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증거 나오면 ‘무죄’ 다투기 불가능…최근 양형 갈수록 올라가 더 기피하는 분위기
하지만 전관 변호사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면 반응이 조금 다르다. 비교적 구조가 단순한 사건이기에 ‘수임’을 원할 것이라는 예상을 엇나간다. 아예 “마약 사건과 조폭 사건은 아예 맡지 않는 것으로 원칙을 세웠다”며 거절하는 이들이 많다. 경찰이나 검찰 수사 단계 때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재판으로 넘어가면 판사 출신 변호사들 대다수가 사건 맡기를 꺼린다. 마약 사건이 가진 특수성 때문인데, 최근 마약 관련 양형이 올라가면서 더욱 사건을 기피하는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유아인이 전관 선임할 수 있었던 이유
유아인 사건을 맡았던 박성진 변호사는 검찰 내에 대표적인 마약통이다. 부산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장, 대검 마약과장, 대검 조직범죄과장,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까지, 마약통이 거칠 수 있는 보직은 모두 역임했다. 2022년 검찰총장 직무대리까지 역임했던 인물이다. 그와 함께, 유아인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들도 검찰 출신으로 형사 사건 경험이 많았던 이들이었는데, 서초동 변호사 업계에서는 “투약한 연예인이기에 가능했던 변호사 선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검찰 출신의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연예인들 사건은 사건 종류마다 가려 받는 편이지만, 음주운전이나 마약처럼 사회적 지탄을 받는 사건은 아예 선임을 하지 않는 로펌들도 있다”며 “우리도 음주운전이나 마약 사건에 연루된 연예인들이 와서 상담을 받긴 하지만 좋은 말로 거절해서 돌려보내는 편인데, 유아인도 박성진 전 검사장을 선임하는 과정까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약통 검사 출신들은 수사 경험을 살려 마약 관련 사건을 맡지만, 그 외 특수나 일반 형사 사건을 주로 담당했던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사건을 꺼린다는 얘기였다.
마약 사건만 가지는 특수성을 봐야 한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마약 사건은 보통 마약을 투약하는 현장에서 체포되거나, 주거지와 신체 압수수색 등을 통해서 확실한 증거가 나온 경우가 일반적이다. 의뢰인들이 변호사를 찾는 시점도 이미 수사가 시작된 뒤다. 변호사가 개입해 의뢰인을 변호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적이라는 설명이다. 유아인도 귀국하는 길에 경찰에 모발 등 압수수색을 받은 뒤 변호사를 선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확실한 증거가 수사기관의 손에 넘어간 뒤에는 ‘무죄’를 다투는 게 불가능하다. 기껏 해야 마약을 투약한 횟수나 종류를 놓고 다투는 게 전부인데, 이마저도 휴대전화나 계좌 등에 구매 기록이 남아 있으면 다투는 게 불가능하다. 함께 투약한 이들 중 한 명이라도 자백을 할 경우 되레 불리하게 적용될 수도 있다. 많은 전관 변호사들이 ‘마약 사건은 받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치는 이유다.
#단순 투약과 달리, 유통사범은 ‘양형’ 높아
단순 마약 구매범은 그래도 변호사를 구하기 쉬운 편이다. 거꾸로, 마약을 유통한 경우에는 대부분의 전관 변호사들이 사건을 꺼린다. 범죄단체조직죄, 이른바 ‘범단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범죄단체는 엄밀하게는 폭력처벌법상 범죄단체(폭처법 제4조)와 형법상 범죄단체(형법 제114조)로 구분된다. 폭처법상 범단은 수괴·간부·가입자를 구분해 수괴는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을, 그 이하는 사형을 제외하고 그보다 가벼운 형량에 처한다. 형법상 범단은 대상자를 사형·무기 또는 4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이 중 마약 유통은 ‘형법상 범단죄’에 적용되는 게 최근 흐름이다.
이는 양형을 높이기 위한 수사기관의 ‘기법’이다. 범죄단체는 통솔 체계를, 범죄집단은 범죄를 계획·실행할 조직적 구조만 입증하면 된다. 마약 사건은 △마약을 동남아에서 들여오는 역할 △국내에서 유통하는 역할 △돈을 수거·관리하는 역할 △이를 총괄적으로 지시하는 역할(수괴)로 각각 나눠 담당하는 편이다. 보통 10명 안팎이 함께 움직인다. 때문에 이들은 범단죄를 적용받았을 때 빠져나가기 힘들다.
최근 동남아 일대에서 마약을 들여왔다가 기소된 A 씨의 사건이 대표적이다. 30대 초반의 무직인 A 씨는 마약을 들여오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받고, 태국 일대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B 씨와 손잡게 됐다. 하지만 결국 A 씨는 수사당국에 검거된다. 초범인 A 씨는 B 씨 등 10여 명과 함께 범단죄가 적용돼 구속기소됐다. B 씨와 ‘수괴는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라고 다투는 상황이 된 A 씨는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적극적으로 다퉈보고 싶었지만 적지 않은 전관 변호사들이 사건 수임을 거부했다.
형사 사건 경험이 많은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마약 사건은 투약범과 유통사범을 구분해서 봐야 하는데 유통사범의 경우 이미 들여오다가 걸린 마약 증거물이 있기 때문에 유무죄를 다투는 것도 불가능하고, 범단죄가 적용되면 양형이 최소 5년 이상으로 나오기 때문에 특별한 감형 사유를 제시해야 징역 3년 이하로,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하다”며 “괜히 유통사범 사건을 맡았다가 실형 선고가 난 뒤 선임료를 많이 받았다며 의뢰인 측에게 욕을 먹는다는 것을 알기에 다들 사건을 맡지 않으려는 게 일반적”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마약 투약사범은 물론, 유통사범에 대한 양형도 올라가는 추세다. 현행법은 마약을 수출입·제조·매매하거나 매매를 알선한 자, 또는 그럴 목적으로 마약을 소지·소유한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최근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은 마약 유통사범에 대한 처벌을 7년 이상 징역으로 강화하는 내용의 마약류 관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하기도 했다.
마약 사건 관련 의뢰인들이 ‘변호사 찾기’를 힘들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선 고등부장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나는 사건을 맡긴 하지만, 일부러 수임료를 높게 불러 가급적 사건을 안 맡으려는 편”이라며 “마약 사건은 극소수의 맡는 사람만 맡는 사건이고, 이마저도 유명 재벌가 2~3세나 유명 연예인이 아니면 전관 변호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양형이 올라가고 있어 변호사로서 보람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게 마약사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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