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습성 고려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병변도 방치…허가 주체는 지자체지만 미등록 업소 전수조사는 아직
#"사람 무서워해…그러니 만져도 돼요"
경상북도의 한 동물 전시·체험 시설은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어류 등 100여 종의 동물이 산다고 소개된 곳이다. 입구 간판에는 '분양 가능'이라고도 적혀 있다. 다채로운 동물들이 내는 소리로 시끌벅적할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시설은 대체로 적막했고 어쩐지 비명 같은 소리만 가끔 들릴 뿐이다.
일요신문이 현장을 찾은 5월 26일 대부분의 동물들은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멍하니 있거나 잠을 자고 있었다. 뛰거나 날기를 좋아한다는 금계와 은계는 철창에 2마리씩 갇힌 상태였고, 무리생활이 특징인 왈라비는 혼자 있는 데 반해 단독생활을 해야 할 고슴도치들이 오히려 10마리쯤 떼로 지내고 있었다. 뱀들 역시 몸길이보다 작아 보이는 공간에서 종일 움츠린 모습이었다.
직원은 이를 맘껏 즐기라는 듯 수차례 만져보라고 권유했다. 독이 있거나 사람을 무는 뱀들만 제외하고 전부 만져보고 먹이도 줄 수 있다고 했다. 주변에 손 소독제 등은 비치돼 있지 않았다. 시커먼 물을 마시는 동물들과 배설물 등으로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동물들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여느 동물원이 그렇듯 이곳도 포유류 대부분은 잠을 자거나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우울과 무기력 등이 원인이라는 소위 '정형행동'의 한 가지 현상으로 보였다. 그나마 가끔 움직이는 동물은 라쿤이었는데 마치 탈출을 갈망하는 듯 철창 밑 땅만 종일 파는 모습이었다.
아파 보이는 동물들도 있었다. 몇 마리의 고슴도치들은 등에 가시가 없어 살갗을 드러낸 상태였다. 단독생활이 특징이지만 좁은 울타리에 모여 서로 쉴 새 없이 물어 대며 싸우는 탓이다. 이외에도 인근의 강아지 한 마리는 목줄이 없어 곳곳을 누빌 환경을 갖추고도 앙상한 몸으로 꼭 문턱 앞에서만 걸음을 멈추는 행동을 보였다.
왈라비도 눈에 띄었다. 외형은 캥거루와 비슷하지만 체격이 조금 작은 종이다. 소수가 무리를 지어 관목림이나 바위지대에서 생활하는 게 특징인데 이곳에선 어림도 없다. 3∼4평쯤 돼 보이는 공간에서 외롭게 홀로 지내며 바깥에 주차된 자동차들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서 있어 인형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 왈라비도 만질 수 있다고 한다. 직원에 '사람을 공격하지 않냐'고 묻자 "겁이 많아 사람을 무서워해 오히려 도망을 다니기 때문에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왈라비와 고슴도치 등 동물들이 갇힌 공간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졌다. 물류센터 등에서 비용 절감을 이유로 주로 사용하는 재질로, 화재 사고에 취약해 자주 문제가 된 마감재다.
비닐하우스로 꾸며진 야외전시장으로 향하자 말 한 마리가 나왔다. 육중한 체구를 자랑하지만 사람도 몇 발자국 걷지 못할 우리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행색이었다. 직원은 "오늘 들어온 녀석인데 승마 체험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어디서 들어온 말이냐'는 질문에는 "그때그때 공급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답했다.
기운 빠진 말의 바로 옆에는 염소와 돼지들이 자리했다. 이 가운데 염소 한 마리는 계속 울타리를 넘으려 했다. 바닥의 여물을 놔두고 다른 먹이를 달라는 건지 도망가려는 몸부림인지 알 길은 없었다. 맞은편에 갇혀 있는 공작새들은 움직임 없이 논두렁만 바라볼 뿐이었다.
#전국 동물 전시·체험시설 70% 미등록 영업
이곳은 전시·체험형 동물시설로 등록되지 않은 시설이다. 온라인에서도 버젓이 광고가 이뤄지지만 아무런 감시망이 작동하지 않는 구조다. 이런 시설은 전국에 흔한 편이다. 동물자유연대 부속 한국동물복지연구소가 5월 17일 공개한 '전시·체험형 동물시설 사육환경·동물상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는 최소 300개소의 동물 전시·체험시설이 있으며 212개소(70.7%)가 미등록 상태다.
미등록 업체 상당수가 깜깜이로 운영되는 탓에 적절한 사육환경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한국동물복지연구소가 현장 방문한 시설 20곳을 대상으로 업주 포함 종업원 수를 파악해보니 단 2명만으로 운영되는 업체가 9곳(45%)에 달했다. 1인당 돌봐야 할 동물들은 최대 92마리였으며 86마리, 82.5마리, 79마리, 74.5마리가 그 뒤를 이었다.
자연히 동물 별 특징에 걸맞은 사육 환경을 제공하기는 쉽지 않다. 예컨대 포식 동물과 피포식자 종이 물리적으로 공간을 공유하거나, 시각적으로 서로에게 노출되도록 만든 곳이 20곳 가운데 12개소(60%)나 됐다.
20곳에 머무는 1692마리의 동물 가운데 신선한 물을 제공 받고 있는 경우는 667마리(39.4%)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털, 대소변 등에 오염된 물을 받거나 아예 물 그릇 없이 지내고 있었다.
동물들의 건강 상태도 문제로 떠오른다. 1511마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병변만 155건(10.3%) 관찰됐다. 피부 관련 병변이 89건(5.9%), 교상(짐승·벌레 등에 물린 상처) 의심 병변이 31건(2.1%), 안과 질환 병변이 11건(0.7%), 행동 문제와 발굽 문제는 각 5건(0.3%), 꼬리 일부 절단과 기타 병변·증상이 각각 7건(0.3%)으로 파악됐다.
정부나 지자체 등의 면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된 동물원·수족관 법에 따라 올해 12월 13일부터는 전문 인력 및 시설을 갖춰 지자체 등의 허가를 받은 동물원·수족관만 운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허가를 받기 어려운 시설이 적지 않아 보이는 게 현실이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얼마나 많은 전시·체험 시설이 어떤 동물을 몇 마리나 보유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운영이 금지되었을 때 파장을 현재로서는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법 시행 이전에 미등록 상태의 동물 전시·체험 시설이 보유하고 있는 동물 종과 마리 수 등에 대한 전수조사가 신속히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부 등이 조사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환경부 관계자는 "공공 운영 시설이 아닌 이상 허가 주체는 지자체로서, 시설이 많이 열악한 곳은 우선 유예기간을 5년으로 두고 지켜볼 방침"이라며 "현재 하위법령을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허가 기준 등이 만들어지면 개선 방안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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