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생 여지 없는 ‘완벽한 빌런’ 위해 20kg 증량·태닝 투혼…“폭식으로 간수치·콜레스테롤 높아지기도”
그 말대로, 배우 이준혁(39)의 파격 변신은 관객들에게 제대로 먹혔다. 시리즈 최초의 ‘투 톱 빌런’을 들고나온 영화 ‘범죄도시3’에서 사건의 배후이자 최종 보스 주성철 역을 맡은 이준혁은 이제까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본 적 없던, 갱생의 여지가 없는 빌런의 모습으로 관객들을 압도했다. 서울 광수대로 무대를 옮긴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 분)가 맡은 마약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주성철은 체력과 완력으로만 승부했던 이전의 ‘범죄도시’ 시리즈 빌런들과는 달리 지력과 권력을 무기로 쥔 ‘지략형 빌런’으로 신선함을 더해냈다는 호평도 받았다.
“그런 포인트가 좀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섭죠. 사회화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행하는 악행보다 사회화가 충분히 된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고 행하는 악행이 더 무섭잖아요. 주성철은 인간으로서의 예의와 규율, 그런 걸 다 아는 인간이에요. 그리고 그런 걸 이용해서 악행을 저지르죠. 보면 주성철은 언어 기술까지 사용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전편의 빌런들과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사회화된 악당이라는 이준혁의 설명답게 극 중 주성철은 일반인들의 집단에 섞여 들어도 그다지 튀지 않을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단발에 가까운 머리카락과 볕에 잔뜩 그을린 듯한 피부를 보면 결코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을 보자마자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이라고 짐작하기엔 또 애매하다.
‘범죄도시’의 장첸(윤계상 분)과 ‘범죄도시2’의 강해상(손석구 분)이 흘깃 봐도 악인을 확신할 수 있는 외양을 하고 있다면 주성철은 좀 더 보통 사람을 표방하고 있는 식이다. 이준혁은 이런 주성철을 준비할 때 거칠고 잔인한 내면에 방점을 두되, 주변인으로부터 인정과 신뢰를 받는 모순된 외면을 함께 보여주는 것에도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주성철은 사실 굉장히 잘나가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에요. 초반에 말쑥한 모습으로 나왔다가 일이 어그러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야차처럼 분노가 치밀면서 거친 모습이 드러나죠. 주성철을 준비할 때 감독님과 마동석 선배님께서 살을 찌우고 몸을 키워달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저도 개인적으로 납득했던 게, 마석도랑 싸우려면 일단 몸이 커야 하니까요(웃음). 태닝 같은 경우도 이 친구는 거친 인생을 살았을 거라 생각해서 어두운 피부 톤을 만들기 위해 태닝을 몇 번씩 오래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태닝 기계를 무서워한다는 데 있었죠. 영화 ‘데스티네이션’에서 태닝 기계 사망 신을 보는 바람에(웃음).”
주성철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준혁은 무려 20kg를 증량했다. 먹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한다는 그였던 만큼 햄버거와 피자를 원 없이 먹으며 행복하게 살을 찌워냈을 거라 생각하기 쉬웠지만, 정작 이준혁은 몸을 불리는 것 자체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많이 먹다 보니 간 수치와 콜레스테롤이 높아져 식단을 중단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음식을 먹고 풀어야 하는데, 못 먹게 됐으니까 저는 이제 스트레스를 그냥 받아야 돼요”라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제가 사실 살찌는 데엔 거부감이 없어요. ‘꽃미남’이란 말엔 있지만(웃음). 주성철을 연기하면서 그냥 먹기만 한 건 아니고요, 물론 운동도 같이 했죠. 하지만 몸의 라인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단 크고 역도산 같은 몸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목적이 컸어요. 주성철이 식단관리를 하며 몸을 잘 만들 것 같진 않잖아요(웃음). 지금은 그렇게 거금을 들여 만든 살이 급격히 빠지면서 캐스팅됐을 때랑 비슷하게 체중이 내려간 상태예요. ‘주성철이 다 뜯겨나갔구나. 개봉 날에 맞춰서 얘가 갔구나’ 이런 느낌이 드네요(웃음).”
햄버거와 피자는 물론이고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될, 말도 안 되는”이라는 수식어로 설명한 닭가슴살과 현미밥까지 먹어가며 만들어 낸 몸은 마동석과의 일대일 액션신에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됐을까. 일본도를 들고 붙었던 또 다른 빌런 리키(아오키 무네타카 분)도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마동석의 주먹을 두고 이준혁 역시 비슷한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마동석에게 맞는 그 순간만큼은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고.
“촬영할 때 실수로 맞은 적은 없지만 저희가 보호대를 착용하고도 어느 정도는 (몸을 내 주고) 터치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맞게 된다는 걸 알지만 제가 그걸 막을 수는 없잖아요, 촬영인데(웃음). 일단 마동석 선배님 주먹이 굉장히 큰데, 그걸 맞았을 때 내장이 흔들리면서 바로 입에서 ‘억’ 소리가 나더라고요. 이게 연기가 아니라 정말 제대로 된 신음이었어요. 그 신을 찍는데 딱 두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프다’랑 ‘야, 이건 됐다’(웃음).”
극단적인 악역이 아니었을 뿐이지, 이준혁의 필모그래피에서 악한 캐릭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60일, 지정생존자’에서 권력을 위해 잘못된 길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하게 된 해군 출신의 국회의원 오영석이나 ‘비밀의 숲’ 시리즈에서의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비리 검사 서동재,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 김수홍 병장의 사망 사건을 은폐한 소대장 박무신까지. 악역을 맡았을 때 매력이 더 높아지기 때문인지 유독 그의 악역 연기를 사랑하는 팬들이 많았다.
“선역을 한 작품이 아쉽게도 성공하지 못한 게 대중들이 악역의 저를 더 많이 기억해주시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어요. 악역과 선역 어느 연기가 더 나았다, 그런 건 없지만 (선역을 연기한) 그런 작품들도 잘 됐으면 좋겠어요. 대중들에게 제가 따뜻함을 전파하길 바라거든요. 제가 연기한 악역 중에 서동재를 많이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아마 애정이 반이고 놀림이 반이지 않나 싶어요. 굉장히 하이에나 같은 인물인데 내 밑에 있을 때는 좋은 그런 느낌으로(웃음).”
언젠가는 선역을 맡은 이준혁의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작품도 볼 수 있진 않을까. 여성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이준혁이 사랑에 목 매는 모습을 더 많이, 다양하게 보고 싶다는 목소리도 높다. 올 하반기엔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비질란테’를 공개할 예정이고, ‘비밀의 숲’ 스핀오프로 서동재의 이야기를 다루는 ‘좋거나 나쁜 동재’도 촬영이 진행 중이지만 아쉽게도 멜로 작품은 아직 그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제 멜로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냐”며 의아해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팬들이 좀 더 큰 목소리로 “여기 있다”고 외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멜로나 로코 연기는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남주인공의 왕자님 같은 연기가 특히(웃음). 한편으론 (대중들이) 저의 멜로를 보고 싶어하실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멜로 작품 제안도 별로 들어오지 않아서 제가 고를 수 있는 것도 없어요(웃음). 한편으론 이게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멜로를 잘하는 유능한 다른 배우들이 더 많으니까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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