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초선 국회의원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당선이 되니까 고참 의원들이 그들만 가는 특별한 양복점을 소개해 주더라는 것이다. 그 양복점은 재킷 안에 양쪽으로 커다란 주머니를 붙여주었다. 사람들을 만나 받는 돈 봉투들을 그 안에 여러 개 넣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정치를 하면 돈이 고픈 모양이다.
오래전 내가 공직에 있을 때였다. 입법안을 담당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설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의원들은 바쁘다며 새벽에 만나자고 했다. 조찬모임이 있는 날 현찰을 보자기에 싸서 건네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당시 정부라도 법을 만들려면 정치권에 돈을 바쳐야 했다. 호텔 조찬모임에서 중진의원에게 입법안을 설명을 시작하고 1~2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앞에 있는 국회의원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불쾌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장관이 나올 줄 알았더니 도대체 이게 뭐야? 실무자만 내보내고 말이지. 우리가 새벽에 멀건 죽 한 그릇 먹자고 온 게 아니잖아? 진짜 먹을 걸 줘야 하잖아.”
돈 먹는 데 이력이 난 정치인 특유의 노골적이고 오만한 태도였다. 나는 잠시 설명을 중단하고 대답했다.
“테이블 밑을 보시면 여물이 충분히 있을 겁니다.”
현찰을 싼 보자기를 탁자 밑에 놓아두었었다. 나는 뇌물 공여자보다는 여물 제공자가 되고 싶었다. 그걸 슬쩍 본 국회의원의 얼굴이 활짝 펴지면서 말했다.
“아이쿠 감사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오셔서 입법안을 설명하시느라고 고생이 많으시네. 장관이 아니고 누가 오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내가 아는 공기업 사장은 국회의원이 만나자고 하면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봉투에 현찰을 가득 담아 가져다주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젊은 날 나는 잠시 정보기관에 있었다. 그곳에서 돈이 정치적 채널을 따라 밀실로 들어가는 경로를 알았다. 에너지와 무기의 이권은 역대 대통령들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성역인 것 같았다.
미국의 석유 메이저들은 한국 내의 석유 유통망까지 장악하며 그 이권을 독점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저 검은 원유를 정제할 수 있을 뿐이었다. 광구를 얻기도 힘들었다. 그 대신 석유 메이저들은 정치 계절이 오면 그들의 말을 잘 듣는 정치인들에게 뒷돈을 대주기도 했다. 미국의 무기회사는 한국에 전투기들을 팔고 그냥 있지 않는 것 같았다. 미국 자본으로 한국 내에 대형 호텔을 짓고 그 지분을 영향력을 행사해 준 정치인이 지명하는 사람에게 주기도 했다.
한국 정부에 플랜트 수출을 하게 된 일본의 재벌이 한국 정치인에게 리베이트를 주었다. 그 돈 대신 사카린을 받아 국내에서 정치자금을 만들려다 폭로된 사건도 있었다. 외국의 자본들이 피리를 불면 국가와 민족을 위하겠다고 떠들던 정치인들이 춤을 추었다. 국내의 한 재벌 회장이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국회의원 한 명당 30억~40억 원을 주면 내 부하로 만들 수 있어. 그렇게 20명만 모으면 당을 만들 수 있지. 적당한 원로 정치인을 대통령을 하시라고 부추기면서 당의 얼굴로 영입해 오는 거야.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전당대회에서 내가 역전을 시켜 대통령 후보가 되는 거야. 그렇게 대통령이 될 생각을 가지고 있어.”
그의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수많은 서민들의 지지표를 얻은 국회의원들은 그들을 대표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돈의 노예가 되어 돈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백조같이 깨끗해 보이던 국회의원이 익명의 전자지갑을 여러 개 소유하고 밤도 낮도 없이 수십억에 해당하는 코인 거래를 했다는 전문가의 고발성 논평을 들었다. 품위를 유지하며 떠있기 위해서 흙탕물 속에서 발을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던 것일까.
얼마 전 도지사를 지낸 한 정치인이 말하는 걸 들었다. “정치를 한 결론은 가난밖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고 했다. 그래도 그의 말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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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