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국면전환용 개각 없다” 선 그어…‘부자 몸조심’ 스탠스에 홍준표 “무능·무기력” 비판
정치권에서는 이를 현재 정국 상황과 연결 짓는다. 대장동 사건, 전당대회 돈봉투, 김남국 코인 논란 등 민주당이 ‘그로기 상태’에 몰린 만큼 보수적인 국정 운영을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기’ 전략이 정권 초반 집권세력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각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9일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탈원전, 이념적 환경정책에 매몰돼 새로운 국정 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스탠스를 취한다면 과감하게 인사 조치하라”고 말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전하자 여러 분석이 나왔다. 산업부와 환경부 장관이 공개경고를 받았으니 이들을 포함해 적잖은 폭의 개각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그중 하나였다.
세종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이른바 ‘복도 통신’에서도 개각 대상 장관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면서 개각은 기정사실화됐다. 부처 공무원들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출범 전과 후에 대한 확실한 변화가 강조돼왔는데 일부 부처 공무원들은 “우리 부처 장관은 이런 기조에서 많이 모자란 것 아닌가”라는 토로를 해왔다.
윤 대통령이 각 부처 장관으로부터 국정과제 이행 경과와 향후 계획에 대한 서면 보고도 받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종 관가의 말에 힘을 더했다. 윤 대통령은 5월 2일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에게 “정부 출범 전후의 변화를 종이에 연필로 써보라”고 말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한 바도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5월 1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중폭 개각이 임박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를 보고받고 “국면전환용 개각은 없다” “장관이 2년은 해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발언이 흘러나온 점을 감안할 때 개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읽혔다. 검사 시절은 물론, 정치에 입문하고도 신의와 의리를 인사원칙 제일 앞부분에 둬온 윤 대통령의 스타일이다. 더욱이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 드라이브를 국민들에게 약속했는데 전쟁 중에 장수를 갈아치울 수는 없다는 논리도 감안됐다.
명분은 이러하지만 실제 정치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개각을 하지 않는 더 큰 이유라는 게 정치권의 한목소리다. 무엇보다 제1야당이 김남국 의원 코인 의혹으로 결정타를 맞고 비틀거리는데, 굳이 개각을 통해 인사청문회 수요를 만들어 야당에 전화위복 계기를 만들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 개혁을 앞세우면서 장관을 인선했지만, 이 과정에서 워낙 호되게 당해 인사 트라우마가 심하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교육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교육부 수장이 잇따라 낙마했다. 김인철 후보자는 온가족 풀브라이트 혜택 의혹으로 후보자직을 내려놨고, 박순애 장관은 만취운전·논문 표절 의혹 속에서 겨우 취임했지만 섣부른 ‘만 5세 입학’ 학제 개편안 논란으로 대통령 임명 재가 35일 만에 사퇴했다.
연금개혁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역시 정호영 김승희 후보자가 각종 논란 끝에 연달아 낙마, 장관이 장기 공석에 빠지는 사태를 겪었다. 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 대학 후배에다 사법고시 동기를 임명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던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도 학생들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진 사퇴, 인사검증 미비를 둘러싸고 대통령실은 큰 곤욕을 치렀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부실인사 논란이 확산되던 2022년 7월 5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출입기자들과의 출근길문답에서 ‘부실인사, 인사실패 지적이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럼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라고 반문했다. 불편한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고 윤 대통령의 굳은 표정까지 카메라에 잡히면서, 언론의 비판 기사로 이어졌다. 이런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여권으로서는 개각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개각을 한다면 현역 의원 입각도 고려해야 하는데 내년 총선에 나가려고 하지 총선을 포기하고 대통령실로 들어가려는 의원은 사실 거의 없다. 지금 시기가 인재풀이 가장 좁을 때인데 자칫 개각을 해서 또다시 부실검증 논란을 부를 필요가 없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개각이 가져올 실효적 이익이 별로 없다는 판단을 대통령실이 했을 것이고 당의 여러 의원들도 비슷한 생각이다.” 한 국민의힘 의원의 진단이다.
