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포기 직전 구단 제안으로 지휘봉”…선수 졸업식·입대 현장 함께하는 등 가족 같은 분위기 연출
챔피언결정전과 함께 2022-2023시즌이 마무리됐지만 김상식 감독은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각종 우승 행사와 인터뷰가 이어지고 있다. FA(자유계약) 자격을 얻은 선수들의 협상기간이 곧 시작되기도 했다. 그는 "FA 끝나면 외국인선수 구성도 해야 한다"며 "그러고 나면 좀 쉴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개인적인 일정도 특별히 잡아놓지 않았다. 큰 계획 없이 쉬고 싶다"고 말했다.
한 시즌을 달려온 피로감이 남았지만 우승의 여운도 여전했다. 김 감독은 "통합우승 같은 것은 다른 감독들의 이야기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며 "정말 감회가 새롭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에는 기쁘면서도 옛날 생각도 나고 만감이 교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나치는 사람마다 모두 '축하한다'고 하는데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 않다"며 웃었다.
3개 대회 우승은 김상식 감독이 팀에 부임한 지 단 1년 내에 일궈낸 성과다. 불과 1년 전까지 그는 '농구계를 떠날 것인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는 "KBL에서 새 감독이 부임하는 걸 보면 이제는 연령대가 젊어지더라. 일종의 세대교체가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직업이 누가 불러줘야 가능한 것이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웃음). 마음을 내려놓게 되더라. 농구는 접자는 생각으로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떠나 있었다"고 말했다. 농구공을 내려놓고 다른 대안을 설계한 것은 아니었다. 김 감독은 "40년 가까이 농구만 보고 살았는데 뭘 할 줄 아는 게 있겠나(웃음). 은퇴 후 계획을 한다기보다 농구와 헤어지려 마음을 정리하는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지도자 생활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표현했다. 안양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곧장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3개의 팀을 경험하며 감독대행, 감독 등을 지냈으나 인연이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그에게 '대행전문'이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그는 "팀을 잘 만들어놨다는 생각이 들었는데도 정식 감독으로는 임명이 안 되더라. 때로는 '지도자와는 인연이 없나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2021년까지 감독직을 맡았던 국가대표팀에서도 코치에 이어 대행으로 직을 시작한 바 있다. 대표팀에서도 대행으로 그칠 뻔한 일화를 전했다. "허재 감독님이 그만두시고 바로 경기가 있어서 2경기를 대행으로 했다. 그리고 나선 농구협회에 그만두겠다는 뜻을 전했다. 협회 쪽에서 만류하는 과정에서 허재 감독님이 '딴생각 하지 말고 한다고 해라. 그만두면 너 앞으로 안 보겠다'고 하시더라. 그렇게 대표팀 정식 감독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KGC인삼공사 구단에서 제안이 왔다. 그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기회를 잡았다. 2014년 서울 삼성 감독대행 이후 8년 만에 KBL 무대로 돌아왔다. 그는 KGC 지휘봉을 잡으며 "부담이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지난 두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올랐고 우승을 한 번 달성한 팀이었다. 내가 팀에 오고 나서 챔피언결정전에 오르지 못하면 비판을 받을 상황이었다"고 했다.
전망이 밝지도 않았다. 부임 이전에 비해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FA 시장에서 국내 최고 슈터인 전성현이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모든 팀이 우리 전력을 우승 후보로 뽑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존 성적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는 부담이 있었다"고 했다.
