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총선 역할론’에 민주당 내홍 증폭 가능성…이재명 대표 ‘공격 모드’ 전환하며 지지층 다잡기
2022년 6월 7일 이낙연 전 대표는 “강물은 포기 않고 끝내 바다에 이른다”면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권 도전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당시 이 전 대표 입지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이 전 대표의 ‘대선 재수’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선이 주를 이뤘다.
반면, 이 전 대표와 대선 경선에서 맞붙었던 이재명 대표는 대선 패배 후 6·1 보궐선거 승리를 통해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이 전 대표가 출국하던 6월 7일은 이 대표가 국회로 첫 출근하는 날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금배지를 단 이 대표는 당 세력을 빠르게 불렸고, 친명계는 명실상부 당의 주류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던가. 이재명 대표와 그의 위상은 바뀌었다. 이 대표는 개인 사법 리스크를 비롯해 리더십 논란에 휩싸이며 거센 퇴진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다. 6월 말 한국으로 들어오는 이 전 대표의 경우 벌써부터 ‘모시기 경쟁’이 펼쳐지는 등 몸값이 치솟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 전 대표 귀국이 당내 계파 주도권 다툼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본다. 비명계가 이 전 대표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한다면 수적 우위에 있는 친명계로서도 적잖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친명계의 경우 이 대표가 검찰 수사 및 재판을 남겨두고 있다는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다. 김남국 의원 암호화폐(가상화폐) 논란 이후 나타나고 있는 친명계 내부 이탈 조짐도 약점으로 꼽힌다.
이미 비명계의 힘은 발휘된 바 있다. 4월 28일 원내대표 선거에서 대표적 이낙연계인 박광온 의원이 당선되면서다. 친명계 표가 여러 후보들에게로 갈린 사이 비명계 표가 결집한 게 승리의 요인이었다. 이 전 대표가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하면 민주당 ‘투톱’인 이재명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 간 힘겨루기도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란 관측이다.
5월 말 미국을 출발해 독일을 거쳐 귀국하는 이낙연 전 대표는 5월 22일 지난 1년간 몸담았던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출판기념회 및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이 전 대표는 저서 ‘대한민국 생존전략’을 소개하며 대한민국이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과 비전을 공개했다.
언론 스포트라이트는 이 대표가 정치 관련 발언을 내놓을지에 쏠렸다. ‘대선 출마’에 대한 질문에 이 전 대표는 “지금 한국은 국내외적 위기를 충분히 잘 관리하지 못하고 있고 그렇게 된 데에는 제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며 “다만 구체적으로 뭘 하겠다는 것은 귀국 후에 많은 사람들과 상의하고 판단을 해 보겠다”고 했다. 말을 아꼈지만 사실상 정치 복귀에 무게를 둔 발언으로 읽혔다.
측근들은 이 전 대표가 귀국 후 당장 정치적 액션을 취하진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낙연계 한 의원은 5월 25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대선이 아직 4년이나 남았다. 서두를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당의 어른으로서 총선을 어떻게 도울지, 지금의 민주당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해선 고민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정치 복귀가 보다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이 전 대표가 그동안 연구에 매진하느라 현장을 많이 다니지 못했다. 민생투어 일환으로 전국을 다니며 국민들과 직접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 전 대표를 중심으로 비명계가 결집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이 전 대표는 당의 내홍을 부추기는 듯한 모양새로 비치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나 친명계를 자극할 수 있는 발언과 메시지 등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친명계 내부에선 이 전 대표 출판기념회 소식 등에 대해 곱지 않은 기류가 감지된다. ‘이재명 지도부’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비명계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전 대표가 정계로 돌아올 경우 당이 더 혼란으로 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 대표를 겨냥한 일련의 비명계 인사들의 공세가 이 전 대표와의 공감대 하에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곳곳에서 나온다.
한 친명 재선 의원은 “이낙연 전 대표 귀국을 앞두고 비명계가 노골적으로 ‘이재명 퇴진’을 부르짖고 있다. 이재명 체제로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라면서 “이낙연 전 대표가 직접 언급하고 있진 않지만 당 내부에선 여러 버전의 ‘이낙연 복귀 플랜’이 오르내린다. 이 전 대표는 특유의 모호한 화법으로 당을 어렵게 하지 말고, 확실히 이재명 대표에게 힘을 실어 달라”고 했다.
