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워킹데드>는 사람들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내용을 그렸다. |
좀비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위와 같다. 호러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한 좀비는 영화 속에서 사람의 살을 파먹거나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 공포의 존재로 묘사되곤 한다. 그런데 만일 이런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좀비가 현실 세계에 나타난다면?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한 이런 공포감이 지난달부터 미국인들 사이에서 서서히 번지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명 ‘좀비 대재앙’ ‘좀비 괴담’으로 불리고 있는 이 좀비 현상은 살인 사건, 더 나아가 사람의 살을 뜯어먹는 충격적인 식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다짜고짜 사람의 얼굴을 물어뜯는 사건이 늘어나자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는 기괴한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으며, 좀비 관련 단어가 구글 검색어 상위에 오르는 등 미 전역은 현재 좀비 공포에 휩싸여 있다. “좀비에 의해 세계는 곧 멸망할 것”이라는 지구 종말론까지 등장했을 정도로 미국인들을 경악케 하고 있는 좀비 현상에 대해 살펴봤다.
▲ 루디 유진(작은 사진)이 노숙자 로널드 포포의 얼굴을 물어뜯고 파먹었다. |
무려 18분 동안 노인의 얼굴을 파먹고 있던 이 남성은 경찰이 출동한 후에도 노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으며, 입안에 인육을 문 채 경찰을 향해 “당신들을 먹어 버리겠다”며 으르렁거렸다.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경찰은 이 남성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남성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도로 위에 쓰러져 있던 노인의 얼굴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노숙자였던 로널드 포포(65)로 알려진 이 노인의 얼굴은 피로 뒤범벅된 채 눈, 코, 입을 알아볼 수 없었고, 얼굴 전체의 75%는 살점이 뜯겨 나간 채 훼손되어 있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노인은 현재 목숨은 건졌지만 심각하게 훼손된 얼굴은 다시 복원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마이애미 좀비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에 좀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범행을 저지른 남성의 기이한 행동 때문이었다. 다리 밑에서 노숙 생활을 하고 있던 이 남성의 이름은 루디 유진(31). 사건 당일 무엇에 홀린 듯 알몸인 상태로 돌아다니거나 사람의 얼굴을 파먹는 그의 행동은 마치 좀비의 그것과 흡사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좀비 사건’이 비단 마이애미서만 일어난 유일한 사건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근래 들어 북미 지역에서 비슷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좀비에 대한 공포감은 확산되고 있는 상태.
▲ 동거남 인육 먹은 루카 로코 매그노타. |
또한 지난달 27일에는 뉴저지주에서 자해 소동을 벌이던 남성이 체포되는 기괴한 사건도 발생했다. 웨인 카터(43)는 이웃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 앞에서 50여 차례 자신의 복부를 식칼로 찔렀으며, 복부에서 꺼낸 내장을 경찰을 향해 던지는 엽기적인 행동을 벌였다. 결국 특수기동대(SWAT)까지 출동한 후에야 진압됐고, 카터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당시 현장을 목격했던 한 경찰관은 “그는 마치 좀비처럼 걸어 다녔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밖에도 일명 ‘좀비 사건’들은 최근 여러 차례 발생했다. 루이지애나의 칼 자쿠노스(43)는 전부인의 남편의 집을 찾아와 싸움을 벌이다가 다짜고짜 상대의 얼굴을 물어뜯었는가 하면, 볼티모어의 알렉산더 키뉴아(21)라는 대학생은 룸메이트를 살해한 후 심장과 뇌를 파먹는 엽기적인 범행을 저질렀다. 사우스 플로리다의 찰스 베이커(26)는 여자 친구의 집에 찾아와서 옷을 벗고 난동을 부리다가 이를 말리는 한 남성의 팔뚝을 물어뜯었으며, 마이애미의 브랜든 데 레옹이라는 노숙자는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다른 손님과 싸움을 벌이다가 체포된 후 경찰차 안에서 “널 먹어버리겠다”며 경찰을 협박했다. 결국 그는 경찰서에 도착한 후 자신의 혈압을 재는 경찰관의 손을 물려다가 저지를 당했다.
