있다. 장시간 집단 강간과 폭행, 고문이 이어지고 만신창이가 된 여성 배우를 길가에 버리는 장면으로 바키 사의 스너프 필름은 마무리된다.
매우 충격적이고 혐오스러운 영상이지만 이를 소비하는 남성들은 당연히 이 모든 상황이 연출된 것으로 인식했다. 그렇게 바키 사의 스너프 시리즈는 사실적인 영상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그렇지만 2004년 바키 사의 스너프 시리즈에 출연해 하반신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한 AV 여배우가 자신이 당한 일을 모두 폭로했고, 바로 다른 피해 여배우들이 동참하면서 그동안 바키 사에서 벌어진 일들이 세간에 알려졌다. 결국 쿠리야마 류는 징역 18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데 2024년에 출소할 예정이다.
문제는 바키 사건이 바다 건너 일본에서 벌어진 일 정도로 치부하고 그냥 넘길 수는 없다는 점이다. ‘n번방 사건’이 막 불거졌을 당시 한국사이버성폭력센터 등에선 한국 성착취 범죄의 시발점이 일본의 바키 사건일 가능성을 제기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실제로 ‘갓갓’ 문형욱의 성착취 영상물은 일본의 스너프 필름과 유사하다. 경찰 조사에서 문형욱은 2018년 대구 여고생 성폭행 사건을 비롯해 3건의 성폭행을 지시했는데 그때마다 성폭행 장면을 촬영하라고 지시했다. 성인콘텐츠 전문가들은 n번방 사건 당시 갓갓 문형욱에 대해 “한국형 스너프 필름을 만들고자 해서 실제로 만들었는데 그런 행위가 성착취 범죄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어찌 보면 일본 AV 업계 최악의 사고가 한국에서 최악의 성착취 범죄인 ‘n번방 사건’으로 이어진 것일 수도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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