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삼아, 기념일 선물, 직장 회식 이벤트로…저녁 시간 2030 구매자 늘자 판매처는 연장영업
중국 베이징 한 쇼핑몰 지하 1층에 위치한 복권 판매처. ‘명당’으로 소문난 이곳엔 저녁만 되면 복권을 사려는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런데 대부분 20대 젊은층이라는 특색이 있다.
1995년생인 샤오진도 6월 27일 남자친구를 데리고 이곳을 찾았다. 데이트할 때 자주 들르는 코스였다. 샤오진과 남자친구는 20위안(3600원)짜리 2장, 10위안(1800원)짜리 2장, 총 4장의 즉석복권을 샀다. 운이 좋게도 남자친구는 20위안의 당첨금을 수령했다.
샤오진 커플이 머무는 10분 동안 젊은이들의 대기행렬은 계속됐다. 모두 즉석복권을 샀다. 한 대학생은 500위안(9만 원)어치를 한 번에 샀다고 자랑삼아 얘기했다. 이는 베이징의 복권 판매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최근 들어 복권 구입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일상’이 됐다.
항저우에서 10년 넘게 복권을 팔아온 한 점주는 “올해부터 즉석복권을 사러 오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었다. 우리 가게의 단골은 대부분 1990년대생이다. 젊은이들은 당첨 시 바로 현금을 주는 스크래치형 복권을 산다. 나이 든 손님들은 주로 경품형을 선호한다”고 귀띔했다.
마침 가게로 한 여학생이 들어왔다. 그는 익숙한 듯 점주에게 인사를 하고 즉석복권 3장을 구입했다. 그는 “복권을 사는 데 매일 50위안(9000원)을 쓴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선 매일 매장에 들러 복권을 산다. 커피 마실 돈으로 복권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여학생의 한 달 평균 복권 구매액은 1500위안(27만 원)가량이다. 한 달에 500위안(9만 원) 정도를 당첨금으로 수령하는 것을 감안하면, 대략 1000위안(18만 원)을 복권 구입에 지출하는 셈이다. 이 여학생이 한 번에 가장 많이 수령한 당첨금은 300위안(5만 4000원)이라고 했다.
점주에 따르면 하루 중 손님이 가장 많이 몰리는 때는 저녁 시간이다. 젊은이들이 직장 또는 학교를 마치고 찾기 때문이다. 밤늦게 복권을 사러 오는 손님들도 많아 영업시간을 늘렸다. 밤 12시까지 가게는 붐빈다. 가게 주변에서 복권을 긁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올해 이 가게의 한 달 평균 즉석복권 매출액은 6만 위안(1080만 원)가량이다. 2022년 3만 위안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점주는 “젊은이들의 복권 열정이 판매를 이끌었다”면서 웃었다.
중국 재정부가 발표한 데이터에도 비슷한 추이가 나타났다.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총 1752억 위안(31조 5000억 원)가량의 복권이 팔렸다. 이는 2022년 같은 기간에 비해 49.3% 증가한 수치다. 이 중 즉석복권 판매액은 304억 2600만 위안(5조 5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4% 늘어났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복권이 ‘선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생일·결혼기념일 등 이벤트 때 복권을 사서 선물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소셜미디어에는 ‘복권 꽃다발’ ‘복권 과자’ 등의 인증샷도 자주 올라온다.
30대 여성 샤오제는 얼마 전 남편의 생일에 복권으로 만든 꽃다발을 선물했다. 샤오제는 “남편이 너무나 만족했다. 또 재미있었다. 꽃다발에서 복권을 꺼내 남편과 딸이 동전으로 긁었다. 80위안(1만 4000원)이 당첨됐는데, 사업을 하는 남편이 좋은 징조라고 여기며 선물에 대해 칭찬해줬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복권 판매점을 운영하는 한 대표는 생일선물로 복권을 주는 게 트렌드라고 전했다. 그는 “단순히 복권을 주는 게 아니라 의미를 부여한다. 나이에 맞춰 복권을 선물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25번째 생일에 25장의 복권을 선물하는 식”이라며 “그냥 복권을 주는 게 아니고, 꽃다발처럼 만들어서 준다”고 설명했다.
복권은 선물뿐 아니라 젊은이들의 회식·야유회 등에서도 등장한다. 항저우에 거주하는 한 20대 여성은 최근 친구들과 만나면 ‘복권 내기’를 한다고 했다. 개인이 가지고 온 즉석복권을 현장에서 긁은 후, 당첨된 사람은 그날 식사자리 회비를 내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복권을 활용한 여러 게임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젊은이들이 복권을 사는 이유는 재미, 스트레스 해소, 오락, 수익 등 다양하다. 앞서의 20대 여성은 “누가 대박을 바라지 않겠는가. 혹시나 당첨이 될까 하는 마음이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당첨이 안 된다고 해서 크게 슬프거나 화나진 않는다. 복권을 사서 긁는 게 재미있다. 적은 돈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게 지나치면 화가 되는 법이다. 전문가들은 복권 구매에 너무 빠져들 경우 막대한 비용 지출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항저우에서 복권 판매를 하고 있는 또 다른 점주는 “이성적으로 복권을 사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생각을 하지 말라’고 충고하곤 한다”고 말했다.
실제 당국은 합리적 복권 구매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현재 복권 판매처에선 1만 위안(180만 원) 이상의 복권을 사는 손님들이 ‘합리적인 복권 구매 서약서’를 써야 하지만 실효성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상하이 사범대학 경영대학원에서 오랫동안 복권을 연구해온 이강 교수는 “젊은이들의 즉석복권 구매 현상은 눈여겨볼 일이다. 복권은 오락으로 삼되, 이를 통해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강 교수는 “자신의 한 달 수입 중 복권 구입으론 1% 정도 지출이 적당하다”고 덧붙였다.
이강 교수는 “복권은 당첨되지 않으면 그만이다. 본전을 채우려고 하거나 많은 돈을 벌 생각을 해선 안 된다. 이렇게 되면 복권은 도박이 된다.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또 복권보다 더 재미있는 오락도 많다”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1000만 위안(18억 원)을 버는 것과 1000만 위안에 당첨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어렵겠습니까.”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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