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효과? 젊은 여성들에게 페스티벌로 자리잡아…“다음번엔 못 오겠다” 번잡함에 ‘고인물’들 ‘절레절레’
최근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주류&와인박람회(주류박람회)를 방문한 한 위스키 마니아 임 아무개 씨 말이다. 서울에서 열리는 주류박람회는 한 해 가장 큰 주류 관련 행사로 알려져 있다. 임 씨는 평소 위스키뿐 아니라 전통주, 맥주 등도 즐겨 주류박람회를 몇 년 동안 방문해 왔다. 임 씨는 “올해 특히 방문객 성비와 연령대에서 큰 변화가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6월 23일 기자가 방문한 주류박람회에는 방문객의 절반 이상이 20대 여성이었다.
주류박람회는 위스키, 와인, 진, 맥주, 사케 등 해외 술과 전통주, 막걸리 등 국내 술이 어우러져 전시하는 행사다. 이 행사에는 국내 지역 곳곳에 있는 다양한 소규모 양조장도 대거 참여해 눈길을 끌어왔다. 과거 주류박람회는 다양한 주류를 즐기는 소위 고인물(마니아)들이 뭐 새로운 게 없나 찾기 위해 방문하는 행사였다.
옥 아무개 씨는 맥주, 와인을 좋아해 주류박람회를 찾는다고 밝혔다. 옥 씨는 “매년 주류박람회에 방문해 맥주와 와인에 중점을 둔다. 거기엔 희귀하고 구하기 힘든 맥주들이 많아서, 많이 사놓고 1년 내내 좋은 안주들과 아끼면서 마신다”면서 “연차를 내고 주말이 아닌 평일에 방문해 주변 지인과 함께 가서 새로운 걸 마시고, 즐기고, 쇼핑하고, 하루 날 잡고 마셔보는 일종의 축제 같은 날”이라고 말했다.
김 아무개 씨도 약 10년 동안 주류박람회를 찾아온 주류 마니아다. 김 씨는 “과거 주류박람회 이미지는 나를 포함해 ‘배 나온 아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화려하게 꾸민 20대 여성이 많아지면서 뭔가 잘못 온 거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갑자기 이렇게 변한 계기가 궁금했다”면서 “이런 변화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한국이 워낙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사회라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다만 내년에는 참가할지 고민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여성 참여가 대폭 늘어나고 연령층이 낮아진 건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서 주류박람회가 여러 차례 언급되며 화제가 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SNS 등에서 ‘주류박람회 즐기는 꿀팁’ 등 글이 1만 건 가까이 공유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SNS에는 ‘맛있는 술이 진짜 많다. 막걸리도 싫어했는데 맛있는 거 찾아서 행복해진다’, ‘시음을 통해 무료로 술을 잔뜩 마실 수 있다’ 등의 후기가 공유됐다. 또한 주류박람회에서 구매한 상품을 인증하는 사진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주류박람회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일종의 페스티벌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만난 20대 여성 A 씨의 방문 이유도 높은 연령층 방문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다양한 술을 마셔볼 수 있어 좋다. 친구와 함께 찾았다”면서 “캐리어를 들고 와서 이것저것 사 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A 씨 친구 B 씨도 “한 자리에서 다양한 전통주나 술을 마셔볼 기회가 이곳 말고는 없다”면서 “내년에도 꼭 다시 방문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기존 방문하던 고인물들은 연령층이 낮아지면서 분위기가 바뀐 것을 못마땅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C 씨는 “주류박람회 시음은 만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다. 얼굴이 불콰해져서 비틀거리는 사람이 많았고, 화장실 앞에 토해 놓은 경우는 올해 처음 본 것 같다”고 비판했다. 오랜 기간 주류박람회에 참가해 왔다는 D 씨도 ‘특정 집단이나 세대를 욕하는 게 올바른 행동은 아니지만, 내년에 젊은 층에서 캐리어, 트레이 끌고 온 분들이 더 많아진다고 생각하면 이젠 더 이상 주류박람회를 가기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어쨌든 확 낮아진 연령층이 대거 합류하면서 주류박람회 인기는 수직 상승했다. 올해는 티켓 현장 판매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사전 예매로 모든 표를 판매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많은 표를 판매하면서 번잡함이 선을 넘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주류박람회는 주말이 아닌 평일에도 오픈 전부터 대기 인원이 긴 줄을 이룰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내부는 사람이 너무 많아 소위 ‘어깨빵’이 매 순간 일어날 정도였다. 사람끼리 서로 치고 지나가면서 짜증을 내거나 사람에 밀려 부스 위에 있는 기물을 넘어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 고인물 쪽에서는 내년에는 참가 의사를 재고해 보겠다는 의견도 꽤 있었다.
E 씨는 “행사 질은 올라갔는데 사람들 하는 짓이 시장 바닥이었다. 지난번 참여했을 때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다음 참가 의사는 솔직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바이어 자격으로 참가한 이 아무개 씨도 혹평을 쏟아냈다. 이 씨는 “요약해 보자면 박람회 중 제일 X판이었다. 예전엔 여유롭게 구경도 하고 시음도 했는데 이번에는 도떼기시장이란 느낌을 받았다. 제대로 구경도 못 하고 공간을 빠져나가기에 바빴다”면서 “부스는 다닥다닥 붙어 있어 여유도 없고, 조금이라도 공짜 술 마시려고 우르르 몰려가서 술 마시기 바쁜 너무 격 떨어지는 광경이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 씨는 “처음 혹은 2, 3회차 방문인 사람들은 재밌고 맘껏 시음할 수 있어 참가했을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주축인 바이어 쪽에서 보자면 마이너스를 주고 싶은 시간이었다”면서 “참가를 하지 말라고 해도 또 해야 하는 입장이라 주최 측이 이번 기회로 정리 정돈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앞서의 옥 씨도 “첫날은 비즈니스 데이었는데 올해는 첫날조차 초대권을 뿌려 일반인도 갈 수 있었다. 이러면 아무래도 바이어나 업체에는 마이너스가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봐왔던 단골 업체들도 올해에는 안 보이더라”라고 지적했다.
엄청나게 몰린 인파, 눈에 띄게 젊어진 연령층은 결국 지금 트렌드를 반영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앞서 김 씨는 “몇 년 전 와인과 수입 맥주나 크래프트 맥주 붐, 최근까지 위스키 붐과 전통주 바람이 크게 일고 있다. 이번 주류박람회는 그 결과로 보인다. 술을 맛으로 즐기는 인구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이들이 다시 소주를 마신다고 상상하긴 어렵다. 앞으로 주류박람회 방문객이 줄어들 순 있어도 이런 흐름이 다시 변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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