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태 의원은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숙제로 동서화합을 꼽으며, 국민통합이 없으면 정치발전도 경제발전도 없다고 강조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달인 김병만의 명대사다. 아무리 하찮고 쉬워 보여도 막상 직접 해보면 그것대로 어려움이 있다는 것쯤으로 해석된다. 지역정서가 강한 부산에서 ‘저쪽’ 깃발로 3선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운 조경태 민주통합당 의원. 그가 ‘갑툭’ 대권도전을 선언하자 ‘왜 나오는 거냐’며 의아해 하는 반응이 많았다. ‘부산에서 3선한 것 믿고 너무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도 받았다.
하지만 조경태 의원은 ‘안 해 봤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투다. 자신을 대권도전으로까지 이끈 ‘민주당 부산 3선’은 “안 해 봤으면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정치적 함의가 숨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서 지역주의는 한국 정치에서 가장 먼저 도려내야 할 악성종양이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정치발전도, 경제발전도 없단다. 지역주의 극복의 달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면 그는 달인이 배출한 1등 수제자쯤 된다.
그는 1996년 28세 때 부산대 토목공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신분으로 처음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00년에도 또 다시 낙선했지만 2004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서 보란 듯이 당선됐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만 3선을 기록 중이다. 이런 그를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지역주의를 극복한 것을 높이 평가해 지역 정치인들에게 “조경태를 학습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역주의를 뛰어넘어 당선된 그의 ‘상인적 현실감각’을 높이 평가했다. 조 의원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선배 정치인들의 지역주의 극복 노력의 터전 위에서 내 기록이 탄생했다”며 일단 겸손모드를 보였지만 부산 3선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역을 넘어 대권까지 도전하게 만든 주된 동인처럼 보였다.
-대권 도전은 지역구 선거와는 크게 다르다. 큰 꿈을 꿀 정도로 절박한 무엇이 있나.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 경제도 살리고 복지도 확장시켜야 한다. 두 과제를 모두 성공시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국민통합이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는 경제성장과 지속적 복지 실현은 상당히 어렵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숙제는 국민통합이다. 그 필수조건은 동서화합이다. 그것을 이뤄낼 최대 적임자는 바로 조경태다.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광주에서 출마해 넘어지고 깨진 적이 없지 않느냐. 그냥 편안한 경상도에서 새누리당 막대기만 꽂으면 되는 곳에서 선거를 치렀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부산에서 싸운 것이 내게는 큰 자산이다.
-다른 후보에 비해 ‘내가 제일 잘나가는 것’이 있다면.
▲나는 부산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3선을 기록,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정하고 칭찬해준 유일한 정치인이다. 그저 얻어진 게 아니라 치열하게 지역주의에 맞서 싸워서 얻어낸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본선 경쟁력이다. 박근혜의 원칙과 소신에 맞서서 이기려면 부산에서 꿋꿋하게 민주당으로 3선을 기록한 조경태의 소신과 원칙이 필요하다. 예선에서 아무리 1등하면 뭐하냐. 본선 경쟁력이 안 된다고 판단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권교체가 지상과제인데 계파적 이해관계를 떠나야 한다. 내가 ‘어게인 2002’를 이뤄낼 수 있다.
조경태와 노무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로서의 지지율이 1%대를 기록할 때 지지를 선언한 원년 멤버다. 현역 의원은 한 명도 없고 7인의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이 노 전 대통령을 ‘처음’ 지지할 때부터 생사고락을 함께한 원조 친노다. 하지만 그 또한 지난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보따리장수’로 비난했던 손학규 후보를 지지해 친노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조경태에게 친노라는 브랜드는 대권도전의 자양분인 동시에 동지들을 배신했다고 비난받는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에게 친노는 평생 걸어가야 할 길인 동시에, 넘어야 할 산처럼도 보였다.
-특별히 문재인 상임고문만 5대 불가론을 내세워 공격하는 이유가 뭔가. 1위를 공격해 이득을 좀 보겠다는 것인가.
▲지금 많이 봐주고 있다(웃음).
-오늘은 하나도 봐주지 말고 세게 한번 공격해보라.
▲나는 네거티브 전략을 잘 쓰지 않는다. 총선 때도 그랬지만 이 부분은 좀 예외다(점점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왜냐하면 문 고문은 지난 정권 실세였다. 누릴 것 다 누렸다. 비서실장 했다. 하지만 모셨던 분이 불미스럽게 돌아가셨다. 과연 그에 대한 도의적, 인간적 책임이 없느냐. 당시 그가 관리 책임자였는데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궁금해 하는 국민들이 많다.
