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54명 접촉 치밀한 준비 드러나…불우한 성장 과정 등 내적 분노가 사이코패스 성향 만나 폭발
#검찰,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 살인’으로 결론
기본적으로 경찰과 검찰은 모두 정유정의 범행을 ‘계획 살인’으로 보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와 정황도 다수 확인됐다. 검찰은 6월 20일부터 27일까지 정유정의 동선과 범행 대상 물색 방법, 범행 준비와 실행 과정 등을 수사한 결과 이번 범행이 단독으로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적 살인이라는 결론을 냈다.
수사기관은 정유정이 ‘살인 방법’ ‘사체 유기’ 등 인터넷에 살인 관련 단어를 검색한 기록을 확보했다. 특히 범행 대상을 찾는 과정도 계획적으로 진행됐다. 검찰 수사 결과 정유정은 범행이 용이한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과외 앱을 통해 무려 54명의 과외 강사와 대화를 시도했다. 정유정이 정한 기준은 ‘강사 자신의 집에서 과외 수업이 가능한, 혼자 거주하는 여성’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정유정에게 살해당한 피해자가 이런 조건에 부합해 범행 대상으로 선택됐다”고 설명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정유정이 영화 ‘화차’를 반복 시청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부분도 눈길을 끈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범행 동기가 피해자 신분 탈취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검찰에 따르면 정유정이 신분 탈취를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증거는 드러나지 않았다. 피해자 선정 기준이 탈취하려는 ‘신분’이 아닌 본인이 세운 조건에 부합하는 ‘범행이 용이한 대상’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살해한 직후 피해자 옷장에서 피해자 옷을 꺼내 입은 이유 역시 신분 탈취보다는 자신의 옷에 튄 혈흔 때문으로 보인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피해자 사체를 훼손하고 유기한 것 역시 검찰은 사체의 신원 확인을 어렵게 만들어 피해자가 실종 처리돼 자신의 범행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함으로 봤다. 이 부분 역시 ‘계획 살인’의 뚜렷한 정황이다.
#살인 동기만 놓고 보면 ‘묻지마 살인’
‘신분 탈취’가 아니라면 진짜 살인 동기는 무엇일까. 이 부분에서 사건이 다소 복잡해진다. 살인과 사체 훼손 및 유기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범행 과정을 놓고 보면 ‘계획 살인’인데 살인 동기를 보면 ‘묻지마 살인’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정유정의 집 압수수색 과정에서 책상에서 발견한 공책에 쓰여 있는 메모가 살인 동기 파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죽이면 분이 안 풀린다’는 메모인데, 정유정의 자필로 쓰인 것은 확인됐지만 작성 시점은 불투명하다. 정유정이 이와 관련된 진술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는데, 따라서 살인을 앞둔 최근 시점에 쓰인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분노 표출’이 살인 동기였을 것이라는 짐작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떤 불만일까. 검찰은 불우한 성장 과정과 가족 불화, 대학 진학 및 취업 실패 등 정유정이 놓였던 상황을 종합해 정유정이 소위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어린 시절부터 쌓인 분노가 ‘묻지마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정유정은 한 살 때 어머니가 자신의 곁을 떠나면서 모친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여섯 살 때 아버지도 떠나면서 조부의 손에서 자랐다. 정유정은 검찰 조사에서도 ‘여섯 살 때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자란 게 너무 억울하고 힘들고 괴로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부와 함께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며 지내온 정유정에게는 경제적 어려움도 뒤따랐다.
게다가 정유정은 대학 진학에 실패했으며 구직 활동을 이어갔지만 취업에도 실패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정유정은 학창 시절 말이 없고 조용한 아이로 친구도 많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정유정은 성인이 된 뒤에도 대학 진학과 취업에 연이어 실패하며 더욱 고립돼 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정유정의 범행은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보기에는 허점도 많다. 살인과 사체유기 등을 위해 피해자의 집을 거듭해서 드나드는 과정에서 다수의 CCTV에 노출됐으며 훼손한 사체 일부를 여행용 가방(캐리어)에 담아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이런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택시기사의 신고로 바로 범행 일체가 드러났다.
검찰은 정유정이 허점을 보인 이유는 사회적 고립 때문이라고 봤다. 검찰 관계자는 “정유정은 운전면허와 자동차가 없어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사회 경험이 적어 곳곳에 설치된 CCTV에 노출될 가능성도 알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사이코패스 성향이 범행 실행에 영향 미쳐
물론 어려운 가정환경과 경제적 고통, 대학 진학과 취업 실패 등으로 분노가 쌓였다고 누구나 ‘묻지마 살인’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정유정에게는 또 다른 무엇이 있었을까.
검찰은 어린 시절부터 쌓인 분노가 정유정의 사이코패스 성향과 결합해 끔찍한 범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사이코패스 지수가 28점이 나왔던 정유정은 대검찰청(대검) 심리분석관이 분석한 사이코패스 지수가 26.3으로 나왔다.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 결과를 두고 한국은 통상 25점 이상, 미국은 30점 이상일 때 사이코패스로 간주하는데 일반인은 보통 15점 안팎의 점수가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대검 심리분석실의 통합 심리분석 결과 정유정은 억눌린 내적 분노의 표출 대상이 필요했고, 그런 행동을 저지르는 데에 거리낌 없는 성격적 특성(사이코패스 성향)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항간에서 정유정이 자폐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분석도 제기됐지만 검찰은 자폐 가능성은 적다고 봤다. 대검 심리분석 결과가 ‘사이코패스적 성향, 주의력 부족 등은 있으나 정신증이나 자폐스펙트럼 장애의 가능성은 적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정유정의 첫 재판은 7월 14일에 열린다.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태업)는 7월 14일 살인 및 사체손괴, 사체유기 등 혐의로 기소된 정유정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연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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