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차량 도난 관련 보상 합의에 “우리나라였으면 안 해줬을 것” 반응…전문가 “양국 시스템 차이 커”
지난해 미국에서는 현대차와 기아 차량을 대상으로 도난 범죄가 확산됐다. 미국의 피해차주들은 도난에 취약한 차를 만들었다며 현대차와 기아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도난 방지용 특수암호 키가 장착된 엔진 이모빌라이저가 없어 절도범죄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 미국법인은 보도자료를 통해 “도난 방지 장치가 없는 차량 소유자들의 집단소송을 해결하기 위한 합의에 서명했다”며 “합의에 드는 총 금액은 약 2억 달러(약 2700억 원)에 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와 기아는 이들 차량이 미 당국이 요구하는 도난 방지 요건을 완벽하게 준수하고 있지만, 고객 차량의 보안을 지원하기 위해 이번 합의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합의로 도난 방지를 위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한 일부 차량 소유주들에게 도난 방지 장치 구매 시 최대 300달러(한화 약 40만 원)까지 현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국내 일부 소비자들은 “우리나라였으면 보상 안 해줬을 것”, “우리나라도 똑같은 상황이면 해주나”, “국내 판매 차량 가격 올려서 2700억 보상 메우는 것 아니냐”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 피해차주 보상과 관련된 기술은 우리나라 차량에는 다 들어가 있는 것”이라며 “미국과 우리나라의 법적 규제가 달라 소비자들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차량 가격 인상 우려에 대해서는 “엄연히 판매법인이 다르고 법인의 손익계산이 달라 보상 때문에 국내 차량 가격이 인상된다는 것은 회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현대차의 설명대로 이번 사안은 미국과 국내 차량의 기술과 장치가 서로 다르기에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거나 만약을 가정해 국내에서 같은 사안이 발생 시 현대차의 늑장대응을 추론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과 전문가들이 현대차·기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이유는 그동안 사례에서 신뢰를 주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과거 현대차‧기아는 미국과 한국에서 비슷한 차량결함이 발생했을 때 그에 대한 보상 시기나 보상 내용 등에 차이를 보여왔다. 한 예로 현대차는 2015년 9월 미국에서 세타2 엔진을 장착한 2011~2012년식 쏘나타(YF) 약 47만 대에 대한 리콜을 실시했고, 2013~2014년식은 보증수리 기간을 연장했다. 당시 현대차는 국내 생산 차량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국내 생산 차량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국토교통부의 조사가 본격화되자 2017년 결국 국내에서도 리콜을 결정했다. 2016년 현대차에서 20여 년간 일해 온 엔지니어는 회사가 세타2 엔진 결함을 알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며 미국 도로교통안전국과 한국 정부 등에 이를 제보하기도 했다. 리콜이 되기도 전에 세타2 엔진 결함 문제가 계속 제기돼 왔음에도 미국에서는 2015년 대량 리콜이 이뤄진 반면 국내에서는 2017년이 돼서야 리콜이 진행돼 당시 현대차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 현대차는 미국에서 2012년 앞좌석 조수석의 에어백 결함이 발견돼 2006년 4월~7월 7일 제조된 산타페 22만 8797대를 리콜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현대차가 2015년 제조·판매한 산타페 차량의 조수석 에어백 결함을 발견하고도 해당 사실을 숨겼다는 의혹이 나왔다. 당시 국토부는 현대차가 에어백 결함을 발견하고도 은폐한 의혹이 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한국에서는 리콜을 하더라도 시기상 마지못해 하는 것 같다”며 “이런 사례들이 있다 보니 국내 소비자들이 홀대받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주 한국자동차소비자연맹 회장은 “오래전 연비 과장 문제, 에어백 등 안전장치 차별 및 세타2 엔진 결함 문제와 같이 여러 가지 국내 소비자 차별 논란이 있었을 때도 미국에서는 엄청난 보상을 해주고 한국에서는 변명하기에만 급급했다”며 “현대차‧기아의 국내 점유율이 거의 90%에 육박해 땅 짚고 헤엄치는 식이고, 미국에서는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보상을 해주는 것”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국내 소비자들이 이번 미국 피해차주들 보상에 대해서도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전했다.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는 2022년 신차 판매량을 기준으로 88.59% 점유율을 기록했다.
앞서 2013년 미국환경보호국은 현대차 일부 차종의 연비가 실제보다 부풀려졌다고 지적했고, 북미지역 소비자들이 현대차‧기아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차‧기아는 총 3억 9500만 달러(약 4191억 원)를 북미 소비자들에게 지급한 바 있다. 이는 국내 소비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으며, 국내 소비자들도 연비 과장 관련 소송을 제기했지만 연이어 소비자 패소 결정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을 대하는 미국과 한국의 태도, 사법 시스템 차이 등이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레몬법(차량 및 전자제품에 결함 있을 때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교환, 환불, 보상 등을 하도록 규정한 미국의 소비자보호법)처럼 미국은 100% 소비자 중심으로 법이나 제도가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기업 중심의 법이 많다”며 “이번에 현대차‧기아의 잘못이 아닌데도 미국에 보상해준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말했다.
박상흠 법부법인 우리들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집단소송이 제도권에 편입돼 있지 않기도 하고, 손해배상액이 2000만~3000만 원으로 크지 않아 소송을 진행할 수는 있지만 활용이 잘 안 된다”며 “집단소송에 대한 정식 규정도 따로 없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집단소송에서는 소송에 참여한 사람만 혜택 보는 경우가 있고, 소송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혜택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전자일 때가 많다”며 “미국에서는 집단소송을 진행하면 손해배상액이 크고, 소송에 참여하지 않아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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