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손끝서 피어난 부채, 바람을 쥐락펴락하다
아마도 인류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오래된 도구 중 하나가 바로 부채일 것이다. 오래 전부터 부채는 더위를 쫓고 벌레를 물리치고 불을 피워 올리는 등 다목적으로 쓰였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부채는 경남 의창군(현 창원시) 다호리에서 발굴된 기원 전후 시기의 우선(羽扇·깃털 부채)이다. 발굴 당시에 깃털은 없고 부채 자루만 있었으나 자루 머리에 깃털을 끼우던 12개의 구멍이 나 있었다. 황해도 안악군 용순면 유순리에 위치한 고구려시대의 고분 ‘안악3호분’의 벽화에서도 부채가 발견된다. 그림에서 수레를 탄 묘주(무덤의 주인)의 손에는 우선이 쥐어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부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신라 애장왕 시절(807년) 가척(노래 부르는 사람)이 ‘사내금’이라는 가무를 할 때 손에 수선(수를 놓은 부채)을 들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또한 신라 경명왕 때 견훤이 고려 태조로 즉위하는 왕건에게 공작선을 선물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 초기에는 비단 부채가 백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에는 현종 때 “백성들의 지나친 사치를 경계하여 비단으로 만든 부채의 매매를 금지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예종 시절 왕이 주연을 베풀고 신하들에게 ‘초피난선’을 하사했다는 대목도 찾아볼 수 있다. 초피난선이란 벼슬아치가 겨울에 얼굴을 가리는 방한구로 쓰던 부채를 말한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부채는 아름답고 멋스러워 외교상의 답례품 등으로 많이 사용됐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명나라 사신이 부채를 요구하거나 하사받은 기록이 여럿 남아 있다.
우리나라 부채는 형태상으로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부챗살에 비단이나 종이를 둥근 형태로 붙인 방구부채 또는 원선(圓扇)이고, 다른 하나는 접고 펼 수 있게 부챗살에 종이 등을 붙여 만든 접부채(쥘부채)다.
한자로 접선(摺扇) 또는 접첩선(摺疊扇)이라고 불리는 우리 접부채는 정교하고 세련미가 뛰어나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세종실록’에는 명나라 사신이 부채를 구하므로 왕은 방구부채 10자루, 접부채 88자루를 하사하였다는 대목도 나온다. 중국사람 고사기가 지은 ‘천록식여’에는 청나라 때에 조선의 접부채가 크게 유행되어 당시 중국의 방구부채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특히 접부채의 일종인 합죽선(合竹扇)은 미적 가치가 뛰어나고 만드는 방법도 까다로워 최고의 부채로 여겨졌다. ‘합죽’이란 대나무의 겉대와 겉대를 맞붙여서 부챗살을 만드는 기법을 말한다. 튼튼한 겉대를 포개어 만들기 때문에 오래 사용할 수 있고 탄력이 좋아 다른 부채에 비해 더 시원한 바람을 일으킨다. 합죽선은 조선 후기 정조대 이후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의 선자청이나 통제영이 있던 통영의 선자방이라는 관청에서 군영 소속의 장인들이 주로 제작했다. 당시에는 신분에 따라 부챗살의 수에 제한을 두었는데, 50죽 합죽선은 왕가에서, 40죽 합숙선은 사대부들이 즐겨 사용했다.
일제강점기 들어 전통 부채는 적잖은 타격을 받기도 했다. 우리 부채보다 값이 싸고 가벼운 일본 부채가 대거 유입되면서 전통 부채공예가 쇠퇴의 길을 걷게 됐던 것. 광복 이후 우리 부채 업계는 한동안 활기를 되찾게 되었지만, 선풍기와 에어컨디셔너 등 냉방기기의 보급으로 점차 사양길에 접어들게 됐다.
하나의 합죽선이 만들어지려면 적어도 백수십 번 이상 장인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 좋은 대나무를 골라 겉껍질을 자른 뒤 양잿물에 삶아 말리고, 이렇게 불린 대나무의 속대를 깎아내어 빛이 투과될 정도로 얇게 겉껍질을 다듬는다. 이 겉껍질을 두 장씩 민어부레로 만든 풀과 아교로 맞붙여 일주일 정도 말려야 하나의 부챗살이 만들어진다. 부채의 단단한 겉 부분을 ‘변죽’(갓대)이라 하고, 손잡이 부분을 ‘등’이라 하는데, 여기에 쓸 재료, 넣을 문양과 형상 등도 함께 구상해 깎고 다듬어 놓아야 한다. 그 후 부챗살에 풀을 입혀 미리 재단해 놓은 한지를 붙이고, 손잡이 장식인 사복을 박는 과정 등을 거쳐야 비로소 한 자루의 합죽선이 탄생한다.
전통적 방법으로 제작된 부채는 이제 관광공예품, 특산물의 하나로 명맥을 이어가는 실정이다. 문화재청은 전통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을 201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보호하며 전승의 길을 열고 있다. 초대 선자장 기능보유자는 우리 합죽선의 맥을 잇고 있는 김동식 명장이다. 고종황제에게 합죽선을 진상할 정도로 기술이 뛰어났던 외조부 라학천 합죽선장에게서 전통 부채공예를 익힌 그는 올해로 67년째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자료 협조=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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