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기 전 KBL 총재, 선수·지도자·행정가로 족적 남긴 ‘레전드’…“아버지 명성 부담감에 쉼 없이 연습”
안양 KGC인삼공사를 KBL 통합우승으로 이끈 김상식 감독도 농구인 2세다. 김 감독의 아버지는 김영기 전 KBL 총재다. 김 전 총재는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서도 한국 농구계에 큰 족적을 남긴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린다.
김영기 전 총재는 한국전쟁 시기에 처음 농구를 접해 배재고-고려대-기업은행 등을 거치며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은퇴 2년 만에 국가대표 사령탑에 올라 아시아컵, 아시안게임 등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대표팀을 아시아 정상으로 이끌어 명장 반열에 올랐다. 요즘 세대에도 레전드로 알려진 신동파와 선수, 감독으로 대표팀에서 함께 했다.
지도자 생활 이후로도 농구계에 지속적으로 힘을 보탰다. 대한농구협회 임원,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 등을 지냈고 1988 서울 올림픽 유치 등에 기여했다. 본인이 가장 보람 있는 일로는 프로농구(KBL) 출범을 꼽는다. KBL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그는 이후 KBL 총재를 역임했다.
김 전 총재는 농구계에서 특별한 존재지만 김상식 감독과는 여느 부자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 감독은 "챔피언결정전을 우승하고 아버님과 통화 한 번 했다"며 "'수고했다'고 하셔서 '예, 감사합니다. 식사하러 한 번 갈게요' 답한 것이 전부다(웃음). 우리 시대 아버지와 아들이 다들 그렇지 않나. 그래도 그 안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 감독에게 농구 선수, 농구 감독으로서 아버지의 기억은 많지 않았다. 그는 "선수시절을 보진 못했고 주위에서 이야기는 참 많이 들었다"며 "코치, 감독 하실 때는 어렴풋이 기억이 있다. 대회에서 성과가 좋으면 카퍼레이드를 펼쳤던 장면이 떠오른다"고 전했다.
다수의 스포츠 집안이 그렇듯, 김영기 전 총재도 농구를 하겠다는 아들을 말렸다.
"아버지를 닮아 그런지 어릴 때부터 운동에 소질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농구 하는 것을 무조건 반대 하셨다. 힘든 경험을 많이 하셔서 절대 안 시키려 하셨다. 그런데 중학교 올라가서도 공부 안하고 맨날 농구만 하고 다니니 '얘는 진짜 안되겠구나' 생각하신 것 같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 11월이 돼서야 농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다."
김상식 감독은 남들보다 늦은 시작에 더 많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작부터 아버지의 성함이 나를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안 좋은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고 말한다.
김상식 감독은 선수시절 예리한 감각을 자랑하던 슈터로 명성을 떨쳤다. 고려대, 상무, 기업은행, 나산 등에서 활약하며 특유의 외곽포로 '이동 미사일'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프로 원년에는 경기당 평균 20점 이상, 3점슛 성공률 45.87%를 기록했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쑥스럽지만 슈팅이 좋다는 평가는 좀 받았던 것 같은데(웃음), 역시나 지독한 연습의 결과였다"며 "남들보다 운동을 시작한 시점이 늦어 살아남으려면 연습밖에 답이 없었다. 아버지의 존재 또한 나를 움직이게 했다"고 했다.
그는 최근 스타플레이어 2세들의 활약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남다른 감정을 느낀다. "내 선수시절과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선수들이 등장하고 있다. 개인적 인연이 없는 선수들을 보면서도 괜히 대견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김 감독은 농구 국가대표팀 코치 시절 공교롭게도 허재 감독을 보좌하며 허웅·허훈 형제와 함께한 경험이 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새삼스레 웅이와 훈히가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훈이에게는 따로 '너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아버님의 존재는 당연히 따라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 단단히 먹고 그냥 열심히 해라. 그것밖에 답이 없다'는 말을 해준 것이 기억난다. 나도 그 선수들을 보면서 옛날 생각이 났기 때문에 그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웅이나 훈이도 그렇고 나도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분명 아버님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이다. 우리로선 잘 모르는 부분이다"라며 "그동안 아버님도 워낙 유명한 분이었기에 아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걱정이 많으셨을 것 같다. 비슷한 길을 걷는 아들에 대한 걱정도 하셨을 것이다. 그동안 내 지도자 생활이 우여곡절이 많기도 했다(웃음). 이번 우승으로 조금이나마 기쁘게 해드릴 수 있어 나도 마음이 편하다. 조만간 찾아뵙고 많은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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