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축구 이어 e스포츠까지 영향력 뻗쳐…어두운 면 덮으려는 ‘스포츠 워싱’ 비판도
#LIV 골프-PGA투어 충격의 합병
최근 골프계가 LIV 골프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유럽 투어(DP 월드투어)의 합병으로 큰 충격을 줬다.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창설한 LIV 골프는 그동안 기존 전통 투어와 갈등을 겪었다. 새로운 투어를 창설하며 막대한 금액을 투입했고 PGA 레전드 그렉 노먼(호주)이 CEO를 맡았다. LIV의 대회 상금은 PGA의 약 4배에 달했다. 필 미켈슨(미국), 더스틴 존슨(미국), 브라이슨 디샘보(미국) 등 선수들이 '이적'을 감행했다. 스타플레이어들이 줄줄이 빠져나간다면 PGA 투어는 '2부 투어'가 될 위기에 처했다.
PGA에 남은 로리 매킬로이(영국) 등은 LIV로 떠난 선수들을 비판했다. PGA에서도 추가 이탈을 막기 위해 대회 상금을 상향 조정하는 등 노력을 이어갔지만 경쟁은 약 1년 만에 끝이 났다.
2022년 6월 9일 LIV 골프는 역사적인 첫 티샷을 날렸다. 약 1년이 흐른 지난 6월 6일 LIV, PGA, DP 월드투어는 합병을 선언했다. 세부사항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통합투어 법인 CEO를 PGA 측에서 맡고 이사회 회장 자리는 PIF의 차지가 되는 형태가 합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런 통합은 반발을 낳고 있다. 합병을 주도한 PGA 투어 커미셔너인 제이 모나한은 1년 전 선수 이탈을 막으려 "사우디 인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합은 현실이 됐고 그를 향해 '위선자'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세계랭킹 2위 욘 람(스페인)은 합병 발표 이후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선수들과 합의가 없었음을 꼬집기도 했다.
#'메시도 노렸다' 축구계 영향력 넓히는 사우디
사우디는 축구에서도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PIF는 2021년 10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인수했다. 유럽 최대 리그에 깃발을 꽂은 것이다.
사우디는 자국 리그 팽창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의 사우디 리그 알 나스르 이적은 신호탄이었다. 또 다른 발롱도르(2022년) 수상자 카림 벤제마(프랑스)는 알 이티하드 유니폼을 입었다. 사우디는 '축구황제'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영입까지 노렸다. 이외에도 세르히오 라모스(스페인), 은골로 캉테(프랑스), 로멜루 루카쿠(벨기에) 등 사우디와 연결되는 스타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사우디는 차원이 다른 조건으로 스타들을 유혹하고 있다. 메시는 알 힐랄에 입단했을 경우 연봉 6억 유로(약 8324억 원)를 수령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벤제마는 금액은 적지만 리그 내 자신이 뛸 구단과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는 전례없는 권한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벤제마가 구단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쥔 기이한 형태가 발생한 원인은 곧 드러났다. 사우디 리그 내 4개의 구단이 PIF에 인수되면서 가능했던 것이다.
사우디는 2030년 월드컵 유치라는 큰 꿈도 꾸고 있다. 이적한 선수들을 대회 유치의 홍보대사 격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파리생제르망 인수, 자국리그 팽창 등 축구계 영향력을 넓혀 2022 월드컵을 치러낸 카타르의 모델을 따를 전망이다.
#공세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사우디 자본의 스포츠계 침공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프로레슬링단체 WWE와 10년 계약을 맺고 2018년부터 사우디 내에서 이벤트를 열고 있다. PIF가 WWE에 쥐어주는 연간 1억 달러(약 1281억 원)는 그간 프로레슬링계에서 볼 수 없었던 금액이다. 막대한 자본으로 한때 WWE 최고 스타이자 이제는 할리우드 스타인 더 락(드웨인 존슨)의 복귀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이들이 WWE를 본격 인수하려 한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사우디는 2021년부터 세계 최고 모터스포츠인 포뮬러1(F1) 그랑프리 개최지 대열에도 합류했다. 2029년 동계, 2034년 하계 아시안게임 유치가 확정됐으며 2036 하계 올림픽 유치를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동계 아시안게임의 경우 수익성 하락, 코로나19 문제 등으로 2018년 이후 열리지 않고 있어 대회가 존폐 위기에 몰린 상황이었다. 사막기후 국가인 사우디에서 예상치 못한 유치 신청에 놀라움을 자아냈다.
사우디는 e스포츠에도 영향력을 뻗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오는 7월 e스포츠 대회 '게이머즈8'을 개최한다. 게이머즈8은 '세계 최대 e스포츠-게이밍 축제'를 지향한다. 포트나이트, 철권7, 레인보우 식스 등 7개 종목에 걸린 총상금만 4500만 달러(약 576억 원)다. 규모가 큰 것으로 유명한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상금이 222만 달러(약 28억 원)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자본이 투자됐는지 가늠할 수 있다.
#스포츠 워싱 논란
사우디 자본의 스포츠계 투자가 종목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지만 마냥 환영받지는 못하고 있다.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부와 권력을 쥐고 있는 빈 살만은 왕세자 자리에 오른 이후 적극적인 '탈석유 정책'을 펼치고 있다. 1조 달러(약 1281조 원)를 투자해 서울의 40배 이상 크기의 신도시를 만든다는 '네옴시티' 건설 계획이 대표적이다. 관광산업도 적극 개발하고 있다. 스포츠계 투자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특히 '스포츠 워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중 친화적인 스포츠를 통해 자신들의 어두운 면을 덮으려 한다는 것이다. 사우디는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받는 국가일 뿐 아니라 빈 살만은 왕세자에 오르는 과정에서 납치·고문 등을 동반한 대규모 숙청 작업으로 비난을 받았다. LIV 골프가 창설 단계에서 반대의 목소리에 부딪힌 이유다. PIF가 뉴캐슬 구단을 인수하는 과정에서는 한 차례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앞서 또 다른 중동의 '거부'로 유명한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얀도 유사한 길을 걸었다. 아랍에미리트는 자국 내 인권 문제 등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으나 만수르가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 구단주 활동에 적극 나서며 유럽 내 기타 사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타르 왕족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유치도 큰 틀에서 비슷한 사례로 지목된다.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사우디 자본의 스포츠계 침투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 이전부터 중동 자본의 개입을 달가워하지 않은 이들도 많지만 사우디를 포함해 UAE, 카타르 자본 모두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각 종목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쓰고 있는 사우디의 거대 자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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