-문 고문의 패권적 리더십을 지적하는데.
▲지난 19대 총선을 보면 안다. 자기 식구들(문재인 고문을 중심으로 한 친노 주류들)이 아니면 전부 정치적 학살을 당했다. 4년 동안 열심히 했던 사람들인데 자기쪽 계파가 아니라는 이유로 경선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게 정의로운 것인가. 많은 정치 지망생들이 피눈물을 흘렸다. 거기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일국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데 이미지만 가지고 하면 되겠느냐. 능력과 자질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 조경태 의원이 지난 6월 10일 대선출마 기자회견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일요신문 DB |
-문재인 고문 캠프는 사람을 쓰는 데 폐쇄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이것도 문 고문의 패권주의적 성향과 연결이 되나.
▲그분들의 이너서클적인 사고, 그들 내의 운영방식은 존중해야 한다. 다만 문 고문 자신이 대통령을 하려고 하는 분인데 그런 패권주의적 사고가 없는지 답을 해줬으면 좋겠다.
-문 고문의 대권 도전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왜 노 전 대통령이 살아있을 때는 정치 죽어도 안 한다고 했다가 지금 다시 하려는 것인지 심각하게 묻고 싶다. 진짜 친노는 뭔가. 동지는 뭔가. 어려울 때 같이 가주는 사람이 동지다. 다 잘 돼 있을 때, 상 다 펴져있을 때 같이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려울 때 하자고 할 때 하는 사람이 진짜 동지다. 왜 그때는 안 했는지, 왜 노 전 대통령이 죽고 나서 정치하려고 하는지 답해야 한다.
-그때 안했으면 지금도 안해야 하는데 문 고문 가슴 속에 누구 못지않은 강한 정치권력 DNA가 들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2002년 부산시장 선거는 후보를 못 구해서 굉장히 어려웠다. 당시 원외이던 내가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인선이 힘들었다. 그때도 노 전 대통령이 문 고문에게 출마를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선거 결과가 안 좋았고 노 전 대통령이 상당히 곤경에 처했었다. 노무현 정신의 가장 핵심적 가치는 자기희생이다.
-문 고문은 자기 희생정신이 없다?
▲그래서 내가 질문을 던지는 것 아니냐. 왜 그때는 안하려고 했는지. 18대 국회 초기에는 또 왜 국회의원 출마를 안 했는지. 그때도 후보를 못 구해서 난리였다.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여건이 좋아지니까 하겠다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 (문 고문이) 분명하게 얘기를 해주면 좋겠다.
-문 고문이 자기희생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면 조 의원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 적자라는 말이냐.
▲감사합니다^^ 문 고문도 나름대로 희생을 했겠지….
-젊은 나이(45세)에 3선 하고 나서, 부산시장 나가려고 대권도전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더라.
▲부산시민을 모독하는 것이다. 부산시장은 부산시민이 뽑는 것이다.
-전혀 마음이 없나.
▲나는 마음이 없다. 나는 국회의원으로 있는 것도 상당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난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손학규 후보를 지지했다가 친노세력으로부터 배신 아니냐는 비난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공유하고 친노의 적자라고 자임하는 사람이, ‘보따리장수’라고 비난받던 후보를 지지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그 당시 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청와대 부속실을 통해 6~7차례 면담신청을 했는데 전부 차단당했다. 누가 더 적합한 인물인지, 토론을 해야 하는데 그 길이 완전 차단되었다. 그러다 보니 고민을 하다가 당시 시대정신이 경제였는데 손 후보와 개인적 인연이 없었지만 지지를 했다. 흑묘백묘론(검은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이다. 개인적 이해관계나 계파적 이해관계도 없었고 순수하게 도왔다.
-조 의원은 노무현 정신 위에서 탄생했다. 좋은 말로 하면 손 후보 지지가 노무현 정신의 창조적 해체로 해석될 수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노무현 정신의 혜택만 입고 나중에 본인의 독자적 길을 가려고 한 것은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혜택은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이 입었다. 나만큼 2002년도에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사람 없다. 지금 친노라는 사람들이 2002년 경선 때 앞장서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정말 궁금하다. 2002년 초에 여론조사 했을 때 현역의원 지지자는 한 명도 없었다. 7명의 원외위원장이 전부였는데 그 중에 내가 있었다. 누가 누구 덕을 봤느냐 하는 표현에서는 한번 가려봐야 한다. 나를 약간 안 좋게 평가하기 위해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사실은 후보자 시절에 내가 하도 열심히 하니까 노 전 대통령이 내게 해양수산부 장관을 주겠다고 했다. 내가 노 전 대통령을 배신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건 아주 왜곡된 것이다.
