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당이 아닌 국민 앞에 직접 나서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치과의사, 시인, 전기기술자격증 다수 보유, 긴급조치위반 2년 투옥, 광주민주화운동유공자, DJ정부 최연소 과학기술부 장관,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
정치권의 다재다능 1인자로 꼽히는 4선 김영환 의원과의 인터뷰는 창세기 말씀에서부터 국민화병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현실 정치계를 넘나드는 롤러코스터 대화였다. 몰입해 듣다보면 어느새 ‘김영환교’의 교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그는 달변이었다. 감옥에 있으면서 아름다운 우리말을 익히기 위해 매일 국어사전을 읽었다는 김 의원은,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오는 것 같았다.
―시집을 10편이나 냈다. 대권도전의 심경을 시적으로 한번 표현해 달라.
▲우리나라 최초의 시인 대통령으로 하려고 했는데 표가 안 될 거 같아 시인 대통령으로 쓰지는 못하고. 지금 우리 경제에 태풍이 몰려오고 있는데 저녁이 있는 삶, 안 되지 않나. 지금 사람들은 아침이 없는데 어떻게 저녁이 있는 삶이 있느냐. 저녁이 있는 삶은 뭐 평생직장 가진 화이트칼라나 은행원 같은 사람들 얘기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화병에 걸려 있다. 입에 단내가 난다. 그것을 치료해야 하는데 정치인들은 겉멋만 부리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도 너무 한가한 얘기다. 듣기에 따라 화가 나는 일이다. 대체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다가 지금 와서 꿈 이야기인가. 병 주고 약 주고 하는가.
▲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내가 직접 만들었다. 이것 외에 ‘당신이 상상하는 나라, 김영환이 캐스팅합니다’ ‘대한민국에 당신의 이야기를 더합니다’ 등 총 3개를 만들었다. 멋있잖아?, 멋있어.
―참모들 필요 없겠다. 혼자 다 하니까.
▲현대 지식정보사회 지도자는 단기필마다. 남이 쓴 원고 읽고 그러면 안 된다. 이 나라 정치인 중에 나만 원고 없이 연설했다. 대선 출정식 때 한 40분 했는데 10시간이고 100시간이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세기의 지도자는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말로 하고 남이 써주는 게 필요 없다. 뉴 리더는 남의 정보 얘기를 듣고 그것을 에디팅(편집) 하는 것이다. 이건 내 얘기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 이야기다.
―여기 오면서 한 가지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김영환 하면 치과의사에 민주화운동 투옥 경력에 시인에 경력만 보면 누구와 견줘 봐도 뭐 하나 빼놓을 게 없는 출중한 대통령감이다. 하지만 독불장군은 없다. 자신이 그렇게 뛰어나다면 왜 김영환은 4선이 되도록 대권주자로서 부상하지 못했는가.
▲그건 나도 의문점이다. 하하. 첫째는 시대에 맞지가 않았다. 오래전부터 주변에서 계속 내게 ‘시는 그만 쓰고 좀 굵직굵직한 정치를 하라’고 조언했지만 나는 그 말을 안 들었다. 왜? 앞으로 상상력의 시대가 온다. 감동의 시대, 이야기의 시대, 브랜드의 시대, 창조의 시대가 온다. 창조의 핵심은 말이다. 말의 핵심은 시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1절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 논어에, 뭐라 그랬지?(옆 자리에 있던 이승철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이 ‘말이 곧 도이다’라며 도와준다) 말이 곧 도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지 정치에 네거티브 하고 다녔는데 나는 지난 10년 동안 말을 갈고 닦았다. 말이 곧 권력이다.
―또 다른 이유는.
▲나는 조직을 관리하고 세를 얻는 일에 충실하지 못했다. 밥 먹고 마당발하고 계보 만들고 해야 하는데 그런 걸 하지 못했다. 대신 내 인생의 스토리를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내 상황을 결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내가 열린우리당 창당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무려 6년 동안 원외생활 했다.
―열린우리당을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 적통을 이은 정치적 선택 때문에 뜨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렇다.
―하지만 지금 지지율로만 보면 문재인 후보가 월등히 앞서고 있기 때문에 친노가 국민적 선택을 받았고 그들이 틀리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경선 때 국민들에게 그 판단을 맡길 것이다. 문재인 고문에게도 묻고 싶다. 그때 민주당 분당이 옳았는가. 민주당을 개혁하는 것이 옳았는가. 노 대통령도 분당을 반대했다고 <운명>(노무현 자서전)에 쓰고 있다. 다른 의원들 때문에 했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현 야권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앞으로 내 지지율이 조금 높아지면 국회의원들 30명, 50명이 올 것이다. 의원 40명 가진 사람보다 내가 지지율 2배가 높다. 오늘 아침(7월 11일)까지.