그렇다면 이런 좀비 현상은 도대체 왜 나타나는 걸까. 왜 이들은 대낮에 알몸인 상태로 돌아다니며, 왜 사람의 얼굴을 파먹거나 물어뜯는 끔찍한 행동을 하는 걸까. 혹시 정말 좀비 바이러스에 노출이라도 된 걸까.
이에 대해서 의학전문가들은 아마도 ‘신종 합성 마약’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배스 솔트’ 혹은 ‘클라우드 나인’이라고 불리는 이 마약은 중독성이나 환각 증상이 기존 마약보다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된 증상은 환각 및 환청, 과대망상증, 심장 두근거림, 혈압 및 체온 상승, 불안감, 메스꺼움 등이 있으며, 때로는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이 마약 성분이 든 약품이 플로리다를 제외한 미 전역에서 합법적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마약 상점, 주유소, 편의점 등에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미 독극물통제센터에 따르면 배스 솔트를 복용한 신고 건수는 2010년 303건에서 지난해 6138건으로 급증했으며, 올해의 경우 4월 말까지 이미 1007건의 신고 접수가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마약에 취한 사람이 보이는 가장 두드러진 행동 가운데 하나는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진다는 데 있다. 가파른 체온 상승으로 인해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열이 나기 때문이다. ‘마이애미 좀비 사건’을 저지른 유진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또한 자해를 하거나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난폭한 행동 역시 ‘배스 솔트’에 취한 사람이 나타내는 특이행동이다. 루이지애나 독극물통제센터 소장인 마크 라이언은 “이 마약이 특히 위험한 것은 마치 초인적인 힘을 지닌 듯한 망상에 빠진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가령 몸무게가 68㎏인 사람이 113㎏의 헐크가 된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라이언은 “배스 솔트와 다른 마약(GHB, LSD)을 혼합해서 사용할 경우 더욱 통제불능이 된다. 이 마약에 취한 사람을 진정시키려면 장정 네 명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스 솔트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가 체포된 플로리다주의 한 남성이 경찰차 후드를 이빨로 물어서 이빨 자국을 남긴 것이 좋은 예다.
또한 이 마약이 더욱 위험한 이유는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는 피해망상 때문이기도 하다. 라이언은 “괴물을 보거나 군인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또는 집안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면서 집안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악당들이 자신의 몸에 전화 도청기를 심었다는 망상에 시달려 칼로 자신의 몸을 난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좀비 현상’을 사회심리학적인 관점에서 풀이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안한 심리 상태가 기괴한 행동으로 표출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실직, 고물가, 주택난 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9·11 테러와 금융위기를 겪은 후 그 공포감이 더해져서 정신적 착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좀비 정부, 좀비 경제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이처럼 좀비 괴담이 퍼지자 이를 이용한 마케팅과 상술도 붐을 이루고 있다. ‘호나데이’ 탄환 제조업체는 최근 좀비 사살용 탄환을 선보이면서 좀비 현상에 편승했다. 원래 사격장에서 쓰이는 이 실탄 표면에는 ‘영원한 죽음’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좀비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서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네브래스카주에는 ‘두려워하지 말고 대비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좀비 퇴치 용품, 즉 나사못, 드라이버 등을 판매하는 전문점이 등장했으며, 캔자스주에는 좀비 피신용 콘도미니엄이 문을 열어 분양에 들어갔다. 오래된 미사일 격납고를 개조해서 만든 한 채에 200만 달러(약 23억 원)짜리 이 콘도 단지 안에는 실내 수영장, 스파, 체력단련실, 도서관, 극장, 의료실 등이 구비되어 있어 장기간 투숙해도 문제가 없다고. 또한 이곳은 ‘마더 네이처 네트워크’에 의해 ‘대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 가운데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
한편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좀비 공포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이례적으로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성명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CDC는 웹사이트를 통해 “좀비 바이러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근거 없는 소문에 휘둘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