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넥센의 개막전 경기.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오프라인 암표상들이 온라인까지 진출해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
암표에 대한 야구팬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경찰은 지난 4월부터 야구장 근처의 암표 행위를 대대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 야구장 근처를 가보면 암표 행위는 근절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경찰의 단속을 피하는 방식이 더욱 교묘해졌다. 대표적인 수법이 ‘장내거래’다. 표를 가지고 있으면 경기장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이용, 암표상과 고객이 경기장 안으로 입장을 하고 장내에서 거래를 한 뒤 고객이 밖으로 나와 일행들을 다시 데리고 입장하는 방식이다. 매표소 근처나 경기장 주변에서 암표거래를 단속하는 경찰은 허탕을 치기 일쑤다. 아예 경기장에서 거리를 두고 ‘접선’ 하는 방법도 있다. 역시 경찰의 단속이 경기장 주변에 머문다는 점을 이용, 좀 더 떨어진 곳에서 거래를 하는 방식이다. 뛰는 경찰 위에 나는 암표상이 있는 셈이다.
잠실야구장을 찾았지만 암표를 구할 수밖에 없었던 A 씨는 암표상으로부터 잠실구장 옐로우석 표(정가 9000원-주중, 1만원-주말)를 2만 원에 샀다. “KIA 팬이라서 야구장에 왔는데 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외야 쪽은 화장실 가기가 애매해 좋은 자리를 구해볼까 했는데 그 자리들은 이미 매진이다. 암표상한테나 구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샀다. 솔직히 짜증나는데 방법이 없지 않는가”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자신을 삼성 팬이라고 소개한 30대 중반의 한 회사원은 “갑자기 야구장을 오게 돼 예매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매를 하려고 해도 11시에 예매사이트가 오픈된 후 몇 분 지나기도 전에 매진된다. 특히 연석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암표상들이 선점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암표상이 테이블석(정가 4만 원)을 10만 원에 구해줄 수 있다고 제안해서 어이가 없었다. 이런 폭리가 어디 있는가 싶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울며 겨자 먹기로 블루석(정가 1만 2000원-주중, 1만 5000원-주말)을 장당 3만 원에 구해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팬들은 입을 모아 단속의 필요성을 말했지만 단속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야구팬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단속을 담당한 경찰의 입장을 들어봤다. 목동야구장을 관할하는 양천경찰서 생활질서계 관계자는 암표거래 단속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우리도 지난 황금연휴(부처님 오신 날이 낀 5월 26일부터 28일까지)나 주말에 단속을 하러 나갔다. 엘롯기(LG 트윈스, 롯데 자이언츠, KIA 타이거즈)라는 인기 팀들이 경기를 하는 날은 관중이 많기 때문에 단속에 더욱 힘을 쓴다. 하지만 단속을 하려면 직접 거래하는 순간을 적발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거래가 지능화되고 은밀해져서 적발 건수는 많지 않다.”
그는 덧붙여서 “적발해도 경범죄 위반(경범죄처벌법 제1-47호 암표매매)으로 최고 20만 원 벌금에 처하는 게 전부다. 구단 관계자들과 협조해서 단속 활동을 강화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프로야구를 운영하고 있는 KBO와 각 프로구단은 암표행위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KBO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암표 행위는 당연히 근절되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시즌 중 표 관리는 각 구단이 맡아서 한다. KBO는 포스트 시즌만 관리한다. 포스트 시즌의 경우 경찰과 용역업체를 통해 현장 배치를 하고 질서 유지와 암표 단속을 한다”고 밝혔다. 덧붙여 “요즘엔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기 때문에 암표 행위가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즌 중 표를 관리한다는 각 구단은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넥센 구단의 홍보팀 관계자는 “구단에 특별히 암표를 관리하는 부서나 직원은 없다. 다만 가끔 경호팀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의 홍보팀 관계자 역시 “구단 내 암표 관련 부서나 직원은 없다. 거의 인터넷 예매를 통해 발권이 이뤄지고 현장 발권은 얼마 되지 않아 암표는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암표 행위에 대해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은 없다는 말이다. 야구표를 구하지 못해 불만을 가진 팬들이 구단에 항의전화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팬들의 불만 접수 경우는 거의 없다. 유관기관인 관할경찰서와 협조하기는 하지만 단속 건수는 많지 않다”는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표를 가지고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내 한 포털의 중고거래카페에는 표를 양도한다는 게시물이 줄을 잇고 있다. 아예 전문적으로 야구장 티켓만을 거래하는 카페도 등장했다. 회원수가 1만 명이 넘는 한 야구티켓거래 카페에는 오늘 당장의 경기부터 앞으로 있을 경기들까지 다양한 좌석에 걸쳐 입장할 수 있는 티켓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 판매자는 관중이 몰리는 주말경기 표를 14장이나 확보하고 버젓이 판매 중이다.
▲ 온라인 야구표거래 카페 화면 캡처. |
기자가 직접 온라인 암표상에게 표를 구하려 문의하자 한 젊은 남자가 친절하게 남아있는 좌석과 가격을 안내했다. 정가 9000원의 옐로우석 두 장을 주문하자 3만 5000원이라는 가격이 제시됐다. 사기 등을 이유로 불안하다며 현장에서 구하고 싶다고 말하자 “잠시만 기다리라”던 온라인 암표상은 현장에서 표를 구할 수 있다는 전화번호 하나를 알려줬다. 잠실구장 중앙매표소 앞에 가서 온라인 암표상에게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자 한 중년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중앙매표소 앞에서 암표를 팔던 암표상이었다. 온라인 암표상과 오프라인 암표상이 별개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던 암표상들이 온라인까지 진출해서 온라인·오프라인 암표조직이 유기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단속의 손이 느슨해진 틈으로 암표상들은 어느새 온라인까지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표를 구하지 못한 야구팬들은 여전히 암표상에게 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장에는 암표상만 암약하는 것이 아니다. 미리 구해둔 암표로 카드 가입을 권유하는 카드 영업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앙매표소 앞에 있던 기자에게 한 여성이 접근해서는 “카드 쓰시죠? 어휴~ 요새는 암표도 너무 비싸고, 카드 하나 만드시면 어때요?”라고 말했다. 어떤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고 야구 티켓을 주냐는 질문에 “S 카드, K 카드 뭐 없는 거 없어요. 시중에 있는 카드 다 있다고 보시면 돼요. S 카드 없으시죠? 하나 발급 받으시고 (야구)표 받아가세요. 어떤 분은 카드 딱 10만 원만 쓰고 바로 해지하셨대요”라며 대책까지 제안해서 영업에 열을 올렸다. 최소 4~5명은 되는 여성들이 야구 티켓을 미끼로 카드 가입을 권유하고 다녔다. 야구의 인기가 높아지고 표가 품귀 현상을 빚어지면서 나타난 신풍속도다.
암표상과 영업맨들에 치여 야구팬들의 편의와 권리는 설 자리가 없었다. 책임있는 기관의 반응이 주목되는 가운데 향후 남은 시즌 동안에 야구팬들이 표 구하기 전쟁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민식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