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은 올해로 창간 31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세간에 큰 파문을 일으킨 굵직굵직한 특종과 기획 기사들이 일요신문을 통해 빛을 봤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전두환 일가의 숨겨진 재산 추적 기사였다. 일요신문 기자들이 발품 들여 구축한 전두환가(家) 재산 데이터는 가히 독보적이라 자평할 수 있다.
일요신문은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 파일을 다시 열어봤다. 전두환 본인과 배우자를 비롯한 직계가족과 친인척, 측근들이 보유했던 부동산과 법인들은 서울과 경기 지역에 수두룩하니 산재해있다. 이걸 금액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지 추산하기도 버겁다. 막대한 부(富)다. ‘천문학적 액수’라 두루뭉술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 재산도 전두환가 재산 일부일 뿐이다. 주식이나 예금 등 금융자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여기에 연희동 집안 금고에 현금다발, 귀금속 등을 얼마나 숨겨놨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전두환 씨는 이 천문학적 재산 가운데 ‘극히’ 일부만 추징당했다. 그는 1997년 내란‧뇌물수수 등 혐의로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 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1282억 2200만 원만 강제 추징했을 뿐이다. 전 씨가 사망 전까지 납부하지 않은 추징금은 922억 7800만 원(추징 집행률 58%)에 달한다.
일요신문은 전두환 일가 재산 가운데 부동산을 다시 들여다봤다. 전두환 본인 명의로 된 부동산은 확인되지 않았다. 생전에 전재국 등 자녀에게 증여했다가 검찰에 압류 당했기 때문이다.
전두환 배우자, 자녀(3남1녀), 며느리 등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취재 결과, 부동산 가격 하락세인 요즘 그들이 소유한 건물과 주택 등에도 가격 하락 등 미세한 변동이 감지됐다. 전두환 일가가 수도권에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은 올해 2023년 1월 1일 기준 개별주택가격이나 공동주택공시가격, 개별공시지가, 시세 등으로 추정했을 때 253억 원에 달한다.
전두환 씨가 살던 연희동 주택 건물과 토지는 배우자 이순자 씨와 셋째 며느리 이윤혜 씨, 전 청와대 비서관 이택수 씨 등 3명이 분할 소유하고 있으며 ‘공시가’ 64억 5060만 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두환 장남 전재국 씨는 서울 평창동과 경기도 파주 건물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시세로 160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장녀 전효선 씨는 서울 연희동에 있는 고급빌라에 살고 있는데 공동주택공시가격으로 6억 3200만 원이다. 그런데 지난 4월 이 빌라에 입주한 주민은 16억 5000만 원에 매입했다. 공시가와 매매가가 10억 원 이상 차이가 난다.
차남 전재용 씨는 서울 이태원동에 있는 고급 주상복합건물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1월 1일 기준 공동주택공시가격은 22억 1700만 원인데, 5월 현재 실매매가는 40억 원이다. 공시가와 실거래가 간극이 18억 원에 육박한다.
이처럼 전씨 일가가 소유한 부동산 모두를 공시가가 아닌 시세가로 환산하면 수백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 이들 전두환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하나하나 면밀히 들여다보자. 서울의 7대 부촌(富村) 가운데 한 곳인 연희동. 1980년대부터 연희동 하면 가장 먼저 전두환 씨가 연상된다. 그의 자택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9X-X 와 9X-XX 일대 4개 필지에 있기 때문이다.
전 씨의 연희동 집은 토지 1642.6㎡(약 499평) 규모다. 이곳에 건물은 안채와 별채 두 채가 있다. 안채는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연면적 385.74㎡(117평)이며, 별채는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연면적 257.59㎡(78평) 규모다.