#여당도 '부자 몸조심'
국민의힘 역시 ‘부자 몸조심’ 모드가 눈에 보일 정도다. 민주당이 자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끄러운 상황이다 보니 구태여 득점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책골이 쏟아지고, 자동 득점이 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설화로 최고위원들이 줄줄이 징계를 받은 터라 입을 닫는 것이 가장 좋은 처신이라는 심리도 깔려 있다.
태영호 전 최고위원 자진 사퇴에 따른 후임 최고위원 선출 절차도 최근 시작됐는데, 이 역시 조용하게 진행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최고위원 보궐선거 선거관리위원회를 꾸리고, 6월 9일 ARS와 결합한 온라인 방식으로 최고위원을 선출하기로 했다.
현재 자천은 없고 타천 형식으로 전북 남원·임실·순창을 지역구로 둔 이용호 의원과 서울 서초을이 지역구인 박성중 의원, TK(대구·경북) 출신 김정재 이만희 의원, 경남 통영·고성이 지역구인 정점식 의원 등이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초선 의원 중에서는 ‘친윤’ 핵심으로 불리는 이용 의원 이름도 나온다.
하지만 타천으로 후보군이 된 당사자들은 공개적으로 출마 의사를 밝히지 못하는 모양새다. 때문에 사실상 추대 형식으로 최고위원 공석을 채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후보군이 자연스럽게 정리돼 경선 없이 최고위원이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조용한 선출 형태에다 경선도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지난 3·8 전당대회에서처럼 용산의 개입설은 불거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당과 정부, 대통령실이 호흡을 잘 맞추고 있는 터라 누가 되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윤재옥 원내대표를 선출한 지난 원내대표 선거가 좋은 본보기라는 말도 있다. 지도부 선출 때마다 물 흐르는 대로 맡겨놓으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이제 사람 때문에 잡음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자신감이다. 용산 개입설이 오히려 지도부 정통성을 약화시키고 용산에 더 큰 부담을 지웠다는 학습 효과도 강해졌다.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올라가고 1호 당원으로서 여당에 대한 보이지 않는 장악력이 높아졌다는 대통령실의 인식도 여당 운영을 직영으로 맡기는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수성 전략 괜찮을까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의 악재 시리즈가 상당한 충격파를 낳고 있다는 반응이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출렁이고,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 그 증거다. 이런 만큼 여권이 수세에 몰린 야당 상태에 맞춰 전략을 짜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권의 이슈 주기가 길지 못하다는 점이다. 상대의 악재에 편승해서 가다 보면, 이에 계속 매달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고 상대의 악재 이슈가 종착점에 다다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명박 정부는 2007년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광우병 사태 여파로 거의 매일 시위가 벌어지면서 정권이 흔들릴 정도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해 여름을 기점으로 광우병 이슈는 사라졌고, 이듬해 총선에서 당시 여당은 국회 과반 의석을 획득했다.
상대의 헛발질에만 기대고 있는 ‘조용한 여당’에 홍준표 대구시장은 일격을 가했다. 홍 시장은 5월 17일 자신의 SNS에 “간호법뿐만 아니라 직역 간 갈등만 증폭시키는 민주당은 지금 혼란만 조장해 윤석열 정권을 공격하는 소탐대실을 하고 있다”고 일단 민주당을 공격했다. 이어 화살을 돌려 “민주당의 문제가 이재명 송영길 김남국 등의 치유 불능한 부패에 있다면, 국민의힘의 문제는 무능과 무기력에 있다”며 “국민의힘이 하루빨리 지도력을 회복해 유능한 여당으로 거듭나기 바란다”고 충고했다.
그렇다고 현재 여권이 새로운 카드를 준비한다는 물밑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만 기대는 형태가 반복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예측이다. 결국 대통령의 국정 성과에 의존하는 모양새는 갈수록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다소 위험성은 있지만 개각을 통해 선수를 보강, 화력을 좀 더 키워야 한다는 ‘전력 강화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국민들에게 경제 활력 등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야 하고, 이를 위해선 메신저를 바꿔줘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만 기대는 모습으로는 한계가 분명하고 벌써 피로감도 찾아왔다는 지적이다.
장외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경제 전문가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5월 16일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 나와 “민생 안정을 위한 경제지표를 찾아볼 수 없고, 경제정책이라는 게 그냥 ‘무’ 상태”라고 질타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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