―누구를 지칭하는가.
▲정세균 후보(지난 7월 11일 발표된 리얼미터 결과를 보면 그는 1.3% 지지율을 기록했고, 박준영 전남도지사(1%), 조경태 민주당 후보(0.8%), 정세균 민주당 후보(0.3%) 등이 그의 뒤를 이었다).
―지지율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
▲안철수 교수가 당 조직이 있어서 지지율이 높나.
―최근 보도자료를 낸 ‘DJ 모델’을 말하는 건가.
▲(무릎을 치며) 그렇지. 성 기자가 어제 보도자료 낸 것을 본 모양이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당 신파로서 지난 1968년 원내총무 경선에 나섰는데 구파인 유진산 당수가 반발하는 바람에 당선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 뒤 국민을 상대로 인지도를 높여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 후보와의 대결에서 95만표 차이로 낙선, 야권의 차기주자로 급부상한 바 있다. 김영환 의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권전략을 차용한다는 뜻으로 해석됨).
▲ 2009년 안산상록을 선거 사무소 개소식 때 모습. |
▲ 2003년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당시 모습. |
▲그렇다. 위에서 나가지 말라고 하는데 DJ가 원내총무에 나간다고 우겼다. 그때 유진산 당수가 DJ를 두고 ‘구상유취’(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뜻으로 정치 초년병을 이름)라고 했다. 유명한 말이다. 노무현이 대통령 나왔을 때 구상유취다. 왜냐. 노무현은 원내대표나 당대표 한 번도 못했다. 만약 대통령 안 되었으면 원내대표가 대통령 후보 되기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국민을 향해 얘기했고 국민들이 열광했다. 지금 경선에 나온 화려한 후보들을 보라. 국민들은 전부 화병 일으킨 ×들이라고 생각한다.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저×들이 전부 우리 화병 일으킨 ×들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 지지율이 막 올라가고 있다. 며칠 사이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모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혼자 깨끗하고 능력 있는 척하면 사람들이 위축이 돼서 잘 모이지 못하는 거 아니냐.
▲나야말로 맑은 물과 더러운 물을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나는 중국집 주방장 아버지에 소상공인 행상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정육집 딸 하고 결혼했다. 당시 부모님들이 모두 반대했다. 하지만 형제들은 웃긴다고 했다. ‘중국집 주방장 아들이 뭐 잘났다고 정육집을 문제 삼느냐’는 거다. 결국 마지막으로 반대했던 어머니도 돌아섰다. 80년대 초반 전기기술 노동자로 6년을 보냈다. 중뿔나게 치과의사 하면서 썩은 이빨 엄청나게 뽑았다. 강철 김영환, 문익환 계훈제 송영길 등은 다 내가 치료해줬다.
―문재인 고문이 경선에서 1위할 것이 유력하다. 어떻게 보나.
▲1등 가능성 높지만 대선승리는 어렵다. 선전은 하겠지만 이기기는 어렵다.
―이유는.
▲문 고문은 영남후보지만 충청권 전략이 없고 노무현 프레임 넘어설 만한 비전과 정책이 없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 만한 정치적 경력이 튼실하지가 못하다. 비서실장 2년 한 것 가지고 안 된다.
―문 고문의 대권 이벤트를 강하게 비판하던데.
▲문재인 고문은 서울구치소 3개월인가 4개월 있다가 군대 갔다. 나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20개월 옥살이 했다. 노동자 생활도 했다. 비교가 안 되는 걸 가지고 국민들이 그 내용을 잘 모른다. 문 고문이 서대문구치소 가서 뭐 출마연설 하는 거라면 나한테 전화한통 했어야지. 그걸 우리가 하는 말로 표현하면 (문 고문의 3~4개월 옥고는 김 의원의 20개월에 비해 턱없이 짧다며) ‘무기수가 세수하는 시간밖에 안 된다’고 한다(웃음). 무기수가 두 번 하품할 시간 겨우 옥살이 한 거 가지고 그런다.
―그렇게 따지면 신영복 선생의 20년에 비하면 김 의원의 20개월은 또 얼마 안 되는 것 아니냐.
▲우리끼리 웃자고 하는 얘기지, 하하하. 나와 내 어머니, 아내 모두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감옥에 갔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문 고문이 짧은 민주화 경력으로 서대문구치소에서 출마선언 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인다. 그리고 특전사 같은 데 가면 안 되지. 아무리 표가 급해도 그렇지 특전사는 국민들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있고. 광주가 어떻게 됐고 우리의 기억 속에 아직 살아있는데…. 그 사람들(특전사) 나쁘게 얘기하는 건 아니다. 그러고 왜 매일 옷을 바꿔 입어. 야구복 입었다가 유도복 입었다가…. 이렇게 이벤트로 하지 말고 정책으로 비전으로 하자, 이 말이다.
