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두 차례 범행 이력에도 정신병력으로 처벌 면제…칼 휴대 허용 철도 운영사·늦게 출동한 구급대원에 원성
사건은 최근 한 60대 여성이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이 여성은 "자신의 남동생이 열차를 타고 가다 한 승객이 갑작스럽게 휘두른 칼에 찔려 숨졌다. 그 승객이 어떻게 칼을 들고 열차를 탔는지 모르겠다. 또 사건이 벌어진 지 30분이 지나서야 열차 구급대원이 출동해 치료가 늦어졌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은 SNS와 인터넷 등에서 순식간에 퍼졌다. 처음엔 헛소문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살인이 발생한 장소가 열차였다는 점,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는 승객이 범인이라는 점 등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묻지마 살인’ 사례는 드물다.
논란이 확산되자 공안국 홍보 담당자 헝양은 “열차에서 한 남성이 칼에 맞아 살해당했다는 소문은 사실이다. 범인은 이미 구속됐다. 공안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철도 운영사인 광동그룹, 정부의 관련 부처 등이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비롯해 뒷수습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안 등에 따르면 피해자 구 아무개 씨는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주저우에서 광동그룹 소유 열차 K435를 탔다. 목적지는 레이양시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기차가 한 시간가량 달렸고, 헝산 역에서 범인이 탑승했다.
범인은 기차에 오른 지 10여 분 후 열차 통로에 서 있던 구 씨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기습을 받은 구 씨는 범인을 피해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구 씨는 이미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고, 좁은 열차에서 움직임도 여의치 않았다. 범인은 이내 구 씨를 쫓아와 여러 차례 더 공격했다. 순식간의 일이라 나머지 승객들은 손을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SNS에 올렸던 구 씨 누나는 “동생이 칼을 뺏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범인은 동생이 죽지 않은 것을 보고는 계속해서 칼을 찔렀다. 동생이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다. 더군다나 사건이 벌어진 곳에 어머니가 계셨다”고 했다.
공안에 따르면 범인 허 아무개 씨는 1987년생으로 충칭 출신이다. 한 언론사가 허 씨 주소지로 돼 있는 주민위원회에 전화를 걸자 담당자는 “주소지가 이곳에 돼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민감한 사안이라 추가로 공개할 것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사건이 공개된 후 허 씨에 대한 놀라운 과거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허 씨의 한 지인은 “그가 사람을 찌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 공안은 허 씨가 과거 2014년과 2017년 비슷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2014년엔 이번 사건처럼 전혀 모르는 사람이, 2017년엔 직장 상사가 피해자였다. 2017년 한 자동차 정비회사에서 용역 파견직으로 일하던 허 씨는 특별한 이유 없이 상사를 칼로 찔렀다고 한다. 허 씨를 파견 보냈던 업체는 정비회사에 10만 위안(1900만 원)가량의 배상금을, 피해자에겐 13만 위안(2500만 원)을 지급해야 했다.
파견업체는 허 씨에게 이런 액수를 회수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허 씨 어머니는 “우리도 허 씨와 관계를 끊었다”고 했다. 앞서의 허 씨 지인은 “이번 열차 사건을 보고 허 씨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맞았다. 그는 위험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방치된 상태였다”고 했다.
허 씨는 2017년 사건으로 공안 조사를 받았고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허 씨는 정신병력으로 인해 처벌을 면제 받았다. 허 씨는 조사 및 재판 과정 내내 자신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실제 그는 한 정신과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허 씨는 2010년과 2011년 두 차례 강제 약물 치료도 받았다. 판결문엔 “허 씨가 어릴 때부터 마약을 복용했다. 공안기관에 의해 2년여 강제 격리돼 마약을 끊었다”고 적시돼 있다.
열차 사건이 발생한 후 전문가들은 허 씨와 같은 인물들을 과연 국가와 지역사회가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허 씨가 살고 있는 주민위원회에 문의해보니 “공안국에 물어보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사실상 지역사회 차원에선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정신병력이 있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해줬던 재판부에 대한 원성도 뒤를 잇고 있다.
유가족들은 열차를 운영하고 있는 광동그룹에 대해서도 분통을 터트렸다. 모든 승객은 탑승 전 소지품 검사를 받게 된다. 그동안은 그 어떤 칼도 허용되지 않았지만 2022년 7월 1일부턴 6cm 이내의 칼은 휴대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이를 두고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유가족은 “규정이 그대로였다면 칼을 들고 기차에 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 누나는 응급조치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구급대원이 사건 발생 후 20분이 지나서야 출동했고, 그마저도 구급상자 열쇠가 없어 이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이다. 그는 “구급상자에 왜 자물쇠를 채웠는지 모르겠다. 설령 잠갔다 하더라도 어떻게 구급상자 열쇠를 빠트리고 현장에 올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철도 산업 표준’에 따르면 열차에서 승객이 질병에 걸렸을 경우 우선 승객 중 의료진이 있는지 방송 등을 통해 파악해야 한다고 돼 있다. 또한 구조대원은 즉각 구급상자를 갖고 현장에 도착해 초기 대응을 해야 한다. 다만, 구급상자의 열쇠와 관련된 부분은 그 어떤 내용도 없어 향후 이 부분은 공안 조사 및 재판 등에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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