실제 5월 초 여의도엔 이 전 대표의 총선 역할론을 강조하는 시나리오가 돌아 큰 관심을 모았다. 앞서 친명 의원이 말한 ‘이낙연 복귀 플랜’과 비슷한 맥락이다. 주요 내용은 민주당 텃밭 호남에서의 지지율 하락, 강경 지지층으로 인한 외연확장 한계 등을 감안하면 이 대표가 2선으로 물러나고, 이 전 대표가 총선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 귀국을 앞두고 이런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에 대해 친명계 관계자들은 불쾌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 대표 강경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 사이에선 더욱 거친 말들이 나온다. ‘낙엽이(이 전 대표를 비하하는 말)가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들을 데리고 당을 떠나라’ ‘이재명 대표 대장동 사건을 처음 거론한 이낙연 전 대표를 절대 용서해선 안 된다’ 등이다. 한 친명 재선 의원은 “사실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한 감정의 골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깊다. 개딸들은 이 전 대표를 국민의힘과 동일선상에서 놓고 본다”고 전했다.
이처럼 이 전 대표 귀국은 당내 계파 갈등의 트리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대표가 최근 정치적 스탠스를 바꾼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역시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대표는 5월 24일 당원들과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당 안팎 퇴진론에 대해 “그런다고 제가 안 내려가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단호히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사이다 김빠졌다. 맹물이 됐다. 이재명다움이 사라졌다. 이런 지적들, 충고 많이 받았다”며 “때가 있는 거다. 최근에는 당을 혁신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기 때문에 때가 된 것 아니겠나. 통합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할 수 있는 혁신, 개혁들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개인 사법 리스크,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김남국 의원 암호화폐 논란 등에서 방어 자세를 보였던 이 대표가 앞으론 ‘공격 본능’을 다시 발휘할 것으로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친명계 민형배 의원은 유튜브 방송에서 “이제 적극적으로, 공세적으로 전환할 시기가 됐다”며 “사실 이 대표가 이렇게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예상하지 못했다. 이게 보니까 다 작전이었다. 역시 때를 기다리고 계셨구나, 때가 왔다”고 말했다.
이는 이 대표가 지지층 결집을 바탕으로 당내 입지를 다지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비명계가 이 전 대표를 구심점으로 속속 뭉치고 있는 상황과 묘한 비교를 이룬다. 친명-비명 갈등이 더욱 심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비명계 이원욱 의원의 이른바 ‘문자메시지 공개’ 사건은 이런 당내 현주소를 잘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앞서 이원욱 의원은 5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 아침에 받은 문자 하나 소개한다. 제게 지속적으로 문자를 보내오시는 분”으로 시작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의원에 따르면 문자엔 “수박 놈들을 이번에 완전 박멸시켜야 한다” 등 비명계를 향한 원색적 비난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이재명 대표님, 이걸 보시고도 강성 팬덤들과 단절하고 싶은 생각 없으신지 묻고 싶다”고 했다. 문자를 보낸 사람을 이 대표 지지층인 ‘개딸’로 추정한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이에 대해 윤리 감찰을 지시했고, 이 의원에게 문자를 보낸 사람은 당원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는 “허위사실에 기초해서 하는 것은, 이건 음해다. 이런 건 해서는 안 된다”면서 “가짜뉴스를 비판하면서 우리끼리 사실도 아닌 허위사실에 기초해 비난·비판하면 되겠나. 외부의 이간질에 놀아나지 말자”면서 이 의원을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이 의원이 제대로 된 확인도 없이, ‘개딸’을 공격했다는 취지였다.
친명 인사들이 일제히 이원욱 의원을 향해 포문을 열자 비명계도 발끈하는 모습이다. 비명계 한 의원은 “당원이 보낸 게 아니라고 해서 이게 이간질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느냐. 중요한 건 ‘개딸’로 대표되는 강경 지지층의 어긋난 ‘팬심’”이라면서 “공산당도 아니고 다른 말만 하면 일제히 달려들어 공격하는 현상에 대해 당 대표가 엄중하게 경고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를 감싸고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아니다. 민주당의 이재명이다”라고 했다. 그는 “이 대표가 부당한 문자를 받은 이 의원에 대해 오히려 질책한 것을 놓고 격앙된 반응을 보인 의원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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