연희동 주택 소유자는 세 명. 전두환 배우자 이순자 씨와 삼남 전재만 씨 배우자 이윤혜 씨 그리고 전 청와대 비서관 이택수 씨 등이다. 이순자 씨는 안채를, 이윤혜 씨는 별채를, 이택수 씨는 정원과 도로 등을 각각 소유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순자 씨가 소유하고 있는 안채는 2023년 1월 1일 기준 개별주택가격이 33억 1900만 원이다. 이윤혜 씨의 별채는 12억 5900만 원, 이택수 씨 소유 정원과 도로는 각각 17억 8900만여 원, 8360만여 원이다. 이로써 연희동 집 공시가는 64억 5060만 원이다. 이는 부동산 경기 영향으로 2022년 1월 1일 기준 개별주택가격(70억 592만여 원)보다 5억 6000만여 원 하락한 것이다.
연희동 집은 이순자 씨 등이 임의로 처분할 수 없다. 검찰이 전두환 씨가 납부하지 않은 추징금을 확보하기 위해 압류했기 때문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021년 4월 이순자 씨 토지와 주택(안채)에 대해 매매, 증여, 전세권, 저당권, 임차권 등 일체의 처분 행위를 금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이윤혜 씨가 소유한 별채에 대해 검찰은 2013년 9월 압류했고 2018년 12월 공매 공고한 상태다. 이택수 씨가 소유하고 있는 정원에 대해서도 서부지법은 2021년 4월 일체의 처분 행위를 금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이택수 씨가 소유한 도로에 대해선 검찰이 2013년 압류했고 2018년 12월 공매 공고가 나왔다.
전두환 삼남 전재만-이윤혜 부부의 부동산등기부상 주소지도 이 집이다. 실제 거주하진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재만 씨는 장인인 이희상 전 동아원그룹 회장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에서 1000억 원 대의 와이너리(와인 생산 공장)를 운영 중으로 현지에 거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연희동 주택은 법적으로 꽁꽁 묶인 상태다. 향후 공매 등을 통해 제3자에게 소유권이 넘어갈 경우 이순자 씨 등은 이 집을 떠나야 한다. 다만 전두환 친인척이나 측근 가운데 누군가 매입해 전두환 일가에 무상 제공하거나 임대할 경우 눌러앉아 살 수도 있다.
전두환 장남 전재국 씨는 경기도 파주출판단지에 위치한 건물(파주시 문발동 52X-X)을 소유하고 있다. 전재국 씨는 1998년 8월 이곳 토지 1515.4㎡(459평)를 매입해, 2007년 5월 지상 4층, 지하 1층, 연면적 3033.01㎡(919평) 규모 건물을 지었다.
이 건물엔 음악출판사 ‘음악세계’, 서점 운영업체 ‘리브로’, 도서 유통업체 ‘북플러스’ 등 전재국 씨가 실소유한 회사들이 입주해 있다. 개별공시지가(2023년 1월 1일 기준)는 1㎡당 75만 7900원으로 토지 면적(1515.4㎡)으로 산정하면 11억 4852만 1660원이다. 이 부지에 있는 건물 가격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네이버 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파주출판단지 내에서 전재국 소유 건물과 비슷한 규모의 건물(토지 1596.5㎡·484평, 연면적 3090.18㎡·936평)은 100억 원대로 책정됐다.
전재국 씨는 서울 평창동에 있는 건물도 보유하고 있다. 그는 2002년 6월 평창동 458-X 토지 621㎡(188평)와 건물을 15억 원에 사들였다. 이어 같은 해 8월엔 평창동 458-XX 토지 324㎡(98평)를 추가 매입했다. 그리고 2003년 3월 연면적 1393.88㎡(422평) 규모의 지상 2층, 지하 2층 건물로 증·개축했다. 현재 이 건물엔 전재국 씨가 운영하는 북커스(북카페)와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성강문화재단이 입주해 있다.
개별공시지가는 1㎡당 426만 9000원이며, 평창동 458-X와 458-XX번지 등 두 개 필지의 토지 면적(945㎡)으로 산정하면 40억 3420만 5000원이다. 이 지역 부동산업자는 전재국 소유 토지 시세를 최대 60억 원으로 보고 있다. 전재국 부부의 부동산등기부상 주소지도 이곳 평창동 건물로 돼 있다.
