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위급 재난문자 내용 ‘오류투성이’ 지적…“위기상황 대처 매뉴얼 재정비 계기로 삼아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이 천리마 1형을 발사한 건 5월 31일 오전 6시 27분이다. 합참은 천리마 1형 발사를 오전 6시 29분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는 위급 재난문자를 오전 6시 41분에 발송했다. 재난문자에 따르면 서울지역에 경계경보가 발령된 시간은 오전 6시 32분이었다. 경계경보 발령 이후 9분이 지나서 위급 재난문자가 발송된 셈이다. 경계경보 발령 메시지 내용은 이랬다.
“오늘(5월 31일)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위급 재난문자는 대부분 시민이 취침 중인 상태에 발송됐다. 큰 알림음이 각 가정마다 침대 곁에 놓인 스마트폰을 통해 울려 퍼졌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50대 가정주부 A 씨는 위급 재난문자 알림음을 듣고 잠에서 깼다.
A 씨는 “재난문자 알림음인지 몰랐다”면서 “가습기에 물이 다 떨어졌다는 알림음인 줄 알고 주전자에 물을 채워 왔다”고 했다. A 씨는 “가습기에 물을 부으려 보니 물이 가득 차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몇 분이 지나니 또 똑같은 소리가 나서 스마트폰을 보고 나서야 위급 재난문자가 온 것을 알았다”고 했다.
서울시 위급 재난문자가 발송된 지 23분 후 행정안전부가 위급 재난문자를 다시 발송했다. 행안부는 오전 7시 3분 위급 재난문자를 통해 “6시 41분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이라고 했다. 23분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위급 재난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서울 일부 지역엔 경계경보 사이렌이 울리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만 선별적으로 울린 민방위 사이렌에 군이 서울민방위경보통제소에 무슨 일인지 확인을 요청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행안부 측은 경계경보 발령 지역 판단은 군의 몫이며, 행안부와 서울시가 판단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안보단체 관계자는 서울시 재난문자와 관련해 “오류투성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첫 문장엔 대피할 준비를 하라면서, 두 번째 문장엔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한다”면서 “대피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인지 대피를 해야 하는 것인지조차 불분명했던 메시지”라고 지적했다.
관계자는 “냉정하게 생각해봤을 때 이 문자를 보는 서울 시민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부터 헷갈렸을 것이다. 무작정 대피 준비 및 대피를 도우라는 경계경보를 발령하면 일반 시민들은 갈 데가 있느냐”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피할 곳이라 해봐야 아파트에 사는 주민은 지하 주차장이 될 것이고, 지하철역 주변에 사는 시민은 지하철역으로 한정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아파트에 살지 않고 역세권도 아닌 곳에 사는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설사 집 주변에 대피할 공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 시민 중에 자기 집 주변에 대피소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 어디로, 어떻게, 무엇을 준비해서 대피해야 할지를 안내해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된 상태로 ‘무조건 도망쳐’라는 메시지가 하달된 것과 다름이 없는 상황이었다.”
전직 군 관계자는 “이번 경계경보 오발령 논란을 ‘전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위기상황 대처 매뉴얼’ 전면 재정비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 “상황에 따른 대피 요령, 대피 준비물을 비롯해 평시에 꾸준히 거주지에 따라 대피 장소를 우선순위별로 인지시키는 조치가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경계경보 오발령 논란은 해프닝으로 넘어갔지만, 만약 실제 상황이 발생했다면 서울과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됐을 것”이라면서 “평시 사전 교육을 통해 전국민이 위기 상황에 질서 있게 대처하는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엇을 보완해야 할지 정부가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이번 위급 재난문자 발송과 관련해 “정부가 위기를 전파하는 매뉴얼 자체가 흐지부지된 ‘안보 불감증’ 사각지대가 완전히 노출됐다”면서 “어느 시점부터인가 정치권에서부터 논쟁거리로 떠오른 ‘주적 논란’이 이런 안보불감증 원인이 됐을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 군사력이 세계 5위권 안에 든다고 홍보는 하지만, 정치권에선 주적이 있냐 없냐를 가지고 긴 논쟁을 하고 있다”면서 “적이 없는데, 군사력이 왜 필요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누가 적이고 적이 아니냐보다 중요한 것은 위기 상황에 국민 전체가 준비가 돼 있느냐 여부”라면서 “주적 존재 여부로 논점이 잡히면 국민들은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진짜 적인가를 생각한다. 정치권에서 주적 논란이 불거진 뒤로 위기상황을 가정한 훈련 커리큘럼이 확연히 축소됐고, 북한 군사정찰위성은 남측을 겨냥했다”고 지적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5월 31일 경계경보 오발령 논란과 관련해 “이번 일로 혼선을 빚은 점은 죄송하다”면서 “(경계경보 발령 실무자에 대해) 다소 과잉 대응을 했다고 문책 얘기가 나온다면 실무 공무원들이 상당히 위축될 수 있다”고 했다. 오 시장은 “지금 가능성은 세 가지”라면서 “오발령 가능성, 과잉 대응 가능성, 혹은 혹시 모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 행정을 펼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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