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회장 건재한데 딸 김연수 대표 존재감도 커져…신사업 부진에 부녀간 갈등설, 한컴 “사실무근”
김연수 대표는 2021년 8월 한컴 공동대표에 올랐지만 대외적으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김 대표의 태도에 변화가 감지된다. 김 대표는 올해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23’에 참가해 한컴오피스 등을 해외 시장에 알리고 글로벌 비즈니스 미팅을 주재했다. 또 김 대표는 한컴그룹이 지난해 설립한 싱가포르 법인 한컴얼라이언스의 수장을 겸하고 있고, 최근에는 언론사와 첫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외부 노출 빈도를 늘리고 있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대표 취임 후 비대면 온라인 간담회를 한 번 진행한 적은 있지만 이후 이렇다 할 노출이 없었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도 드물었다”며 “최근 들어 김 대표의 한컴 내 ‘그립’이 강해지고 각 부서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한 작업들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IT업계에서는 한컴그룹이 김연수 대표의 리더십 공고화를 위한 밑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친 김상철 회장과의 경영 철학 차이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철 회장은 메타버스나 코인 등 신사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면 김연수 대표는 전통적인 B2B(Business to Business·기업과 기업 간 거래), B2G(Business to Government·기업과 정부 간 거래), SW(소프트웨어) 등의 사업을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김상철 회장이 추진한 신사업은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검찰은 지난해 10월 코인 사업 관련 시세조작 의혹으로 김 회장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내부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IT업계 다른 관계자는 “아로와나 코인 출시와 상장 과정에서도 김상철 회장 측 인사들과 김연수 대표 측 인사들 간 갈등이 빚어졌고 녹취록 공개 등 폭로전까지 벌어지며 이미 간접적으로 부녀갈등이 노출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국내 IT업계에서 2세 승계 과정의 잡음은 사실상 처음이다. 이는 김상철 회장의 카리스마와 인수합병(M&A)으로 성장한 한컴그룹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한컴은 설립 이후 주인이 9차례나 바뀌었다. 김상철 회장은 2010년 한컴을 인수하면서 현재까지 한컴그룹을 이끌고 있다.
김상철 회장은 2014년 한컴MDS(옛 MDS테크놀로지), 2017년 한컴라이프케어(옛 산청), 2020년 한컴헬스케어(옛 대영헬스케어) 등을 연이어 인수했다. 한컴MDS는 자동차·가전제품 용 임베디드SW 제조 기업이다. 한컴라이프케어는 안전장비 제조, 한컴헬스케어는 마스크 제조를 주 사업으로 삼고 있다. 이들 기업은 한컴 본연의 사업과 연관성이 크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동시에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그룹’으로 성장하는 기틀이 됐다.
한컴그룹의 계열사는 현재 21개에 달한다. 지주사 한컴위드를 정점으로 중간지주사인 한컴이 각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한컴위드의 경우 김상철 회장이 지분 15.77%를 갖고 있고, 김 회장의 아내 김정실 한컴위드 이사가 3.84%를 보유하고 있다. 김연수 대표의 한컴위드 지분율은 9.07%다. 중간지주사인 한컴의 주주구성은 △한컴위드 20.37% △HCIH 9.76% △김연수 대표 1.49%로 이뤄져 있다. 김상철 회장 경영권이 공고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갈등설이 나오는 배경으로는 김연수 대표가 한컴 지분을 증여받은 것이 아닌 '인수'했다는 점이 꼽힌다. 김 대표는 2021년 5월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다토즈가 설립한 SPC(특수목적법인) HCIH를 통해 김상철 회장과 김정실 이사가 소유하고 있던 한컴 지분을 30%가량의 프리미엄을 주고 인수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김연수 대표는 회사를 승계 받은 것이 아니라 제 돈을 주고 회사 지분을 당당히 매입했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한편에서는 김연수 대표의 투자가 김상철 회장의 지원 하에 만들어졌다는 점을 들어 이를 반박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상철 회장이 과거 승계에 대해 언급한 것도 회자된다. 김 회장은 2016년 ‘포브스코리아’ 인터뷰에서 “딸(김연수 대표)의 경영능력은 아직까지 60점 정도”라며 “능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한컴의 오너가 되어도 기업가는 되지 못하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능력을 입증하라는 김 회장의 압박이 김연수 대표의 사내 리더십 확보를 위한 공격적인 태도를 부르고 있다고 분석한다.
승계 과정에서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컴그룹 실적은 악화되고 있다. 한컴의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417억 원, 영업이익은 24억 원이었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매출은 17%, 영업이익은 42% 감소했다. 코로나19 특수가 끝나며 한컴헬스케어 매출이 크게 줄었고, 지난해 한컴MDS를 매각하면서 매출 규모도 하락했다. 한컴위드 주가는 2021년 4월 한때 1만 5500원에 달했지만 현재는 4000원대 초반 수준이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메타버스와 코인 등 호재를 노린 신사업들을 졸속 추진했고 관련 시장 붐이 꺼지며 주가도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며 “현재 한컴그룹 내 계열사들은 좀처럼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전통적인 오피스 매출에 기대 수익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IT업계에서는 김연수 대표가 불거진 잡음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뚜렷한 경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영 능력을 입증해 임직원들 사이에서 진정한 리더십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추진 중인 해외 사업이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오피스 SW 특성 상 해외진출이 성공하기는 힘들다는 관측도 공존한다.
IT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한컴오피스가 저렴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피스가 표준인 해외에서 새로운 SW를 보급하기는 쉽지 않다”며 “가격에 민감한 중진국을 노려야겠지만 이들 국가는 저작권 인식이 희미한 것이 문제”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한컴 관계자는 “한컴오피스의 기술을 SDK(소프트웨어 개발 도구)화해서 공급할 계획이며 이는 어느 정도 틈새시장이라고 보고 있다”며 “현지 파트너를 통한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녀갈등설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고 강조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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