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외식업 대박, ‘푸틴 친분’ 군대 급식 수주 ‘떼돈’…바그너 설립 후 군 수뇌부와 갈등 우크라전으로 격화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결국 운동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했던 그는 학교를 졸업한 후 불량스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절도와 강도 행위를 일삼는 거리의 깡패가 됐다. 1979년, 18세 때 절도 혐의로 체포된 후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는가 하면, 이듬해에 다시 무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부잣집에 침입하거나 거리에서 절도 행위를 벌이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한번은 어두운 거리를 홀로 걷고 있는 여성에게 다가가 목을 졸라 기절시킨 후 금품을 갈취해 도망가기도 했다. 결국 체포된 프리고진은 법원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고, 교도소에서 9년간 복역한 후 1990년 석방됐다. 당시 나이는 29세였다.
출소 후 비교적 얌전하게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던 그는 부모님과 함께 핫도그 노점상을 시작했다. 아파트 부엌에서 직접 겨자 소스를 만드는 등 열심히 장사를 한 덕분에 곧 돈방석에도 앉게 됐다. 당시 ‘고로드812’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어머니가 돈을 세는 속도보다 돈이 쌓이는 속도가 더 빨랐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프리고진의 야망은 패스트푸드보다 더 높았다. 1990년대에 그를 알고 지냈던 한 사업가는 “그는 항상 더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친분을 맺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데 능숙했다”라고 회상했다. 마침 시기도 잘 맞아 떨어졌다. 구소련 붕괴 후 당시 러시아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관여하기에 안성맞춤인 분위기였다.
학창 시절 친구인 보리스 스펙터가 창업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최초의 슈퍼마켓 체인인 ‘콘트라스트’의 지분 15%를 사들인 그는 이 회사의 관리자 역할도 겸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최초의 카지노를 세운 ‘스펙트럼 CJSC’의 CEO로 영입돼 수완을 발휘했다. 그리고 이 무렵 카지노 및 도박 감독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던 푸틴을 처음 만났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5년에는 직접 레스토랑 사업에 뛰어들었다. ‘콘트라스트’의 이사인 키릴 지미노프를 설득해 세련된 고급 식당에 초점을 맞춘 첫 번째 식당인 ‘올드 커스텀 하우스’를 열었다. 마케팅은 성공적이었다. 곧 내로라하는 팝스타들과 사업가들이 즐겨 찾기 시작했고, 때때로 푸틴을 비롯한 정계 인물들도 방문했다.
자신감을 얻은 프리고진은 1997년, 두 번째 식당인 ‘뉴아일랜드’를 선보였다. 프랑스 음식을 파는 이 식당 역시 곧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엘리트들이 전부 모이는 도시에서 가장 핫한 식당이 됐다. 단골 손님들 가운데는 푸틴도 있었고, 이를 통해 프리고진은 러시아 엘리트들과 더욱 가깝게 지내게 됐다. ‘푸틴의 요리사’라고 불리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푸틴이 대통령이 되면서 ‘뉴아일랜드’는 전세계 고위급 관리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됐다. 외국 정상이 방문할 때마다 종종 푸틴은 이곳에서 식사를 대접했고, 이 가운데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있었다. 2003년에는 푸틴의 생일 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이렇게 푸틴과 더욱 가까워진 프리고진은 ‘콩코드 케이터링’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영향력을 한층 더 확대해 나갔다. 푸틴의 도움으로 수많은 정부 계약을 따냈으며, 이를 통해 급속도로 부를 쌓기 시작했다. 크렘린궁을 비롯한 정부가 주관하는 호화로운 연회와 행사에 음식을 공급했고, 러시아 곳곳의 학교와 군부대에도 급식을 납품했다. 가장 규모가 컸던 계약은 연 12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 상당의 군대 급식 계약이었다.
그러나 군대 급식에 만족하지 못했던 프리고진은 급기야 2014년, 푸틴과의 든든한 친분을 바탕으로 민간용병기업인 ‘바그너그룹’을 설립했다. 목적은 당시 벌어졌던 돈바스 전쟁에서 러시아군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프리고진은 국방부에 훈련기지로 사용할 수 있는 땅을 요구했다. 국방부 관리들은 이런 프리고진의 거만한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프리고진은 “이 명령은 ‘파파’에게서 내려왔다”라고 말하면서 푸틴과의 친밀감을 강조했다. 결국 국방부는 프리고진에게 러시아 남부 몰키노에 있는 땅을 제공했으며, 프리고진은 이곳을 어린이 캠프로 위장해 훈련 기지로 삼았다.
이후 바그너그룹 소속의 용병들은 크림 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동부 전투에 참전했으며, 이밖에 시리아, 수단, 말리 등 곳곳에서 벌어진 내전에도 투입됐다. 이곳에서 용병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활동했으며, 곳곳에서 벌인 이들의 잔인한 행각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가령 바그너그룹의 용병들이 시리아 포로를 참수하고 토막내는 영상은 한동안 논란이 됐다. 또한 러시아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 세 명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살해된 배후에도 바그너그룹 소속 용병들이 있는 것으로 의심 받고 있다.
용병들의 출신 배경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당장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작전에 투입될 병사들이 부족하자 프리고진은 교도소에 수감 중인 죄수들을 대상으로 모병 활동을 벌였다. 대부분은 살인범과 성폭행범이었으며, 이들에게 프리고진은 “아마 여러분들은 전선에서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6개월 동안 생존한다면 완전히 사면을 받고 풀려날 것이고 후한 보상금도 지불될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이렇게 모집된 용병들의 수는 3만 8000명 이상에 달했다.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 전쟁 최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기 시작하자 몇몇 국방부 관리들의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프리고진의 부대가 전쟁 내내 중심 역할을 맡게 되면서 점차 둘 사이에는 긴장감이 고조되어 갔으며, 급기야 ‘푸틴의 2인자’로 불리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 사이에 충돌이 잦아지면서 결국 반란이 일어나는 계기가 됐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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