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델라인 홈페이지에 소개된 VIP ZONE 사교클럽. |
7월 11일 “낮 시간에 술도 안 먹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남성분들과의 만남”이라는 메일이 한 구인구직사이트 20대 여성 회원들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발송된 것이다. 놀랍게도 이 광고 메일의 발송인은 SK텔레콤, GS홈쇼핑 등 대기업 광고에 출연한 모델들이 소속된 ‘모델나인’ 대표였다. 명망 있는 모델 에이전시가 ‘스폰서 이메일’을 배포한 것을 두고 적잖은 논란이 일고 있다.
스폰서 메일을 수신한 여성들은 “어떻게 내 메일 주소를 알았느냐”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해당 메일에 적시된 내용이 너무도 적나라했기 때문이다.
▲ 모델나인에서 발송한 일명 ‘스폰서 이메일’. |
가장 주목할 것은 “1시간에 최고 100만 원 이상 벌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폰서 알바 구인 글이 성매매 의혹을 부추기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글에는 ‘스폰서와 가볍게 데이트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설명돼 있지만 일당 100만 원 이상이라는 고액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사실은 성매매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매매 의혹이 일고 있는 ‘스폰서 알바’는 과연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VIP ZONE 사교클럽은 멤버십 예약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철저한 보안을 보장합니다.”
‘모델나인’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문구들이다. 재력 있는 남성들과의 비밀모임을 표방하는 VIP ZONE 사교클럽은 에이전시로부터 미모의 모델들을 소개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핏 보면 기존의 결혼정보업체들이 주선해왔던 사교파티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해의 소지를 일으킬 만한 부분이 눈에 띈다. 일례로 이 에이전시가 지난해 12월 초에 공지한 글에는 “신분노출이나 법적인 문제없이 마음 놓고 사교할 수 있도록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돼 있다. 신분 노출 없이 철저한 비밀모임을 표방한다는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법적인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부분을 강조한 것도 특이하다.
이에 대해 ‘모델나인’ 측은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그런 (스폰서)메일을 보낸 적이 없다. 여타 다른 광고 글도 마찬가지”라며 스폰서 관련 모든 내용을 강력히 부인했다.
기자는 다음날 스폰서를 구하는 것으로 위장해 ‘모델나인’ 측에 전화를 걸어봤다. 답변은 예상대로였다. ‘모델나인’ 측은 “스폰서라니, 처음 듣는 소리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과연 ‘스폰서 알바’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루머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이메일 도용 등으로 인한 단순 해프닝에 불과한 것일까.
취재 결과 스폰서 알바에 대한 얘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청담동 유명 텐프로 룸살롱에 근무 중인 이유정 씨(가명·27)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모델나인은 잘 모르겠다. 다만 몇몇 영세 모델에이전시에서 스폰서 알바를 제공하고 있다고는 들었다. 스폰서 대부분은 40~50대 재력가들이지만 간혹 60~70대도 있다. 스폰서 알바는 사실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데 왜 갑자기 논란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일반적으로 에이전시 측은 미모의 여성지원자들을 서류와 동영상, 면접 등을 통해 소수의 여성을 선발한다. 선발된 여성들의 프로필 사진은 보정을 거쳐 VIP 남성회원들에게 제공된다. 제대로 된 스폰서를 잡으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폰서에게 초이스를 받는 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외모상으로 ‘합격’을 받았다 해도 심층면접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씨는 “중년의 재력가들을 즐겁게 해줘야 하니 골프를 배워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또 예술에 조예가 깊은 그들의 입맛을 맞춰주기 위해 유명 음악가나 화가의 작품 정도는 알아둬야 한다. 어떤 친구는 면접 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고전 영화 제목을 읊기도 했다”고 전했다. 대화가 통하는 여성을 선호하는 스폰서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 모델 에이전시들이 ‘스폰서 사업’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돈 때문이다. 보통 에이전시 측은 미모의 여성들을 스폰서들에게 공급하는 조건으로 고액의 수수료를 받아간다. 만약에 소속 여성이 스폰서로부터 일당 100만 원을 받는다면 이 중 약 25~35%의 수수료가 에이전시 측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에이전시들은 스폰서와 여성회원 간의 일대일 만남을 허용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을 통해서만 데이트가 성사되도록 관리한다.
일회성 만남이 잘 성사된다면 장기적인 만남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 씨는 “스폰서 눈에만 잘 들면 차, 오피스텔 월세 등을 장기간 제공받을 수 있다. 항간에 나도는 스폰서와 관련된 루머들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 공식적인 입장을 준비 중이라 밝힌 한 여성단체 대표는 “알바라는 이름으로 성매매를 알선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심지어 이런 성매매 구인 글을 불특정 다수에게 메일 발송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이메일을 받아본 여성이 수치심을 느꼈다면 이 역시 엄연한 성폭력이다. 내부 검토를 거처 해당 업체를 상대로 적절한 항의표시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