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예의 없는 세대’?…무례한 세대 가르기 결말
- 치솟는 아동·청소년 우울증...청소년 자해↑
-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식' 교육제도 숙론(熟論) 필요
[일요신문] 가정의 달인 5월, 한국 청소년들의 극단적 선택이 크게 늘고 있어 사회적 관심과 배려 그리고 제도적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코로나19는 하향 조정됐지만, 청소년들에겐 엔데믹 블루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지난 3년 동안 친구들과의 물리적 단절은 심리적 고립을 가져왔다. 무엇보다 일차적으로 부모 간 불화로 이어지는 폭언과 폭행이 청소년들에게 반복 노출됐다. 상담·정신의학 전문가들이 코로나19로 인한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이 청소년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
특히, 최근 10대 청소년의 극단적 선택이 SNS에 실시간으로 나가면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에서 발생한 사건이지만 SNS, 인터넷 커뮤니티, 메신저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밈(meme·문화적 유전자)'처럼 퍼지고 있다. 청소년들이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를 찾는 것은 마음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기 위함이지만,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악용되면서 심적인 위로보단 극단적 선택이라는 부추김으로 이어지는 실정이다.
― 청소년, 우울·자해·극단적 선택↑'빨간불'
2021년 기준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1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극단적 선택'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꿈나무들이 질병이나 사고 등이 아니라 마음의 병으로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
코로나19 전·후로 청소년들의 극단적 선택은 크게 늘었다. 12~14세 극단적 선택(10만 명당)은 2000년 1.1명, 2021년 5.0명으로 크게 늘었다. 15~17세는 2000년 5.6명, 2021년 9.5명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도 청소년들의 우울이 드러난다. 아동·청소년 우울증 진료 건수는 2019년 3만 3000건, 2021년 약 4만 건으로 20% 가량 치솟았다. 특히 10대 후반 여청소년의 자해 또는 극단적 선택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조사에선 10대의 우울이 20대에도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우울증 환자는 2017년 7만 8016명, 2021년 17만 7166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127% 급증한 것이다. 극단적 선택(10만 명당)은 2017년 16.4명, 2021년 23.5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20대 사망 원인 중 극단적 선택이 56.8%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 청소년, 왜 세상을 등지는가?
- 무한경쟁과 사회 양극화가 낳은 '상대적 박탈감'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극단적 선택 1위, 저출생 1위라는 국가적 생존 기로에 서 있다. 전 세계가 똑같이 팬데믹을 겪었는데 유독 한국 청소년들의 극단적 선택이 많다. 상담·교육계 전문가들은 한국 청소년들이 어릴 적부터 겪는 '치열한 경쟁 구도'를 그 이유로 꼽았다.
현 한국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2개 이상의 언어를 가르치고 수학과 영어 등 선행 학습을 하는 사교육이 만연해 있다. 부모 또는 친구와 대화하는 시간보다 학원 강사에게 '상대방을 점수로 찍어 누르는 방법'에 배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특히 과거 수능은 전국을 무대로 경쟁하는 시대였다면, 현재는 내신을 두고 교실 옆 짝꿍과도 치열하게 다퉈야 한다. 무한 경쟁이 낳은 비극이 청소년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청소년들이 SNS 의존도가 높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익숙한 청소년들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교육도 대면보다 비대면으로 더욱 가속화됐다. 이들은 홀로 공부를 하는 동시에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을 하면서 서로 간 교류를 한다.
문제는 SNS의 여과 없는 수위 그리고 의존성이다. 짧지만 강렬한 자극을 주는 20~30초 미만의 숏폼(short form) 영상엔 자신과 같은 나이대의 친구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청소년들은 이런 중독성 강한 노래와 고안된 안무를 따라 추면서 밈을 형성하고 있다.
