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보호기관 21곳 중 두 곳만 실질적 역할…“교도소 나오면 끝이 아닌 치료·재활 함께 이뤄져야”
지난 4월 21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열린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 관련 협의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약류 범죄 소탕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마약을 극복한 사람들과 중독전문가들은 처벌에 그치는 건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마약 중독은 ‘질병’이기 때문에 치료와 재활, 교육이 절실한데 정부의 마약 관련 대책은 ‘처벌’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2월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가 발표한 ‘2022년 12월 마약류 월간 동향’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수사당국에 적발된 마약사범 수는 역대 최대인 1만 8395명이었다. 2021년 1만 6153명이었던 것에서 13.9% 증가했다. 마약류별로 보면 대마·마약(양귀비 등)·향정(향정신성의약품‧필로폰 등)사범이 전년 대비 모두 증가했다. 대마사범은 2021년 3777명에서 2022년 3809명으로, 마약사범은 1745명에서 2551명, 향정사범은 1만 631명에서 1만 2035명으로 늘었다.
검찰에 따르면 올해 1~4월 마약사범은 558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307명이에서 29.7% 증가했다. 이 가운데 투약사범은 전체의 55.2%, 공급사범은 30.7%였다. 특히 10~20대 마약사범은 2035명으로 전체의 36.4%를 차지했다. 지난 2017년 10대 사범이 119명이었던 것과 비교해 지난해는 481명으로 4배나 늘었다.
마약 관련 범죄는 재범률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대검찰청이 지난해 발표한 ‘2021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17~2021년 5년간 마약사범의 연도별 재범률은 모두 30%를 넘었다. 2017년 36.3%, 2018년 36.6%, 2019년 35.6%, 2020년 32.9%, 2021년 36.6%였다. 특히 향정사범의 경우 2021년 적발된 1만 631명 중 4233명이 재범으로 39.8%에 달했다. 김용석 가톨릭대 일반대학원 중독학과 교수는 “마약 중독은 재발률이 높은 질병”이라며 “알코올·도박·마약 중독 모두 재발률이 높은 질병이며 치료 후 평생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마약 중독자들은 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보건복지부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40조’에 따라 마약중독 치료보호기관으로 지정한 의료시설은 현재 전국에 총 21곳이며, 실질적으로 치료보호기관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은 단 두 곳뿐이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최근 5년간(2017년~2021년) 중독자 치료 전문병원 운영실태 자료에 따르면, 전국 21개 치료보호기관 중 최근 5년 동안 10건 이상 치료 실적이 있는 곳은 경남 국립부곡병원과 인천 참사랑병원, 2곳이었다. 같은 기간 총 치료보호 건수는 2017년 330건에서 지난해 280건으로 줄어들었다. 지정병상 수도 330개에서 292개로 줄었다. 같은 기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수 역시 170명에서 132명으로 감소했다. 재발방지를 위한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전국 중독환자 치료의 절반 이상을 담당했던 강남을지병원이 2015년부터 마약중독 치료보호 지정병원으로 운영돼 오다 재정난을 이유로 2018년 지정 해제를 요청했던 것도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
25년간 마약 중독자였고 20년째 단약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장은 지난 5월 한 유튜브 방송에서 “중독자는 평생 중독이라는 병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치료하고 재활할 수 있는 방안이 전국적으로 많이 필요한데 지금 우리나라는 그게 잘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년간 마약을 했던 경험이 있는, 중독자 재활시설 김해 다르크 리본하우스의 한부식 원장은 “입원치료를 하고 싶어도 병원이 없고, 치료보호 조치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우리나라에서 현재 약물중독자가 치료를 받는 비율이 2.3%밖에 안 된다고 한다. 나머지는 알아서 치료하라는 건데 현실적으로 힘든 얘기”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전 국민적으로 마약 사용 경험과 관련한 실태조사를 하고, 이에 기반을 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는 “미국에서 매년 실시하는 마약류 사용 및 건강에 관한 전국 조사(NSDUH)와 같이 대규모 연구가 수행될 필요가 있다”며 “알코올, 담배 및 불법 마약류 사용 및 남용의 수준과 패턴을 파악해 결과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마약사범 처벌에 그칠 게 아니라 치료와 재활이 함께 이뤄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부식 원장은 “교도소에서 나오면 끝이 아니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치료의 첫 시작은 내가 중독자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 원장은 또 “해외에서는 마약중독자 가족들도 함께 교육을 한다. 가족의 도움과 이해 없이는 극복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해국 교수는 “우리나라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은 치료의 대상으로 마약중독을 바라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단순 사용자는 비범죄화해서 처벌을 치료로 대체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수강명령 80시간을 조건으로 붙여서 치료도 아니고, 상담도 아닌 애매한 서비스만 받고 풀려나기 때문에 1년이면 3분의 1씩, 3년이면 100% 다 재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약물법원을 별도로 운영해 처벌 이후에도 지속적인 검사와 확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용석 교수는 “미국처럼 판사들이 정기적으로 중독자들을 만나서 치료를 잘 받고 있는지 확인하는 등 처벌 중심이 아닌 치료‧재활 중심의 사법체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며 “중독은 질병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마약 치료를 위한 정부 예산이 확대 편성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책정된 치료보호 사업 예산은 8억 2000만 원으로 작년과 같은 규모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보건복지부는 마약류 중독자 치료를 위해 치료보호 예산을 지속적으로 증액하고 있으며 현재 치료보호예산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현재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를 위해 전국 21개소 치료보호기관을 지정‧운영하고 있으나, 마약류 중독자 치료 기피 현상이 있어 실질적인 치료보호가 가능한 기관을 연내 5곳으로 확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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