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허승범 회장 횡령·배임 혐의 수사 중…삼일제약 “오너 개인사 알기 어려워…베트남 건은 원만히 마무리”
#횡령·배임 혐의로 지난해부터 수사 대상
허승범 삼일제약 회장이 횡령 및 배임 건으로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회사 돈을 횡령해 고가의 미술품을 구입하고 주택을 임차했다는 혐의다. 경찰은 지난해 4월 첩보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한 후 내사를 거쳐 올해 허 회장을 비롯한 총무팀 직원들을 차례로 소환해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삼일제약 측은 “혐의는 미술품 구매나 주택 임차 건이 아니라 다른 부분”이라고 답했다.
허승범 회장은 허강 전 삼일제약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삼일제약 3세 경영인이다. 2005년 삼일제약 마케팅부에 입사해 기획조정실장, 경영지원본부장 등을 거친 후 2014년 사장, 2018년 부회장, 2022년 3월 회장으로 승진했다. 올해 1분기 삼일제약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허 회장이 보유한 삼일제약 지분율은 11.12%로 동생인 허준범 상무를 포함한 특수관계인 9명의 지분까지 합치면 총 37.25%로 삼일제약을 지배하고 있다. 이들을 제외하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없다.
삼일제약은 허승범 회장이 부사장으로 부임한 2013년에도 리베이트 이슈로 곤욕을 치른 적 있다. 의사들에게 총 23억 원 상당의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삼일제약 영업본부장 등 3명이 기소되고 의료인 1132명이 연루되는 등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회사의 펀더멘털이 견조해도 오너 리스크를 겪으면 주가가 빠져 시총이 줄어들 여지가 있다. 상상인인더스트리만 봐도 실적이 괜찮았지만 대표가 법정 들락날락하면서 주가가 반토막 난 전적이 있다”고 말했다.
삼일제약 내부 분위기도 어수선하다. 삼일제약의 블라인드 게시판에는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고위 임원진은 고액 인센티브를 받고 영업 및 생산직원들에게는 인센티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영업 사원들의 영업 일비는 늘려주지 않으면서 전년 대비 거의 1.5배의 말도 안 되는 매출을 강요하고 있어 영업사원들이 줄퇴사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삼일제약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허 회장이 상장사를 개인 회사처럼 휘두르고 있다”며 “오너 일가의 도덕적 해이가 회사에 리스크가 될 수 있어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공장, 건설 대금 지급 두고 잡음일기도
삼일제약은 국내 대표 안과 전문 제약사로 안구건조증, 녹내장, 결막염 치료제 등 총 29종의 국내 최대 규모의 점안제 제품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점안제 라인을 제외하고도 부루펜, 포리부틴, 액티피드 등으로도 잘 알려진 기업이다. 2022년에는 연결기준 매출액 1796억 원, 영업이익 48억 원을 달성해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지난해 매출액 증가율 상위 제약사 5곳 중 한 곳으로 꼽히기도 했다.
올해 역시 호재가 이어졌다. 올해 초 안구건조증 치료용 점안액인 ‘레바케이’(레바미피드)를 출시했고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황반변성 치료제 ‘아멜리부’(라니비주맙)의 국내 판매도 시작했다. 올해 6월에 국내사업 철수가 결정된 한국 산도스 제품들의 허가권과 영업권을 삼일제약이 넘겨받게 되면서 7월 1일부터 유통이 이뤄질 전망이다. 중추신경계(CNS) 분야 사업 확장과 함께 사상 처음으로 연 매출 2000억 원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SK증권 허선재 연구원도 올해 3월에 낸 보고서에서 삼일제약의 올해 예상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전년 대비 각각 19.9%와 84.3% 증가한 2155억 원과 89억 원으로 전망했다.
예정대로라면 내년부터 베트남에 건설한 위탁개발생산(CDMO) 공장이 가동된다. 해당 공장에서는 연간 3억 3000개의 점안제를 생산할 수 있다. 베트남 공장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는 허승범 회장의 강한 의지가 뒷받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기준으로 생산 품목이 정해지진 않았다. 국내 대형 제약사의 점안제 판매 물량과 글로벌 파트너사의 국내·아시아 판매 물량 흡수를 통해 최소 15% 이상의 가동률(약 400억 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재무 부담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사 기간이 늘어난 탓에 베트남 공장 건설에 투입된 자금만 약 137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일제약은 베트남 공장의 투자과정에서 유상증자, 외화차입, 메자닌 발행 등 각종 형태로 자금을 조달했다. 앞서의 허선재 연구원도 보고서에서 발행주식수의 40% 이상인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가 부담 요인이라고 꼽기도 했다. 올해 5월에 발행한 120억 원 규모의 21회차 CB 역시 베트남 공장 시설투자 및 기발행한 CB, BW 풋옵션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일제약의 미상환 사채는 656억 원 수준으로 내년 7월에 만기될 예정인 16회차 CB는 117억 8000만 원이 미상환 상태다. 이외에도 은행에서 빌린 665억 원의 단기차입금, 402억 원의 장기차입금이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삼일제약 별도기준 현금성자산은 29억 1600만 원 수준으로 3억 8000만 원 수준이던 지난해 말에 비해 늘었지만 여전히 현금 유동성이 풍부하지 못하다.
이런 가운데 베트남 공장의 공사대금도 예정된 기간 내에 정산하지 못하는 바람에 대금 지급 기한을 재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SGC이테크건설, 성화전기, 보성 등 현지 공장 건설에 참여한 건설사들이 전체 공사대금 중 약 100억 원 정도를 지급받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베트남 공장 건설에 참여한 건설사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에 공장을 짓고도 아직도 돈을 못 받고 있어 프로젝트 법인을 해산시키지 못하고 있다. 2월 초에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여전히 이자 부담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공장 가동을 위해서는 우수의약품 제조 및 관리기준(GMP)을 충족해야 한다. GMP 심사 허가 전에는 견본제품만 제조할 수 있어 유의미한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데다가 인건비 지출 등 손실만 발생할 우려가 높다. 삼일제약 측은 향후 1년 내에 베트남 식약청(DAV)과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GMP 승인을 받고 이후 2~3년 내에 미국과 유럽, 캐나다에서도 GMP 승인을 받아내겠다는 목표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애초에 해외 CDMO 공장은 처음 시도하는 터라 상당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데 무엇을 생산할지도 정리가 안 됐다면 회사가 정한 목표대로 진행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삼일제약 관계자는 “회장님 배임·횡령 혐의와 관련해서는 아직 경찰에서 내부적으로 수사하는 단계라 확정된 바가 없기 때문에 공식적인 답변을 드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거 같다”며 “베트남 공사비 현재 잔금은 100억 원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으로 어려운 금융시장 상황을 고려해서 건설사와 저희 회사가 합의하여 분할 납부하고 있고 원만히 마무리 된 상황이다. 베트남 공장 가동이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하다고 확답을 드리긴 어렵지만 내부적으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영업직 직원의 영업 일비와 관련해서는 “내부 인센티브 규정에 따라 지연없이 지불이 되고 있고 영업 일비를 지나치게 많이 지급할 경우 리베이트를 조성하게 될 여지가 있어 업계 평균 수준을 유지 중”이라고 반박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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