전두환 장녀 전효선 씨는 연희동 37-X에 있는 고급빌라를 소유하고 있다. 237.32㎡(72평) 규모로 2023년 1월 1일 기준으로 공동주택공시가격은 6억 3200만 원. 이 빌라는 2007년 전두환 처남인 이창석 씨의 아들이 7억 4000만 원에 매입했다가 3년 후인 2010년 전효선 씨한테 같은 가격에 소유권을 넘겼다. 당시는 부동산 가격이 해마다 상승할 때여서 이창석 씨 아들이 전효선 씨에게 사실상 ‘헐값 매도’한 셈이다.
전두환 둘째 아들 전재용-박상아 부부의 부동산등기부상 주소지는 서울 이태원동에 있는 주상복합건물이다. 원래 이 건물엔 전재용 씨가 소유한 법인 비엘에셋이 세 채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두 채는 비엘에셋이 2001년 9월 매입했다가 2013년 다른 사람들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나머지 한 채도 2001년 비엘에셋이 매입했으나 2013년 7월 서울중앙지검이 압류했고 이후 세금체납으로 서초세무서와 삼성세무서 등에서도 압류한 상태다. 이 압류된 집에 현재 전재용 부부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재용 부부 거주지로 알려진 이곳은 2023년 1월 1일 기준 공동주택공시가격이 22억 1700만 원이다.
일요신문은 전두환 집안 비자금 등을 폭로하고 있는 전우원 씨의 아버지인 전재용 씨를 만나기 위해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했으나 번번이 입구에서 경비원에게 제지당했다. 전재용 부부가 사는지에 대해서도 경비원은 “누가 사는지도 말해줄 수 없다”고만 했다.
전두환 막내아들 전재만 씨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국내 부동산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8층 건물을 2002년 매입했으나 2013년 검찰에 압류당한 바 있다. 이 건물은 2014년 공매를 통해 한 기업체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전재만 씨가 이 건물을 매입할 당시는 100억 원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건물 역시 전두환 씨가 실소유주인 것으로 판단하고 압류했던 것이다. 전재만 씨 배우자 이윤혜 씨도 서울 가회동에 있는 15억 원짜리 빌라를 소유했다가 매도한 바 있다.
형사소송법상 추징 대상자가 사망하면 미납 추징금 집행도 중단된다. 전두환 씨도 사망했기 때문에 추징금 집행이 ‘현재는’ 멈췄다. 그렇다고 다 끝난 건 아니다. 국회에서 전두환 일가 불법 재산 환수를 위한 ‘전두환 추징3법’이나 ‘독립몰수제’를 통과시킬 경우 전 씨 사망과 무관하게 추징할 수 있는 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 추징3법’은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전두환 직계가족을 비롯한 후손들이 향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지속적으로 주목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르포] ‘허브빌리지’ 직접 가보니…아직도 곳곳에 ‘전재국 흔적’
경기 연천군 임진강변에 있는 허브빌리지는 국내 최대 허브 농장이다. 약 5만 7000m²(1만 7000여 평)의 체험형 에코 테마파크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 장남 전재국 씨 가족이 소유했던 곳이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이 2013년 압류했다. 감정가는 250억 원. 하지만 4차례 유찰됐다. 결국 2015년 12월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이 자신의 법인을 통해 118억 원에 허브빌리지를 인수했다.
전두환 손자 전우원 씨는 유튜브 방송에서 전재국 씨가 바지사장을 내세워 운영하는 회사 중 한 곳으로 시공사, 나스미디어와 함께 허브빌리지를 지목하기도 했다. 일요신문 취재진은 허브빌리지를 방문했다. 전재국 씨에서 마리오허브빌리지(주)로 소유권이 넘어간 지 8년 정도 경과한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4월 초 오전 11시경, 허브빌리지 입구는 한산했다. 매표소는 닫혀 있었다. 카페에서 입장권을 구매하라는 안내문만 눈에 들어왔다. 카페로 향해보니 근처에 정원관리 직원만 있을 뿐 카페 직원은 보이질 않았다. 카페 직원을 기다리는 동안 정원관리 직원에게 주말 방문객이 몇 명이었는지 물었더니 “20명 정도 방문했다”고 답했다.