KBL 정규리그 이전 컵대회에서는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전성현 같은 선수의 공백을 메우려면 팀으로 움직여야 했다. 팀워크를 다지고 모션 오펜스를 갖추는 과정에서 혼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진 스토리는 알려진 대로다. 개막 직후부터 4연승을 내달렸고 선두로 치고나갔다. 1라운드 9경기에서 8승 1패를 기록했다. 시즌 중에는 10연승을 내달리기도 했다. 김 감독은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위에 1경기 차로 쫓긴 때도 있었다"며 "선수들에게 자신감 많이 심어주고 선수들끼리도 소통을 많이 하다 보니 위기에서 선수들이 스스로 치고 나가는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상식 감독은 이번 시즌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KGC의 우승을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선수를 질책하기보다 칭찬을 해주고 부드럽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이 화제를 낳았다. 전술이나 경기 운영에 대해서는 선수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이미지가 그렇게 보여서 그렇지(웃음) 선수들에게 지적할 부분은 한다. 나도 젊은 감독 시절엔 선수들을 다그치기도 했다(웃음). 이번이 감독으로서 마지막 기회라고 느껴졌다. 앞으로 기회가 없으니 그동안 생각만 했던 방향을 한 번 시도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모든 것이 잘 맞아 떨어져서 이렇게 될 수 있었다. 코치들이 잘해주고 선수들이 잘 따라줘서 가능했던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호통 치는 감독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서울 SK에 불의의 패배를 당한 이후 KGC는 리그 최고의 수비수 문성곤이 상대 에이스 김선형에게 전담 수비를 하면서 2, 3차전을 가져갔다. 이 과정에서도 김상식 감독은 문성곤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는 "1차전 이후 문성곤을 김선형에게 붙이는 방안을 코치들과 이야기했다. 다만 그 시점에 대해서는 성곤이에게 의견을 물었다. 전담마크를 경기 초반부터 하면 선수 체력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곤이가 '1쿼터부터 맡겠습니다'라고 말했고 실제로 너무 잘해줬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리더십은 그가 시즌을 앞두고 지휘봉을 잡으면서 '관계'에 중점을 뒀기에 나왔다. 그는 "선수 은퇴 이후 미국 지도자 연수를 여러 번 다녀왔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의 전술에만 집중했다. '감독이 전술만 잘 짜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최근 돌아보니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관계였다. 농구 역시 사람이 하는 것이다. 감독, 선수, 팬, 코치, 프런트 등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KGC 구단 안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려 노력했다. 그 일환 중 하나는 최근 있었던 소속선수 변준형과 한승희의 상무 입대 현장 배웅이었다. 김상식 감독은 코치들과 함께 논산훈련소로 향해 짧은 머리를 한 선수들과 인사를 나눴다. KBL뿐 아니라 프로스포츠 전체를 통틀어서도 감독이 소속선수의 입대 현장을 찾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시즌 전부터 코치들에게 가족 같은 관계로 지내자고 말했다. 젊은 시절부터 자주 했던 말이다(웃음). 그런데 이번엔 정말 실천으로 옮겨보려고 했다. 가족이라면 군입대 할 때 따라 가지 않나. 그래서 간 거다. 신인 선수들 대학 졸업식에도 가고. 어려운 일이 아닌데 너무 거창하게 봐주시는 것 같아 송구스럽다. 내가 입대할 때 이후로 논산훈련소는 처음 간 것이라 색다른 기분이긴 했다. 자녀도 딸이라 그동안 갈 일이 없었는데 앞으로는 종종 가게 될 것 같다(웃음)."
김상식 감독은 우승트로피를 든 것 외에도 이번 시즌을 보내며 뿌듯함이 있다고 말한다. 팬들에게 농구의 재미를 조금이나마 선사했다는 것이다. 이번 시즌 KBL은 역대 최대 관중 수익을 기록했다. 14년 만에 챔피언결정전은 7차전까지 치러졌고 그중 6경기(2~7차전)가 매진을 기록했다. 매 경기 관중들은 뜨거운 열기를 선보였다.
"우리가 잘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재밌는 경기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챔프전 상대 전희철 감독과도 농담으로 그런 이야기 주고받았다. 내 지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침체기가 지속되던 농구계에 조금이나마 팬들의 열기에 보탬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뜨거운 응원 보내주신 안양 팬들에게 감사 인사 전하고 싶다. 평소에도 우리 홈구장 열기는 대단하다. 특히 챔프전에서는 NBA 부럽지 않았다. 선수뿐 아니라 감독도 더 열정적으로 변하게 되더라. 한편으론 '다음 시즌도 잘해야 하는데' 하는 걱정도 된다(웃음)."
디펜딩 챔피언으로 맞이할 2023-2024시즌에 대해서도 김 감독은 '열심히'를 외쳤다. 그는 "포기하려던 순간 좋은 기회를 얻었다. 농구 인생의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구단, 선수들, 코치들, 팬들까지 모두에게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 더 잘하는 모습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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