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 측근 전직 평화협력국장 구속, 금송 지원 당시에도 ‘뒷말’…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터닝포인트 되나
2019년 3월 경기도는 남북교류협력기금 15억 원을 활용해 금송과 주목나무 등 5억 원어치 묘목, 10억 원어치 밀가루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에 지원될 금송과 주목나무 묘목 수량은 총 11만 본이었다. 이 중 2만 5000본은 금송, 8만 5000본은 주목나무였다. 묘목 구매 비용은 4억 7400만 원 정도로 책정됐다. 여기엔 운송·검역·통관 등 비용이 포함됐다. 5억 원 중 이를 뺀 나머지 2600만 원은 부대비용이다.
이 지원 건은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아태위)가 직접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조선아태위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인물은 김성혜 실장이었다.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름이 등장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김 실장은 2018년 10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방북했을 당시 금송이라는 품종을 콕 집어 지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황해도 스마트팜 조성, 옥류관 분점 유치 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던 시점이었다(관련기사 [단독] 쌍방울 돈 문제로? ‘북한 왕실장’ 김성혜 실각 후 뭐하나 봤더니).
금송과 주목나무는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거쳐 평안남도로 이어지는 육로를 통해 북한으로 지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원사업은 민간위탁으로 진행됐다. 민간사업자로 선정된 건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를 개최해 주목받았던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였다. 아태협 수장은 안부수 회장이다.
2019년 3월 5일 조선아태위는 묘목과 밀가루 품목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2019년 3월 8일 아태협은 통일부로부터 대북지원사업자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2019년 4월 16일 통일부는 북한에 묘목과 밀가루 등 품목을 반출하는 것을 승인했다. 김성혜가 지원을 요청했던 금송 묘목이 북한으로 향하는 데에 필요한 행정 절차가 마무리된 셈이다.
경기도가 이 사업을 기획할 당시부터 내부적으로 뒷말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가장 큰 화두는 금송이었다. 북한이 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묘목을 원한 명분은 산림녹화였다. 이른바 ‘민둥산’이 많은 북한 소재 산지에 나무를 심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경기도 내부에선 금송은 정원수로 쓰이기 때문에 산림녹화용으로 부적합하다는 보고가 수차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다 금송이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부분도 지적됐었다고 한다.
그러나 금송을 북한으로 보내는 작업은 그대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신 전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이 금송을 지원 품목에 포함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신 전 국장은 “남북교류를 위한 물꼬였으며, 정책적인 판단이었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언급했듯 정원수로 쓰이는 금송은 산림녹화와는 큰 연관이 없는 품종이다. 일본 특산종으로 일본은 ‘세계 3대 공원목’ 중 하나라고 홍보하고 있다. 일본에선 학교, 유원지, 골프장 등 관상용으로 심는 품종으로 사랑받고 있다. 있는 그대로 둬도 모양이 망가지지 않고, 그늘이나 반그늘에서 잘 자라는 ‘고급 소나무’로 유명하다. 정원수라는 특성에 따라 나무 품종 중 사치품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해진다.
김성혜 전 실장이 지원 품목으로 ‘금송 묘목’을 집은 이유에 대해 대북 소식통은 “대북제재 빈틈을 공략하는 취지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북제재 품목으로 지정된 1400여 종 목록을 살펴보면 ‘목재’는 있지만 ‘묘목’은 없다”면서 “제재 망을 피해 가져다가 키울 수 있는 셈”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북한으로 건너간 금송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주로 활동하거나 머무르는 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금송에서 식량을 재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국 대남 라인이 직접 지원을 요청했다면 그 품목이 유입되는 루트는 생각보다 단순하게 추측이 가능하다”고 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경기도가 금송 등 인도적 지원을 하는 대상이 평안남도”라면서 “평안남도는 평양 북부 경계선을 기준으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행정구역”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한국으로 치면 경기 북부와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서 “고양, 양주, 남양주, 의정부 등 경기 북부 지역처럼 서울 북부지역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행정구역이 평안남도다. 김정은이 머무르는 위치와 상당히 인접한 지역이 포함돼 있다”고 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북측 대남 핵심라인인 김성혜가 금송을 콕 집었다는 데엔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을 수 있다”면서 “우리 입장에선 ‘금송을 지원해달라’고 하면 그냥 ‘금송이 필요한가보다’ 생각할 수 있지만, 북한은 어떤 것 하나를 지원해 달라고 할 때 다른 문제될 여지가 없는지 치밀한 계산을 거쳐 요구를 한다”고 했다. 그는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지도부 의사가 개입돼 있지 않다면, 김성혜가 직접 어떤 품목을 콕 짚을 이유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금송, 주목나무, 밀가루 등을 지원한 경기도 대북지원사업 관련 수사가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수사 전반에 걸쳐 터닝포인트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마트팜 사업비용, 이재명 지사 방북비용 등 명목 대북송금을 진두지휘한 인물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꼽히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 논란이 된 지원사업은 경기도가 직접적으로 움직인 사업이다. 민간위탁사업자로 선정된 아태협을 중심으로 경기도와 쌍방울의 커넥션을 입증할 실마리로 ‘금송 지원사업’이 떠오르는 배경이다.
5월 17일 김은구 수원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신 전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위계공무집행방해, 지방재정법 혐의 위반 등에 대해 김 부장판사는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신 전 국장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측근으로 분류된다.
신 전 국장은 2019년 1월부터 2020년 말까지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으로 재임했다. 현재 신 전 국장은 동북아평화경제협회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동북아평화경제협회는 이 전 부지사가 설립한 사단법인으로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사장을 지내고 있다.
대북업무에 밝은 한 정치권 관계자는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을 비롯해 이번에 이슈가 된 경기도 대북지원사업 등은 경기도가 2018년부터 2020년경까지 문재인 정부와 별개로 독자적으로 진행한 대북 스킨십 일환”이라면서 “검찰 수사가 쌍방울·아태협을 거쳐 경기도를 깊숙이 파고들수록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강도는 더 세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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