10여 분 뒤 카페 직원이 왔고 입장권을 구입했다. 대인(중학생 이상) 입장료는 방문 당시 동절기(11월 1일~4월 19일) 할인을 적용받아 1인당 5000원. 입장권을 결제하면 커피, 캔 음료 등을 제공했다.
카페 안엔 전재국 씨가 운영했던 출판사 ‘시공사’ 흔적이 남아 있었다. ‘S(SIGONG) B(BOOK) G(GROUP) 시공사’라고 적힌 책 거치대가 있었다. 그 위엔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 인터뷰가 담긴 책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 또 다른 공간으로 가보니 책장엔 시공사가 출판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다만 책 거치대와 책 모두 오래돼 보였다.
카페 후문으로 나와 오른쪽에 위치한 허브숍은 운영하지 않았다. 인근에 있는 밭엔 본격적인 농사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허브들이 풍성하게 자라진 않았다.
온실 안 식물들은 관리가 잘된 상태였다. 온실 인근에 있는 예식장엔 한 방송국의 드라마 세트장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전에도 허브빌리지는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했으며 각종 광고·화보 촬영도 이뤄졌다.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대체로 관리가 잘 안됐다. 그나마 관리가 잘된 연못엔 물고기들이 있었으며, 인근엔 백조·흑조도 각각 2마리씩 있었다. 미술관, 산소휴게실, 허브찜질방 등 건물들도 폐쇄되거나 방치된 상태였다.
포털사이트엔 패밀리 레스토랑과 한식당을 운영한다고 밝혔지만, 방문 당시엔 운영하지 않았다. 허브빌리지 숙박시설 예약 사이트를 확인해 보니 ‘파머스빌리지(레스토랑), 초리(한식당) 운영 안 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숙박시설은 정상 영업하고 있었다.
전재국 자녀들이 이사와 감사를 맡고 있는 ‘실버밸리’는 허브빌리지에 자리한 숙박시설 ‘클럽플로라’ 상표권을 2015년 9월 출원했다. 전재국 씨가 허브빌리지를 홍성열 회장에게 매각한 때는 2015년 12월이므로 상표권 출원 시점이 더 빨랐다. 상표권은 특허청 심사를 거쳐 2016년 9월 등록됐다. 실버밸리는 10년치 상표권료를 납부했으며 2023년 현재도 ‘클럽플로라’ 상표권을 보유하고 있다.
상표권은 실버밸리에 있는데 허블빌리지 측이 현재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마리오아울렛 측은 5월 12일 “허브빌리지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펜션 명칭으로 함께 넘어온 것으로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며 “운영하면서도 실제 (클럽플로라)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펜션이라고 일반적으로 지칭했다”고 밝혔다.
전재국 가족회사 ‘음악세계’는 경기도 연천군과 함께 2011년부터 연천DMZ국제음악제를 매년 개최했다. 개최 장소는 허브빌리지를 포함한 연천군 일대다. 그런데 허브빌리지 소유권이 홍성열 회장에게 넘어간 후에도 허브빌리지에서 2019년까지 DMZ국제음악제가 열렸다.
연천군청 관계자는 “DMZ국제음악제가 2019년까지 열렸는데 이후 코로나19 여파로 계속 연기됐다”며 “올해는 다시 열릴 예정인데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허브빌리지 소유권이 이전됐음에도 2019년까지 연천DMZ국제음악제가 열린 것에 대해 마리오아울렛 측은 “(연천군이) 연천 지역에서 숙박, 음악 연습, 공연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최적지가 허브빌리지이기 때문에 (DMZ음악제 장소로) 이용한 것 같다”며 “(전재국 가족회사인) 음악세계 외에도 DMZ국제피아노협회 등 여러 단체에서 주최하는 유사한 DMZ음악회나 음악캠프가 허브빌리지에서 열리고 있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김지영‧남경식‧허일권‧노영현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