지금도 SNS에선 성인들도 혀를 내두를 만한 노출 수위의 영상들이 하루에 수천수만 개씩 쏟아진다. 높은 조회수와 댓글로 관심을 받고 싶기에 더 자극적으로, 더욱 강렬한 숏폼이 등장하고 있다. 이 지점을 노린 이들은 팔로우·조회수 틈새 장사에 나섰다. 고액 알바 등을 미끼로 잘못된 길로 유혹하는 광고와 스팸 등이 여과 없이 청소년들의 손바닥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SNS 세상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정서적 메마름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문기 오앤이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소셜미디어(Social media)의 영향으로 대중들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정보에 계속 노출되고 있다. 자연스레 겉치레를 중요시하는 풍조가 만연해지고,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 자신을 포장하는 행위에 중독이 되어버린다. 판타지에 몰입된 자아와 현실의 자아 사이에 큰 괴리감이 생기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 대프리카,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한 마을이 필요하다"
- MZ, 이어폰 꽂는 '예의 없는 세대'? 기성 꼰대부터 변화해야
- 자신의 꿈과 능력 객관적으로 보는 'S' 슈퍼 세대
"요즘 MZ세대들은 예의가 없어. 힘든 일도 안 하려고 자기밖에 몰라. 나 때는 말이야…"
현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을 'MZ'라고 규정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대중교통에서 자리조차 양보하지 않는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세대의 입장에선 '요즘 세대는 끈기 없고 노력하지 않는다'라는 편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운 것은 다름 아닌 윗 세대, 미디어, 그리고 언론들이다.
대한민국에만 쓰이는 'MZ(Millennial Z)'라는 네이밍은 현 청년들에게 무례한 재단이다. 'MZ'란 1980~1990년에 태어난 세대를 '밀레니얼(Millennial Generation)'과 1990~2000년 세대를 지칭하는 'Z' 세대를 합친 단어로 과거의 잣대로 세대를 나눈 개념이다.
외환위기를 겪을 당시엔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남아있었고 사회적 갈등 또한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모두가 어렵고 힘든 시기였기에 함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삼포',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N포' 그리고 'MZ' 세대들은 기성세대들이 조장한 극심한 사회적 양극화, 경제적 낙차, 불안정한 일자리와 사회복지 시스템의 부재 등에 고통을 겪고 있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 물가 상승, 먼지 같은 월급으로 내 집 하나 장만하기 어려운 현 한국에선 청년들은 부모 찬스를 쓰는 소수의 엘리트(?)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겪는 것이다.
여기에 여타 세대들과 비교할 수 없는 급격한 환경 변화와 기술 발전, 그리고 무한 경쟁 교육 속에서 나름의 세계를 구축하고 문화를 조성하는 것을 두고 '이어폰 꽂고 스마트폰만 보는 소통 안 하는 세대', '자기 밖에 모르는 예의 없는 세대'라는 식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이 'MZ'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실제로 현 세대들은 사회적 공헌에 많이 참여한다. 돈이 없어 배가 고픈 아이를 위해 무한정 음식을 준다는 한 음식점을 SNS에 올리며 이슈를 만든다. 공감과 댓글이 수백 수천 개가 달리면서 전국의 청년들이 그곳에 찾아가 이른바 '돈쭐내기'로 사장님의 선행에 힘을 실어준다. 또 스스로 선행을 한 것을 SNS에 인증하는 방식으로 공헌 동참을 유도한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 또는 비양심적인 행위를 하는 곳일 경우엔 가격 대비 성능이 좋더라도 구매하지 않는 세대다.
자신의 꿈과 능력을 객관적인 수치로 보려고 노력하고 이상보다는 현실 중심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S(Super) 세대'라고 볼 수 있다. 수십 년간의 정보들을 빅데이터로 한눈에 보고, AI 알고리즘을 자유롭게 다룰 줄 아는 박학다식한 S세대를 기성세대들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받아들여야 미래로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계에선 흔히 아프리카 속담 중 하나인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격언을 인용한다. 특히 청소년의 감소폭이 큰 대구에 청소년들에게 뜨거운 열정을 심어주기 위해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식' 교육제도를 두고 정치·경제·교육·문화예술계 등이 함께 모여 숙론(熟論)해야 할 것이다.
