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중 감독 부드러운 리더십 아래 원팀으로 뭉쳐…이영준·이승원 등 맹활약
#U-20 월드컵 통산 3회, 최근 2대회 연속 4강 진출
김은중 감독이 이끄는 이번 대표팀의 결과는 역대 대회 도전사에서 세 번째 4강 진출이다. 첫 성과는 전설적인 1983년 멕시코 대회였다. 두 번째 4강을 경험하기까지 30년 이상 걸렸다. 직전 대회인 2019년 대회에서 4강 신화가 재현된 바 있다.
김은중호는 조별리그 첫 경기, 강호 프랑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다. FIFA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에서 연령별 대표를 통틀어 프랑스를 상대로 한 승리는 처음이었다. 이어진 조별리그 온두라스와 감비아를 상대로는 2연속 무승부를 거두며 조 2위에 올라 토너먼트로 진출했다. 조별리그에서 패배 없이 토너먼트에 오른 것은 이번 대회가 처음이다.
16강과 8강에선 에콰도르, 나이지리아를 만나 연승을 거뒀다. 에콰도르전에서 한때 두 골차로 앞서며 주요 자원을 교체해 체력을 안배해 여유 있는 운영을 펼친 반면, 나이지리아를 상대로는 어려운 경기를 치른 끝에 연장전 결승골로 신승했다.
4강 이탈리아전에서는 8강에서의 연장 혈투에 체력적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전방 지역으로 유연하게 공을 연결하며 더 많은 찬스를 만들어냈다. 정규시간 막판 위험지역에서 내준 프리킥골이 아쉬웠다.
#"인정 못 받아 마음 아팠다" 기대감 적었던 대표팀
최근 U-20 월드컵에 나선 팀들은 모두 축구팬들의 적지 않은 관심을 받았다. 2017년에는 국내에서 대회가 개최됐기에 '붐 조성'이 이뤄졌다. 이에 더해 이승우 백승호 등 A대표급 인기를 자랑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이 팀에 포진했다. 2019년에는 이강인이라는 특별한 존재가 있었다. 자연스레 대회 이전부터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이번 대표팀에 대한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존재감을 자랑하는 스타가 없었던 탓이다. 이번 대표팀을 두고 '골짜기 세대'라는 가혹한 평가도 나왔다. 지난 3월 열린 U-20 아시안컵 결과도 좋지 못했다. 대표팀은 당시 대회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승부차기로 패해 4강에 머물렀다. 또 하나의 부정적 평가가 뒤따르는 요인이었다. 김은중 감독은 4강 진출을 확정지은 이후 "선수들이 인정을 못 받는 것이 마음 아팠다"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김은중호는 예상을 뒤엎었다. 5경기 여정에서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4강에 진출했다. 뜨거운 응원을 받는 스타플레이어 없이도 선배들 못지않은 위치에 올랐다.
#김은중 리더십에 뭉친 선수들
팀을 4강으로 이끈 김은중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리더십으로 정평이 나 있던 인물이다. 대전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제주, 강원 등에서 주장을 역임하며 후배들을 이끈 바 있다. 선수생활 마지막은 2부리그로 떨어진 친정팀 대전으로 복귀, 플레잉 코치로 활약하며 팀의 승격에 힘을 보탰다. 강한 카리스마로 팀을 이끌기보다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하는 유형으로 알려졌다. 클럽하우스 내 그의 방을 찾으면 핸드드립 커피를 대접받을 수 있다는 증언이 선수들 사이에서 이어졌다.
본격적인 지도자생활은 유럽에서 시작했다. 벨기에의 투비즈 구단에서 코치, 감독대행을 지냈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 연령별 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김학범 감독을 도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2020 도쿄 올림픽 8강 진출을 함께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U-20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지도자를 하면서도 선수 시절 리더십 유형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골키퍼 코치로 자신보다 16세나 많은 차상광 코치와 함께하고 있다. 선후배가 엄격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국내 축구 문화를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U-20 월드컵을 치르며 선수들이 이뤄낸 결과에 눈물을 보이는가 하면 "지도자가 아닌 선배의 마음으로 선수들을 대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김은중 감독의 마음에 화답하듯 선수들은 '원팀'으로 뭉쳤다. 대표팀은 엔트리 21명 중 1명이 대회 도중 낙마하는 아픔을 겪었다. 공격수 박승호가 조별리그 2차전 온두라스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 이후 귀중한 동점골을 넣었으나 곧장 부상을 입어 들것에 실려 나갔다. 발목 골절 및 인대 손상이라는 진단을 받고 먼저 귀국했다. 선수들은 16강과 8강에서 승리를 이어갈 때마다 박승호의 등번호 18번이 적힌 유니폼을 들며 세리머니를 펼쳤다.
#‘김은중의 아이들’
대회 전 큰 기대를 받지 못했지만 선수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최전방 공격수 이영준은 이번 대회 주전 공격수로 나서며 4강전까지 2골을 책임졌다. 백업 공격수 박승호의 이탈로 체력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 속에서도 다부진 활약을 선보였다. 골문을 지키는 김준홍과 함께 U-20 대표팀에서 보기 드문 상무 소속 선수다.
이영준과 함께 대회 전 경기에 출전하며 1골 1도움을 기록 중인 김용학은 포르투갈 포르티모넨세 소속으로 유럽에서 활약 중이다. 고교 졸업 이후 포항 입단과 동시에 포르투갈 임대를 떠났다. 구단 내 1군과 2군을 오가며 뛰었고 이번 대회 활약이 더해지자 포르투갈 현지에서는 완전 이적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주장 이승원은 4강전에서 페널티킥을 포함 5경기 2골 4도움으로 팀 내 최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미드필더다. 첫 경기 프랑스전에서 두 골에 모두 관여해 팀이 대회를 편안하게 치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팀 내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하며 날카로운 킥으로 동료들의 골을 도왔다. 이번 시즌 강원 FC에 입단한 프로 새내기로, 1군 경기 출전 경험은 없이 B팀 경기에만 나섰다.
측면 공격수 배준호는 대전 하나시티즌이 자랑하는 젊은 공격수다. 2년 차를 맞은 프로 무대에서 점차 출전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이번 대회 16강전에서 1골 1도움으로 8강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부드럽게 공을 다루는 능력이 장점으로 평가받는다. 팀이 아쉽게 패한 이탈리아전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다"며 적장에게 칭찬을 받았다.
중앙수비수 김지수는 고등학생이자 준프로 신분이던 지난해 이미 축구팬들에게 이름을 널리 알렸다. 소속팀 성남 FC를 대표해 리그 올스타 팀에 선발됐고 토트넘 홋스퍼와 친선경기에도 나섰다. 손흥민, 해리 케인 등 세계적인 공격수들을 상대하는 경험을 쌓았다. 신장 190cm가 넘는 피지컬, 어린 나이에도 침착한 수비와 빌드업 능력으로 유럽 빅리그에서 영입을 노린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전해지고 있는 수비수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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