―81~86년 전기기술자 ‘뺀지쟁이’로 일했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이력을 보면 피눈물 나는 세월도 많이 겪었을 것 같다.
▲내가 제일 기분 나쁜 말이 ‘재주가 많으시네요’다. 다재다능하다는 거다. 다재다능하고 재주 많은데 누가 한 푼 보태 준 적 있느냐. 시를 쓰는 데 들인 시간이 2만 시간이다. 좋은 말을 찾기 위해 감옥 속에서 국어사전을 매일 읽었다. 노력 없이 되는 일이 어디 있느냐.
―대권출마라는 속세의 가장 권력적인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김 의원은 정치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다. 정치의 영역을 떠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건 어떤가.
▲나는 아주 집요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재기했다. 나는 시베리아에 세워놔도 살아 돌아올 사람이다. 중국집 주방장 아들이 여기까지 오기까지 아무도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다. 자강불식(스스로 쉬지 않고 줄곧 힘쓴다는 뜻)한 것이다. 못 배운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이 ‘쌀 뒤주에 쌀이 떨어지면 밥을 굶는다’는 거였다. ‘아무도 너에게 쌀을 가져다 줄 사람이 없다. 네 발로 나가서 쌀을 벌어 와야 한다’고 했다. 지난 날 가난과 투옥 제적 낙선 해고 이 고통의 숲에서 내가 살아나는 길이 자강불식이다. 일부 동료 의원들이 ‘김영환이는 저만 아는 사람’이라고 비판한다. 나는 그때 그런 말들에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너무 없었고 가난했으니까.
인터뷰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밖에선 밀린 스케줄에 발을 동동 구르는 보좌진과 몇 분이라도 면담을 하려고 줄을 선 측근들이 김영환의 긴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시상이 좀 떠오르나. 처음에 시적인 표현을 좀 해달라고 했는데, 자강불식이 마지막 말인가.
▲자강불식은 역사를 이룬 사람들이 갖는 삶의 자세다. 누구나 자기 발로 걸어야 한다. 김대중이나 노무현이나 역사를 바꾼 사람은 전부 그랬다. 그 사람들은 바로 국민들한테 갔기 때문에 자신들의 당을 만들었고 대통령이 되었다. 나도 그렇게 할 것이다. 예수도 어부 창녀 나병환자들 모아서 그리스도교 만들었다. 당시 로마 유학파 주류들은 전혀 없었다. 지금 유력한 대선후보들은 장관 지낸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돕고 있다. 하지만 모두 거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물이 끓기 시작할 것이다. 폭발적으로 안철수한테 있던 지지층이 다 나한테로 온다. 문재인한테 가 있던 거도 마찬가지다. 토론회에서 문재인이 나하고 해서 될 건가? 상상력의 크기, 창의력, 경험의 풍부함, 언어의 풍부함이 비교가 안 된다. 국민들이 다 알 것이다.
“가야 되겠다.” 그는 다른 일정 때문에 급히 일어섰다. 그가 말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걸 이때 처음 보았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김영환은…
본관 : 일선(一善) 김씨(金氏)
혈액형 : AB
취미 : 사진촬영
주량 : 소주 1병
존경하는 : 인물 백범 김구
감명깊게 읽은 책 : 성경
종교 : 천주교
병역사항 : 면제(투옥)
학력·경력 :
1973년 청주고등학교 졸
1977년 긴급조치위반관련 2년 투옥
1981∼1986년 전기공사 주임ㆍ신축현장소장
1986년 <시인><문학의 시대>로 문단 데뷔
1988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정책실 차장
1988년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학사(2003년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석사)
1989년 민족민주운동연구소 부소장
1992∼1998년 치과의원 개원
1995년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 홍보위원장
1995년 민주당 6·27선거대책위원회 부대변인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안산갑, 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
1996년 국민회의 정세분석실장
1998년 동 정세분석위원장
1998∼2001년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회장
1999년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 중앙회장
2000∼2004년 제16대 국회의원(안산갑, 새천년민주당)
2000년 새천년민주당 홍보위원장
2000년 동 대변인
2001∼2002년 과학기술부 장관
2003년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2004년 e―믿음치과 대표원장(현)
2005년 민주당 안산상록갑 지역위원회 위원장
2006년 북촌포럼 설립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후보(안산상록갑, 무소속)
2009년 제18대 국회의원(재보선 안산상록을, 민주당·민주통합당)
2010년 국회 지식경제위원장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경기 안산상록을, 민주통합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