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 사업 재원 확보 목적이라지만…그룹 내 블록딜 1년 새 두 번 진행 등으로 신뢰도 ‘악영향’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 21일 자회사 두산밥캣의 지분 5%(500만 주)를 블록딜(시간 외 매매) 방식으로 처분한다고 밝혔다. 주당 5만 5200원으로 총 매각금액은 2995억 원이다. 매각 목적은 신성장 사업 투자를 위한 재원 마련이다.
두산밥캣은 두산그룹 매출의 55%를 차지한다. 해마다 실적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연결기준 연간 매출액 8조 6219억 원, 영업이익 1조 716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 48%, 80%씩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대 실적이다. 올해도 연결기준 1분기 매출액은 2조 4051억 원, 영업이익은 3697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6.6%, 90.2%씩 증가했다. 당기순이익도 전년 대비 2배 이상인 2075억 원을 기록했다.
두산밥캣 주가는 우상향했다. 올해 국내 주식 시장 첫 영업일이었던 지난 1월 2일 두산밥캣의 종가는 3만 3150원이었으나 지난 14일 고가 기준 6만 32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블록딜 발표 당일 주가는 약 8% 급락했다. 현재 5만 원 중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주주들은 블록딜이 기업 주가의 상승을 방해했다고 주장한다. 블록딜은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먼저 유통 주식 수가 늘어난다. 대주주 보유 지분이나 자사주 등은 보통 유통 주식 수에서 제외된다. 시장에 쉽게 나오지 않는 물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블록딜로 유통 물량이 늘어나기에 가격은 내려간다. 투자심리에도 부정적이다. 대주주의 주식 매각은 주주들을 불안하게 한다. 회사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걱정하는 심리가 매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산그룹 내 블록딜이 1년 사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는 점이다. 두산그룹 계열사 두산에너빌리티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원전 수혜주 중 하나로 꼽혔다. 비슷한 시기에 채권단 관리에서도 벗어난 데다 해상풍력·수소터빈·소형모듈원전(SMR) 등 신사업 비중을 60% 안팎까지 끌어 올려 재도약에 나선다는 계획까지 밝히면서 주가가 올랐다. 지난해 8월 26일에는 2만 3050원을 터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5일 뒤 블록딜이 진행됐다. (주)두산은 지난해 8월 31일 지분 35.0% 가운데 약 4.5%인 2854만 주를 블록딜했다. 종가 기준 처분 금액은 6193억 1800만 원이다. 이후 주가는 폭락을 거듭해 2개월 만에 1만 295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룹 내에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추가 블록딜도 우려된다. 그룹 내 상장사가 6곳이나 있고, 여전히 지분들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주)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30.39%, 오리콤 지분 60.89%를 보유 중이다. (주)두산의 자회사 두산로보틱스가 상장하면 보유 지분 90.91% 중 일부를 매도할 가능성도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도 두산밥캣 지분 51.05%, 두산퓨얼셀 30.33%를 보유 중이다. 두산테스나 지분은 두산인베스트먼트가 30.62% 보유 중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입장에서는 신성장 사업 확장을 위해 재원 확보가 필요했을 터다. 2020년 2조 3368억 원 수준이던 두산에너빌리티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지난해 1조 3958억 원까지 줄었다. 최근 치솟는 금리로 외부 차입금 마련도 쉽지 않다. (주)두산 관계자는 “블록딜로 마련한 재원은 차입금 상환 및 재무구조 개선, 신성장 동력 투자 등에 사용되고 있다”며 “공시에서 언급한 것처럼 당사는 본건 매각 이외에 추가적인 주식 매각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계열사 임원진이 주식을 매도하고 있다는 점도 주주들이 지적하는 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진종욱 두산에너빌리티 상무와 박홍욱 부사장이 장내 매도를 통해 이익을 실현했다. 정태진·홍성명 상무가 지난해 우리사주조합 참여로 받은 주식을 처분했다. 올해 들어서는 이상언 상무가 처음으로 자기 주식을 전량 장내 매도했다. 강석주 전무, 서승산·송치욱·이한희·임광재 상무 등도 우리사주조합 참여로 받은 주식을 전량 혹은 부분 매도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임원진이 매도한 주식 수는 총 8만 81주로 약 14억 2151만 원을 거둬들였다. 두산에너빌리티가 2018~2022년 진행한 세 차례 유상증자에서 우리사주조합이 받은 주식 수는 4652만 주다. 현재 총 주식 수에서 7% 정도 비중을 차지한다.
회사 측은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인다. 임원진이 매도한 주식 대부분이 최근 5년 사이 진행한 유상증자 때 회사의 미래를 믿고 개인 자금으로 취득한 우리사주기 때문이다. 대표나 이사진이 아닌 임원진의 주식 매도는 개인 사정에 의한 것이며 전체 주식 수에 비하면 극히 일부이기에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시를 통해 올라오는 임원진의 매도 행렬이 잦아질수록 투자자들의 심리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임원진의 매도 행렬이 주주들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회사에 투자한 사람들을 모두 동업자로 여기고 함께 주식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기업과 내부자들이 소액주주들과 이익을 향유하지 않는 행태가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다”며 “동업자 정신이 부족한 것이고, 이 때문에 주주 가치는 계속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나서서 이를 혁파해야 한다”며 “문제가 생기면 그제야 사후약처방 방식으로 대처하다 보니 상황이 바뀌지 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일반 소액 투자자들만 어려워지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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