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엔데믹 전환에도 공실 늘어나는 추세…학생들 소비여력 줄고 소비 트렌드 변한 탓 분석
#‘이대 앞은 귀신거리’ 공실 계속 늘어나는 중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는 종로구 혜화동과 명륜 2가·명륜 4가를 잇는 대명거리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혜화역 4번 출구 쪽 점포는 통신사 대리점들과 공차, 할리스, 커피빈 등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일부 옷가게·액세서리 점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실이다. 대명거리에서 15년간 자리를 지킨 음식점 ‘식탁의 목적’ 입구에도 철수한다는 게시글이 나붙어 있다. 혜화역 인근에 거주 중이라고 밝힌 한 직장인은 “‘비어오크’ 같은 터줏대감들이 사라지더니 빈자리에는 프랜차이즈들이 들어섰다. 혜화역 2번 출구 앞 마로니에공원 쪽도 많이 바뀌면서 이제는 예전의 대학로 분위기가 안 난다”고 말했다.
팬데믹 기간 잡화점이 줄어들면서 250m 남짓한 대명거리에는 무인 사진점이 8개로 늘었다. 인건비가 들지 않는 까닭에 인기가 높아서다. 식당들의 신규 진입도 늘고 있다. 대명거리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이 거리에는 원래 식당이 이렇게 많으면 안 된다. 원래 메인 통로는 쇼핑하는 데고 마진이 적은 식당은 골목 안쪽에 포진해야 하는데 쇼핑 수요가 줄어드니까 식당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부터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상권이 워낙 침체해 혼자서 일주일 내내 일하는데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벌고 전기세도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단골들이 없었으면 가게를 접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대역 부근은 더 심각하다. 대면수업으로 전환하면서 대로변을 오가는 학생들은 늘었지만 이대역에서 이화여자대학교까지 이어지는 300m 남짓한 거리에는 한 건물 건너 하나씩 공실이 나올 정도다. 골목으로 진입하면 5~6개 건물이 붙어 있는 블록 전체가 공실인 경우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특히 이대에서 경의중앙선 신촌역으로 빠지는 골목에는 공실이 두드러진다. 평일 오후 6시에 아예 셔터를 내린 가게도 블록마다 있었다. 올해 초 이대 앞 상권을 10년간 옥죄던 업종제한 규제 해제도 상권 침체를 살릴 만한 호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화여대에 재학 중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코로나 초반에는 가게들이 많이 바뀌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빈 곳에 아예 가게가 안 들어오면서 ‘귀신거리’처럼 변했다”며 “이대 정문 바로 앞에 있는 제일 큰 건물이 몇 년째 통째로 비어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대역 인근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골목에 새로 건물들을 지어 올리면서 그 자리에 입점해 있던 가게들이 나가 생겨난 공실도 적지 않다. 문제는 상권이 워낙 침체된 데다 임대료가 비싸니까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교차하는 건대입구역 부근 상권 역시 공실이 적잖기는 마찬가지다. 건대입구역에 인접한 ‘건대 맛의 거리’를 둘러싼 대로변 점포들은 한 블록 건너 하나씩 유리창마다 ‘임대’를 알리는 종이가 나붙어 있다.
대학가 주변 상권 공실률은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경우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2년 1분기 0.6%에서 2023년 1분기에는 3.6%로 늘었다. 건대입구 부근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2년 1분기 0%에서 2023년 1분기에는 4.3%로 늘었다. 같은 기간 신촌과 이대 부근은 13.8%에서 12.3%로 감소했지만 기존 공실률이 워낙 높아 의미 있는 감소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동안 침체기를 각오해야 할 것”
대학가 상권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이유는 주요 수요층인 학생들의 소비 여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워낙 소비가 위축되는 추세인 데다 학생들은 지갑이 얇을 수밖에 없어 대학가 상권이 제일 먼저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점주들이 인건비를 아끼려고 무인점포를 늘리면서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 기회도 줄어들고 있어 소비가 점점 악순환에 빠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소비 트렌드가 바뀐 점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로나19 기간 MZ세대의 소비성향이 온라인으로 이동한 까닭에 오프라인 쇼핑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학가에서는 원격수업 비중도 확연히 늘었고 이미 대학 문화가 바뀌었기 때문에 대학가 상권이 코로나 이전처럼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주현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부동산정책연구원장은 “대학가 상권은 대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젊은 분위기를 소비하기 위해 오는 곳인데 쇼핑 트렌드가 바뀌면서 경쟁력을 잃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학가 상권 임대료는 크게 줄지 않았다. 부동산R114의 ‘서울 대학 상권별 상가 평균 매매 및 임대가격’ 자료에 따르면 2020년 4분기 이대역 부근 상가의 평당 평균 매매가는 1억 5299만 원에서 2023년 1분기에는 4557만 원으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평당 평균 임대료는 16만 7900원에서 20만 1800원으로 오히려 늘었다. 혜화역 인근 대학로 상권의 경우 2022년 2분기 평당 평균 매매가는 2억 5247만 원에서 2023년 1분기 9049만 원으로 64%가량 줄었지만 같은 기간 평당 평균 임대료는 15만 6800원에서 13만 4700원으로 14%가량 줄어든 데 그쳤다.
부동산 가치가 대폭 하락할 것을 우려한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내리지 않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주현 원장은 “건물주들이 한두 달 임대료 납부를 면제해준다든지 임차인의 내부 수리를 보조해주거나 하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임대료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난해부터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임차인들이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여경희 연구원은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이 상승세인 점도 대학가 상권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학생들의 수요가 감소한 상황에서 가격을 올릴 수도 없기 때문에 자영업자들의 이탈이 가속화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팬데믹 기간 자영업자들이 크게 늘었는데 다같이 장사가 안 되는 데다 코로나 영향으로 영업시간은 줄었다”면서 “전반적으로 경기 침체의 영향이 가장 크다. 앞으로도 한동안 침체기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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