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앞산충혼탑서 ‘제23회 호국영령추모제’ 거행 등 곳곳서 추모 물결
- 홍준표 시장 "나라 지켜준 국가유공자·유족들께 존경과 감사 마음 전한다"
[일요신문] '보훈(報勳)'은 정치·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극심한 갈등 속으로 치닫고 있는 분열의 시대 속에서 계층과 이념의 간극을 넘어 국민 대통합으로 이끌 중요한 가치이자 정신이다.
지난 5일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공식 출범했다. 1961년 '군사원호청'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지 62년에 부(部)로 승격한 것으로 더욱 의미가 깊다. 새로 출범한 국가보훈부는 국가유공자와 유가족의 현실적 어려움을 살피고, 일상 속 보훈의 가치를 널리 알려야 할 막중한 사명감으로 뛰어야 할 것이다.
6월은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이다. '일요신문'이 대구 남구 앞산충혼탑에서 거행된 '호국영령추모제' 현장을 찾아갔다.
# 울먹이는 조사 향연, 하늘에 닿다
- 1일 대구앞산충혼탑서 '제23회 호국영령추모제' 거행…어린이집 동참 '눈길'
"아버지! 아버지! 불러도 불러도 메아리만 허공을 맴돌 뿐 어디에도 아버지의 다정하신 대답은 들리지 않네요. 당신이 떠날 무렵 고향 산천의 묘목은 아름드리나무가 되었고, 허리 굽은 노송은 말없이 아직도 당신들을 기다리며 선산을 지킵니다."
유족회 대구시지부 김일선 씨는 떨리는 손으로 '조사'를 움켜쥐었다. 그녀는 간신히 눈물을 참으며 며칠 동안 밤새워 준비한 편지를 읽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노년이 된 딸의 울먹임에 좌중들 역시 눈시울을 붉혔다. 조사가 끝 마치자 모두가 기립박수를 쳤다. 조사에 묻어난 아버지들에 대한 그리움, 감사, 그리고 호국영령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은 하늘에 닿았다.
지난 1일 오전 10시께 앞산충혼탑 앞에는 수많은 이들이 서 있었다. 주름진 얼굴, 가녀린 팔과 다리, 무엇보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인다. 6·25 전쟁은 지나갔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전쟁에 희생된 부모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제23회 호국영령추모제'는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대구시지부가 주관하고 대구시와 대구지방보훈청이 후원했다. 이날 충혼탑에는 대구시, 대구지방보훈청, 대한민국전몰군경 유족회·미망인회 대구·경북지부, 상이군경회·무공수훈자회 대구시지부, 4·19대구경북연합지부, 월남참전회 대구시지부, 대구고엽제전우회, 유치원생 등 500여 명이 함께 했다.
추모제는 △기관장 대표 추념사(대구지방보훈청 박은성 총무과장) △조사(유족회대구시지부 김일선 차장) △헌관소개(초헌관 박영한 지부장, 아헌관 장병규 북구지회장, 종헌관 이판식 서구지회장, 독축 권영환 동구지회장, 우집사 여규철 중구지회장, 좌집사 여상득 달서구지회장) △분향강신 △참신례 △헌작례 △독축(권영환 동구지회장) △헌화 분향 △진혼제(살풀이) △사신례 △분축례 △음복례 △폐식 순으로 진행됐다.
충혼탑 위패 앞에 떡, 과일, 생선, 대추 등이 잔뜩 차려지자 헌관들이 나와 제례행사를 했다. 술잔에 술을 채워 분향통 올라오는 연기 속에서 잔을 3번 돌린 후 상 위에 올린다. 음식마다 수저를 올리고 잔을 돌리던 헌관들은 두 번씩 절하며 호국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
내빈, 단체장, 미망인회 8개 지회장이 헌화 분향이 끝나자 비향 예술단장 박초우 씨의 '살풀이'가 시작됐다. 흰 한복을 입은 그녀는 태극기를 바닥 한 켠에 드리우고 하늘에 있는 전사자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는 몸짓을 선보였다. 참석한 이들 역시 한 마음으로 살풀이를 하며 과거 전쟁의 희생 속에 피어난 현재에 감사하고 전쟁을 후대에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독립운동가의 영혼과 신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사신례(祀神禮)', 축문에 기록된 마음들이 불에 태워져 향연을 하늘에 올려보내는 '분축례 (焚燭禮)', 초헌관이 대표로 음복하는 '음복례(陰服禮)'가 차례로 진행되고 마지막엔 모두가 나와 헌화와 분향을 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헌화에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 '큰사랑어린이집'과 '달서어린이집'을 다니는 어린이 50여 명이 선생님의 인도에 따라 국화를 내려놓으며 헌화를 했다. 헌관들은 물론 이제는 노년이 된 부모를 잃은 아들·딸들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헌화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겐 어린아이들의 작은 손길이 고마웠다고 한다.
한편 '충혼탑(忠魂塔)'은 충의를 위해 죽은 사람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으로 한국 전쟁 당시 조국 수호를 위해 산화한 대구 출신 호국영령의 영현을 모신 공간이다. 탑신은 옛날 우리나라 장수들이 전투에서 쓴 투구 모양을 본뜬 것이며, 원형 연못은 그 당시 최후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전선을 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구앞산충혼탑에는 지역 호국영령 5391위의 위패가 있다. 위패는 탑을 중심으로 'ㄱㄴㄷ'순으로 두 편으로 갈라져 모셔져 있다.
