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변동성 심하고 사용자 환경 불편…단점 해결해도 제도적 걸림돌에 막혀
비트코인은 실생활에서 화폐처럼 지불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암호화폐다. 이를 ‘지불형(Payment) 코인’이라고 일컫는다. 2009년 첫 채굴이 이뤄지고 약 14년이 지나는 동안 비트코인은 소규모 재화·서비스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 기업 그리고 나라가 선택하는 지불 수단 중 하나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트코인 결제 서비스가 좀처럼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김대성 하트비트 대표가 트위터에 공유한 카카오맵 지도에 따르면 비트코인 결제 서비스를 도입한 사업자는 20곳 정도로 대부분 자영업자다. 그중에는 프랜차이즈 가맹점들도 있으나 본사 차원이 아닌 가맹점주가 개별적으로 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비트코인으로 결제 서비스를 도입한 국내 대규모 기업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비트코인 결제 서비스를 도입한 자영업자들마저도 도입 목적을 매출 확대보다 호기심과 홍보에 뒀다. 서울 안암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데일리카페인 관계자는 “서비스를 도입한 지 5개월 정도 됐다. 호기심에 시작했고 매장 홍보 목적도 있다. 비트코인 결제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로 알려지면서 궁금해서 매장에 방문하는 고객도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고객은 손에 꼽을 정도다. 현재로서는 이 서비스로 매출을 늘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이 지불 수단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론적인 이유는 가격 변동성이다. 비트코인이 화폐의 대체재로 발돋움하려면 우선 가격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비롯한 대부분 암호화폐는 가격이 매우 날뛴다. 2021년 9000만 원까지 올랐던 비트코인은 현재 3000만 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매일 시세가 바뀌는 암호화폐를 지불 수단으로 사용하기는 힘들다.
속도도 문제다. 비트코인은 10분마다 거래를 검증해 블록에 기록한다. 즉 결제에 10분이 소요된다는 의미다. 결제하는 데 10분을 기다리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2018년 ‘라이트닝 네트워크’라 불리는 속도를 해결할 솔루션이 등장했다. 거래, 입출금 등 수수료도 줄어드는 효과를 봤다.
그러나 국내에는 라이트닝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거래소가 없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기술적인 이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거래소 시스템 환경에 맞게 호환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 인력, 비용이 필요하다. 또 라이트닝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사업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시스템 구축 대비 효용성이 너무 떨어진다. 다른 당면 과제들이 많은 상황이기에 라이트닝 네트워크 도입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보니 국내 이용자들은 국내 거래소에서 라이트닝 네트워크 지원 거래소와 지갑으로 비트코인을 옮겨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라이트닝 네트워크를 사용하지 않으면 높은 출금 수수료가 부담이다. 국내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출금할 때 최소 3만 원가량의 수수료가 필요하다. 4000원짜리 커피를 사려고 수수료 3만 원을 내야 하는 셈이다. 굳이 비트코인으로 결제해야겠다면 비트코인보다 출금 수수료가 저렴한 암호화폐를 라이트닝 네트워크 지원 거래소로 옮긴 뒤 해당 암호화폐를 비트코인으로 바꾼 후 지갑으로 전송하면 된다.
이 전송 과정을 거치면서 UI·UX(사용자 환경·경험)가 굉장히 낯설다는 점도 비트코인 결제 활성화를 늦추는 요소다. 비트코인뿐 아니라 암호화폐 시장에서 소비자 친화적인 애플리케이션(앱)을 찾기는 어렵다. 가상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타릭 문(Tarik Moon) 알파인 디파이(Alpine DeFi) 대표는 “UI·UX는 직관적이고,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며 사용자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기술적 효율성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이런 면에서 암호화폐는 여전히 전통 금융에 뒤처진다”고 주장했다.
국내 업체들은 이러한 비트코인 결제 시스템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다. 대표적인 기업이 휴대폰 결제 서비스 업체로 알려진 ‘다날’이다. 다날은 2019년 페이코인(PCI)을 이용한 암호화폐 결제 서비스를 도입한 바 있다. 페이코인은 소비자가 페이코인으로 결제하면 다날이 가맹점에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가격 변동성을 줄였다.
다날은 20년 넘게 국내에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해 온 내공을 바탕으로 온전히 결제에 집중한 UI·UX를 선보이면서 고객에게 편의성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또 거래소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암호화폐의 불편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일리지 포인트를 페이코인으로 전환할 수 있는 옵션을 도입하기도 했다. 가맹점은 약 15만 곳에 달했으며 기술적으로 수수료와 처리 속도 문제도 해결하면서 국내 가입자 수는 300만 명까지 늘었다.
그러나 다날은 4년 만에 국내에서 결제 서비스를 중단했다. 국내 5대 가상화폐 거래소 협의체 닥사(DAXA, 빗썸, 코인원, 업비트, 코빗, 고팍스)는 지난 4월 다날이 만든 암호화폐 페이코인 상장을 폐지했다. 다날이 서비스를 중단한 이유는 금융당국 규제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암호화폐로 사업을 하려면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해야 한다.
다날은 지난해 4월 가상자산사업 중 지갑 사업자로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페이코인의 사업 특성상 거래사업자로 변경 신고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은행 실명계좌 확보를 위해 시중은행들과 접촉했지만 테라·루나 대폭락과 FTX 파산 등 암호화폐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은행 실명계좌 확보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결국 지난 1월 사업자 변경 신고가 수리되지 못했고, 거래사업자 자격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처럼 암호화폐 결제 서비스의 단점들을 모두 해결하더라도 법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으로도 암호화폐 결제 서비스가 우리나라에서 대중화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암호화폐 결제 시스템이 안착하려면 결국 현금, 신용카드, 휴대폰 결제 등과 함께 지불 수단에 포함하는 게 먼저다. 사업자 신고를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하지 않아도 결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법을 유연하게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 국내 금융당국은 암호화폐를 향한 시선이 곱지는 않다. 결제 서비스뿐 아니라 암호화폐를 활용한 모든 서비스가 국내에서 활성화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라고 전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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