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년 만에 부활한 ‘피토바이러스’ 아메바 감염시켜…수만 년 전 매머드 털과 늑대 내장서도 바이러스 검출
기후 변화로 야기되는 문제는 사실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가운데 가장 심각하게 여겨지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하루가 다르게 줄고 있는 북극의 얼음 두께다. 심지어 얼음이 녹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근래 들어 또 한 가지 인류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문제가 있으니, 바로 잠자고 있는 바이러스, 즉 ‘좀비 바이러스’들의 부활이다.
이런 공포감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서 더욱 현실로 다가왔다. 긴 세월 얼음 속에 잠자고 있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다시 깨어날 경우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최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한 과학자들은 “아마도 좀비 바이러스는 북극 지방의 영구 동토층에 풍부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영구 동토층의 해빙 속도가 가속화됨에 따라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도 덩달아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까지 이 위험한 좀비 바이러스들은 알래스카의 영구 동토층에서 발견된 매머드의 털, 미라, 선사시대 늑대 등에서 발견되었다. 문제는 앞으로 더 많이 발견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런 까닭에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기관에서 파견된 연구원들로 구성된 국제연구팀은 “해동될 경우 여전히 전염력이 있는 고대 바이러스 입자들의 위험성이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10년간 이런 좀비 바이러스를 추적해온 유전체학, 미생물학, 지구과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지난 2월 ‘바이러스’ 학술지에 발표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수만 년 동안 냉동된 상태로 있던 이 바이러스들을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빠르게 녹고 있는 영구 동토층의 화석에서 발견한 좀비 바이러스들 가운데 하나는 피토바이러스 시베리쿰이다. 2014년, 3만 년 된 시베리아의 영구 동토층에서 발견된 고대 바이러스로, 당시 발견된 곳은 땅속 30m 아래였다. 크기는 약 1.5마이크로미터로 비교적 큰 축에 속하기 때문에 일반 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광학 현미경으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사람에게 감염되는 바이러스의 경우 일반적으로 20~200나노미터 범위이기 때문에 이보다 일곱 배 이상 큰 셈이다.
프랑스국립과학연구원과 엑스마르세유대 연구팀(CNRS-AMU)의 과학자들이 3만 년 된 좀비 바이러스인 피토바이러스 시베리쿰을 부활시키는 데 사용한 방법은 아메바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메바를 바이러스에 노출시킨 후 감염시켰다. CNRS-AMU의 장 미셸 클라베리 교수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전염력이 있는 바이러스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와 관련, 클라베리 교수 연구의 공동 저자인 샨탈 아베르겔은 BBC에 “이 바이러스는 아메바 세포 안으로 들어가 증식했고, 결국에는 세포를 죽여버렸다”면서도 “다만 아메바를 죽일 수는 있지만 인간 세포를 감염시키지는 않는다”고 안심시켰다.
그렇다고 백퍼센트 안심할 문제도 아니다. 비록 피토바이러스 시베리쿰이 사람이나 동물에게 위험이 되는 건 아니지만, 연구원들은 언젠가 얼음에서 깨어날 수 있는 수많은 다른 좀비 바이러스들은 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직 얼음 속에서 죽지 않은 채 살아있는 바이러스가 얼마만큼의 전염력이 있는지, 또 어떤 종류인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피토바이러스 시베리쿰이 완벽히 부활했듯 이런 류의 바이러스들이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나쁜 징조다. 연구진들은 “이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쉽게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여러 가지 다른 진핵생물 숙주(인간과 동물 포함)를 감염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 입자들이 고대 영구 동토층에 풍부하게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경고했다.
피토바이러스 시베리쿰과 함께 3만 년 된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에서 발견된 또 다른 바이러스가 있다. 바로 몰리바이러스 시베리쿰이다. 냉동 상태로 발견된 몰리바이러스 시베리쿰의 크기는 0.6마이크로미터 정도로 피토바이러스보다는 약간 작은 크기다. 사람이나 동물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피토바이러스와 매우 가까운 곳에서 발견됐다는 점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영구 동토층이 좀비 바이러스들로 가득 차 있다는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클라베리와 아베르겔을 비롯한 공동 저자들은 2015년 연구에서 “북극 영구 동토층이 녹아내리거나 산업 활동에 의해 파괴되면 고대 시베리아 인류(또는 동물) 집단을 감염시켰던 오래된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할 수 있게 된다”고 경고했다. 과학자들이 기후 변화로 인한 영구 동토층 해빙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그 결과 팬데믹이 ‘계속 가속화될 것’이라고 믿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례로 북극해에 있는 러시아 사하공화국 코텔니 섬의 영구 동토층은 지금도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영구 동토층에서 약 430개의 ‘가스 폭탄’이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이런 ‘가스 폭탄’은 거대한 분화구를 형성하며 폭발할 수 있기 때문에 마치 시한폭탄처럼 불안한 상태다.
이 밖에 판도라바이러스와 메가바이러스 매머드는 러시아 야나 강둑에서 발견된 2만 7000년 된 매머드 사체의 털에서 검출됐다. 이 두 바이러스 역시 실험 결과 아메바를 감염시켰다. 아메바를 시험 지표로 선택한 이유는 아메바가 인간 및 동물과 충분히 유사한 진핵세포를 갖고 있어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조사 결과 다행히 새로운 유행병을 일으킬 만큼 위험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연구팀은 판도라바이러스의 변종을 배양시킨 후 또 다시 아메바를 비롯해 인간 및 쥐의 세포에 노출시키는 실험을 실시했다. 이는 이 바이러스가 포유류 세포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두 바이러스 모두 인간과 쥐의 세포를 감염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라고 경고하면서 “분명한 사실은 여전히 고대 바이러스 입자가 전염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고대 영구 동토층이 녹으면 다시 확산될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했다.
늑대바이러스라고도 불리는 팩만바이러스 루푸스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의 고대 친척뻘 된다. 중석기 시대 이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발견된 냉동 상태의 바이러스는 2만 7000년 된 시베리아 늑대 내장에서 발견됐으며, 비교적 크기가 큰 다른 고대 바이러스들과 마찬가지로 부활할 경우 아메바를 감염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 세계보건기구의 발표에 따라 1980년 공식적으로 전세계에서 근절된 것으로 알려진 천연두가 다시 깨어날 가능성도 주목해야 한다. 2004년, 프랑스와 러시아 과학자들은 러시아 사하공화국의 툰드라에서 얼어붙은 채 발굴된 300년 된 시베리아 미라 안에서 천연두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이 미라는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사이에 시베리아 북동부 지역에서 천연두가 창궐했을 당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서둘러 만든 듯 보이는 무덤 안에서는 냉동 미라 다섯 구가 더 발견됐다. 추측컨대 이 시신들은 모두 천연두로 사망한 직후 재빠르게 매장된 것으로 보였다.
‘바이러스’에 발표한 논문 저자들에 따르면, 2004년에 발견된 이 천연두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 계속해서 녹아내리는 영구 동토층에서 일어나게 될 바이러스 폭발이 앞으로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클라베리와 아베르겔 팀은 “하지만 관련 주제에 대한 연구는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우려를 내비쳤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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