-3선 의원 경력만으로 대권 도전 하는 게 약한 것 아니냐. ‘왜 갑자기 조경태가 대권도전을 하게 됐을까’라는 물음에 시원하게 답을 해 달라.
▲답이 될지 모르겠는데, 국회의원 한 번도 안한 사람도 대선도전 한다고 하고, 꼴랑 한번 나와 이제 몇 개월 국회의원 한 사람도 대권도전 선언하는 마당에 3선 한 사람을 경력이 일천하다고 하면 누가 대통령이 되겠느냐. 경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진정성 있게 국민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봉사할 준비가 돼 있느냐, 그게 가장 큰 덕목이다.
-28세 때 출마했는데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도 같은 나이에 했다.
▲왜 또 그분하고 비교하느냐. 그 사람은 여건이 참 좋지 않았는가. 부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나이만 빼고 같은 게 없다는 말인가.
▲예, 저는 (민주당으로 부산에서 당선된 것만 봐도) 예, 하하, 죄송합니다.
-배지를 달고 안 달고의 차이는 여의도에서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하물며 민주당으로 부산에서야.
▲노 전 대통령도 다른 정치인에 대해서는 존중은 했지만 부럽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나에 대해서는 좀…. 운이 참 좋았던 거 같다. 하지만 누구나 그게 다 된다면 내가 이 자리에 있었겠느냐.
-96년부터 8년 동안 원외위원장으로 떠돌았는데 호구지책은 어떻게 했나.
▲버스비가 없어서 걸어 다녔다. 이해가 되나.
인터뷰 종료를 알리는 보좌관의 소심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예정시간 한 시간을 훌쩍 넘겼을 때쯤 대권주자 조경태의 무한도전 이유가 조금씩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야권의 난다 긴다 하는 선수들도 뭐 하나 제대로 내세울 게 있는지, 오십보백보 같기도 했다. 부산 3선이 그렇게 대단할까.
“부산 민주당 3선은 호남 5선급 이상으로 쳐줍니다.”
윤종우 보좌관의 자랑스러운 대답이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조경태는…
출생 : 1968년 1월 10일 경남 고성
좌우명 : 정직하게 땀 흘리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자
감명 깊게 읽은 책 : <해방전후사의 인식><백범일지>
병역사항 : 육군 상병
학력 : 1986 경남고등학교 졸 1994 부산대학교 토목공학 학사 1996 부산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 석사 1999 부산대학교 대학원 공학 박사
경력 : 1995 부산정보대ㆍ부경대ㆍ한국해양대 강사 1996 민주당 부산사하갑 지구당 위원장 1996 민주당 부산시지부 중소기업육성특위 위원장 2000 새천년민주당 부산사하을 지구당 위원장 2001 새천년민주당 부대변인 2002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 정책보좌역 2004~현재 제17, 18, 19대(부산사하을) 국회의원
동토서 낙선…서로 통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경태 의원은 지난 1988년 처음으로 조우했다. 부산대 공대 학생이었던 조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선거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첫 인연을 맺었다. 그 뒤 가끔 연락을 하며 지내다 노 전 대통령이 1996년 15대 총선 때 종로에서 낙선한 뒤 부산에 내려가 한 달에 한번 ‘일요회’라는 모임을 했는데 그곳에서 두 사람은 자주 어울렸다. 그 자신이 노 전 대통령처럼 부산이라는 지역주의의 동토에서 2번이나 낙선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마음이 잘 통했다고 한다.
그러다 노 전 대통령이 2001년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부산을 방문한 것이 조 의원에게 큰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됐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한 간담회 자리에서 ‘조경태 위원장은 다음에 꼭 됩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그 이유를 설명했는데 기라성 같은 선배 앞에서 ‘칭찬’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조 의원은 “그때 노 전 대통령이 했던 말이 내게는 큰 부적같이 위안이 되었다. ‘아, 내가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예언적인 말이었는데 그게 맞았다며 고마워했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