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성 입증 문제 등으로 거액 범죄수익 환수 미진…“사법·입법·감독당국 머리 맞대고 대응 나서야”
테라·루나 사태는 구조적인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지난 3월 최대 50조 원에 달하는 피해가 예상되는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인물 권도형 씨가 유럽 몬테네그로에서 붙잡히자 피해자들은 권도형 씨를 미국으로 송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도형 씨는 투자자들을 기망해 가상화폐 테라·루나 등에 투자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테라·루나 사태 피해자들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도 있어 양국 어디에서든 재판이 열릴 수 있다. 피해자들은 권 씨가 금융범죄에 대한 형벌이 강한 미국에서 무거운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유죄가 확정돼도 징역 20~30년에 그칠 수 있다. 미국에서는 금융범죄와 관련해 100년 이상의 형도 가능하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금융범죄 관대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서민 피해자도 상당수 포함된 대규모 금융범죄 사건으로 2020년 알려진 라임 사태와 옵티머스 사태는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쓰일 만한 사례다. 이들 사건에 연루된 금융범죄자들은 피해자들에게 투자금을 받아 투자하지 말아야 할 자산에 투자했고, 자전거래를 통한 수익률 돌려막기 등의 방식으로 수익이 나는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폰지사기와 유사한 방식이다. 피해규모도 컸다. 라임 사태와 옵티머스 사태는 각각 1조 6000억 원, 1조 3000억 원의 피해를 입힌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라임 사태의 핵심인물인 이종필 전 부사장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또 다른 핵심인물로 꼽히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는 징역 30년 형이 내려졌다. 옵티머스 사태의 주범으로 꼽힌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에게는 징역 40년이 선고됐다. 이들이 미국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징역 100년 이상 선고받았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평가가 적지 않다.
라임 사태 피해자인 정구집 씨는 “금융범죄자들에 대한 형량이 너무 낮은 데다 주범 외에 처벌이 약한 것이 금융범죄를 키우는 원인 중 하나”라며 “실제 천문학적 금액을 모으는 역할을 한 제도권 금융사들과 임직원들은 대부분 면죄부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봉현 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30년을 받았지만 2심 진행에 따라 형량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며 “이미 수조 원의 부당이득을 숨겨 놓았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다면 매년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고 징역을 사는 셈”이라고 질타했다.
금융범죄자들이 거액의 수익을 빼돌린 후 사법당국의 범죄수익 환수에 어려움을 겪는 구조도 금융범죄가 계속 나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이 실질적으로 환수하는 범죄수익은 매년 1000억 원 수준이다. 지난 1월 기준 누적 미집행 추징금 31조 원을 감안하면 연간 환수율은 0.5% 수준이다. 대우그룹 분식회계 관련 23조 원 규모의 추징금을 제외해도 환수율은 3%대에 그친다.
금융범죄는 설계 단계부터 범죄수익금을 빼돌리기 위한 계획을 세워두는 경우가 많아 환수가 더욱 어렵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과거에는 다른 나라 등으로 범죄수익금을 빼돌렸지만, 최근에는 사법당국이 추적하기 어려운 가상화폐 등으로 빼돌려 자금을 추적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지고 있다. 실제 사법당국은 권도형 씨가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로 빼돌린 자산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은닉 범죄수익을 추적하고 있지만 이를 대부분 찾아내 회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법률적인 문제도 있다. 현행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융사는 이상 자금 흐름이 발견되면 금융기관에 보고하고 금융기관은 이를 검토해 범죄 가능성이 확인되면 사법당국에 통보한다. 상황에 따라 사법당국이 해당 자금에 대한 동결에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불법성 입증 책임이 수사기관에 있어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되돌려줘야 한다. 이 때문에 금융범죄로 의심되는 자금에 대한 입증 책임을 해당 자금이 예치돼 있는 계좌의 주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프랑스의 경우 2013년부터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이 시행되고 있다.
범죄수익 산정이 어려워 추징액 자체가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옵티머스 사태의 경우 검찰이 김재현 전 대표에게 벌금 4조 578억 원과 추징금 1조 1722억 원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구체적인 추징금액을 산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벌금 5억 원과 추징금 751억 원으로 축소해 선고했다. 증권 관련 3대 부정거래(미공개정보이용, 시세조종, 부정거래) 범죄에는 현행법상 부당이득액 산정 기준이 명확하게 없다.
당국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김광일 금융위원회 과장은 “미공개정보이용·시세조종·부정거래 등 3대 불공정거래에 대해 과징금 제재를 신설해 제재의 실효성과 적시성을 높이고, 부당이득액 산정 기준을 법제화해 합당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선할 것”이라며 “불공정거래 행위자에 대해 자본시장 거래제한, 상장사 임원 선임 제한 등 제재 억지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행정제재 수단을 적극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는 금융범죄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며 “이에 견줘 예상되는 수익이 많으니 금융범죄자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사법·입법·감독당국이 머리를 맞대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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