― 사회적 우울,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한국은 OECD 국가 중 우울증 유병률 1위(36.8%)이다. 인구 100명당 항우울제 소비량은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으로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 치료율(11.2%)도 미국(66.3%)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사회 저변에 깔린 '우울증은 정신 약한 사람이 걸리는 것' 정도로 치부하는 인식의 결과이다. 다행인 점은 지난해 12월부터 정신과가 아닌 가정의학과·산부인과·신경과 등의 항우울제 처방을 연간 60일로 제한했던 규제가 폐지되면서 치료 문턱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 정도로 여기는 선진국과 같이 사회적 인식 개선은 부족한 실정이다. 우울증 환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들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 대구시의회·대구교육청, 교육 현장 제대로 살펴야
- 대구교육청, 정신건강 위기 학생 4억 9000만 원 지원...복잡한 절차 개선 필요
대구교육청은 이달 초 '2023년도 정신건강 위기학생 심층치료비 지원사업'을 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우울·불안 등 심리·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되, 올 한해 예산으로 4억 9000만 원을 편성했다. 이 예산은 대구 초·중·고등학생은 물론 휴학생까지 대상으로 한다. 예산은 △병·의원 진료·치료비 △전문상담기관 상담비(정신건강전문의 진단서 필수) △자살(자해) 시도로 인한 신체 상해 치료비를 심의위원회 심의 후 1인당 최대 600만 원까지 지원한다고 한다.
진료·치료비 지원이 필요한 할 시 치료비 청구서 등 관련 서류를 첨부해 분기별로 해당 학교 Wee클래스를 통해 진료·치료비를 위탁 전문기관인 경북대병원Wee센터, 영남Wee센터, 동산Wee센터, 대구가톨릭Wee센터에 신청해야 한다. 이후 심의위원회를 거쳐 학생 보호자에게 지원금이 나간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예산 규모도 적지만,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고 지적한다. 정신건강의 위기를 겪는 학생들은 부모의 영향이 지배적이다. 치료비 청구서를 뽑아 각 위탁센터에 신청하고 심의위까지 거쳐 지원금을 타내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제도화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청과 학교당국이 학교폭력을 알면서도 방관하다가 일이 터지면 사건을 덮으려는 경향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충남 천안에서 고등학생 3학년 김상연(18) 군은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서엔 옷차림, 외모 비하, 다른 지역 왔다, 장래 희망조차 욕설을 듣고 놀림을 지속적으로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담임 선생님과 상담 중에 학폭 얘기가 나왔지만, 선생님은 나를 다시 부르지 않았다. 선생님이 부모님께 신고하지 못하게 겁을 준 것 같다'고도 기록됐다. '이 나라는 가해자 편이니까'라는 유서는 담임 교사는 물론 학교, 교육청까지 뼈에 새겨야 할 대목이다. 심지어 김 군의 학부모 주장대로 학교 측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 요구를 거부했다면 이는 심각한 직무유기다.
대구시교육청은 정신건강 위기 학생 치료비 지원 외에도 정서행동특성검사를 통한 관심군 병원연계 지원 사업, 정신건강전문가 학교방문사업을 통한 컨설팅과 다품 지원 사업 등 다양한 예방적 심리지원 사업도 함께 한다고 전했다. 강은희 교육감은 "우리 학생들이 지친 심리·정서를 회복하고, 마음의 힘을 길러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다양한 지원 사업을 지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구시의회 교육위원회는 대구시교육청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마음교육'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 교육위 정책지원관들은 마음교육 선도학교 학남고등학교를 방문해 '마음챙김 교육'을 학생들과 함께 경험하면서 향후 제도 개선이나 입법이 필요한 사안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경원 대구/경북 기자 ilyo07@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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