충혼탑은 원래 1958년 5월 대구 수성구 두산동 수성못 옆에 위치했지만 규모가 작아 1971년 4월 대덕산 기슭에 탑신 30m, 둘레 9m인 충혼탑을 재건립했다. 2017년 6월 리모델링 공사로 기존 충혼탑 내 낡고 좁은 위패 봉안실을 충혼탑의 좌우에 석재로 신축해 장중한 추모 공간으로 완성됐다.
# 대구시, 호국보훈 맞아 국가기념일 행사 열어
- 홍준표 시장 "나라 지켜준 국가유공자·유족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 전한다"
대구시는 이달 국가를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殉國先烈)과 호국영령(護國英靈)의 고귀한 넋을 기리고, 국가유공자와 보훈 가족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다양한 보훈행사를 연다.
주제는 '위대한 헌신, 영원히 가슴에'이다. △제23회 호국영령 추모제 및 호국사진 전시회(앞산충혼탑) △제13회 의병의 날 기념식(동구 망우당공원 임란호국영남충의단) △국립신암선열공원 참배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앞산충혼탑) △제10회 달구벌 보훈문화제(수성못 상화동산) △6·25전쟁 73주년 행사(그랜드호텔) 등 각지에서 보훈행사가 거행된다.
시는 충혼탑 위패실을 오후 6시까지 개방하고, 시 홈페이지에 사이버 추모관을 통해 온라인 참배도 한다고 밝혔다. 1급 중상 또는 생계가 힘든 6·25 참전유공자 등 185가정에 자활지원금을 지급, 국가와 지역공동체 발전에 기여한 이들에게 모범 호국보훈시민 포상을 전수할 예정이다. 현충일 전후로 대중교통, 앞산케이블카, 네이처파크 등 여러 혜택도 마련했다. 홍준표 시장은 대구보훈병원에 입원 중인 국가유공자를 위문해 감사와 존경을 마음을 표할 예정이다.
홍준표 시장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시민들 모두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거룩한 뜻을 되새기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 이 나라를 지켜준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 대구시, 내년부터 참전명예수당 '인상'
- 참전명예수당 13만 원, 보훈예우수당 10만 원 인상…참전명예수당 관련 조례·규칙 개정 추진
과거의 영웅을 기리지 않으면 미래의 영웅은 없다. 대구시는 내년부터 참전명예수당을 단계적 인상한다.
시는 국가보훈처 참전명예수당 가이드라인(15.8만 원) 수준으로 인상하는 방법을 고심한 끝에 2024년 13만 원, 2025년 16만 원으로 수당을 높이기로 했다.
대구시구청장·군수협의회(회장 조재구 남구청장)와 협의를 완료하고, 내년부터 구·군에서도 참전명예수당을 지원하는 '대구시 참전유공자 예우·지원에 조례'와 관련 규칙 개정도 준비 중이다.
65세 이상 독립유공자, 전몰군경, 순직군경 등에게 월 7만 원 지급하던 보훈예우수당도 내년부터 10만 원으로 높일 예정이다.
홍준표 시장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분들이 제대로 예우받도록 정책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대구민주시민교육센터, 나라 사랑 프로그램 운영
- 호국보훈 N행시, 독립운동 발자취 탐방, 나라사랑 빙고 실천 이벤트 등
대구민주시민교육센터가 16일까지 '나라 사랑 실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학생들이 '호국보훈' N행시를 지으면 태극기를 받을 수 있다.
과거 정의를 위해 헌신한 대구 학생들의 삶을 대구민주시민교육센터 야외 역사 테마길과 국립신암선열공원에서 듣고 추모하며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다.
테마 보드로 놀이, 게임, 나만의 나라 사랑 문구 만들기와 함께 에코백, 부채, 어깨띠를 들고 다니며 나라 사랑 홍보대사를 하게 된다.
일상생활 속에서 나라 사랑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빙고 이벤트, 현충일 노래 부르기, 국가상징물 의미 알기, 태극기의 의미 알기 등 실천 미션 9가지를 하면서 나라사랑 의미를 되새길 기회도 가진다.
이 기간동안 학생과 가족 1800여 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나라사랑을 배우고 실천할 예정이다. 센터는 호국보훈의 날인 6월은 물론, 8월과 10월 국경일에도 태극기 4000개를 무료로 배부할 계획이다.
강은희 교육감은 "우리 학생들이 조국의 독립과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깊이 간직하며,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한 발 더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호국보훈(護國報勳)'이란 '나라를 보호하고 도운 이들의 공훈을 갚다'라는 뜻으로 한국에선 6월 독립운동가와 전쟁 전사자, 유족들을 위한 추모행사가 열린다. 대한민국은 일제 침략과 남북 전쟁을 겪으면서 남한은 미국이, 북한은 중국이 지원하는 형태로 전쟁이 진행되면서 남한의 경우 미국과 유사한 기념일이 많아지게 됐다. 미국의 경우 매년 5월 마지막 주를 'Memorial Day'로 삼고 기념한다.
남경원 대구/경북 기자 ilyo07@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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