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핸드볼 태극전사 김온아(왼쪽)와 유은희는 런던올림픽에서 꼭 ‘우생순’ 신화를 잇겠다고 다짐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요즘 카메라 좋은 거 많이 사용하시던데, 왜 신문에 나오는 사진은 다 이상한 사진만 사용하는지 모르겠어요.”
김온아를 보고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낫다”는 기자의 인사말에 김온아가 진심을 담아 농담처럼 대답한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김온아는 실물이 훨씬 여성스러웠다. 평소 인터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대표팀 관계자의 설명과 달리 그는 편하게 자신을 보여줬다.
김온아는 2008베이징올림픽 때 오성옥의 백업 멤버 형식으로 대표팀에 발탁돼 올림픽을 처음으로 경험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유은희보다는 좀 더 여유가 있는 듯 했다.
“겉으로만 여유있는 척 하는 거고, 속으로는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긴장과 설렘이 공존해요. 베이징 때는 (오)성옥이 언니가 체력적으로 힘들어할 때 잠깐 들어갔다가 언니가 회복했을 때 다시 교체돼 나오는 후보나 다름 없었어요. 그때는 주전 선수들이 다치면 대표팀 전체가 비상이 걸렸죠. 주전과 백업 멤버들과의 실력 차이가 컸기 때문에 주전을 대신할 만한 백업 선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평균 연령도 많이 낮아졌고 누가 들어가든 주전에 걸맞은 몫을 해내는 선수들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래서인지 파이팅도 넘치고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단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다고 한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선수 구성이 이뤄지다보니 올림픽 같이 큰 대회 경험이 많은 선수들에 대한 아쉬움이 뒤따르는 부분이다.
“지금 유은희 같은 선수는 정신없을 거예요. 긴장감 때문에. 패기는 넘치는데 경험 부족으로 인한 긴장, 딱딱함, 실수 등이 나올까봐 엄청 힘들어할 것 같아요.”
실제로 유은희는 “(올림픽에 대한) 설렘은 전혀 없고 긴장감만 가득해서 호흡하기 조차 불편할 지경”이라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아주 피가 마르는 듯한 느낌이에요.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무대이고, 너무 간절히 원했던 무대라 더더욱 긴장되는 것 같아요. 제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간절해서 그런지 불안감이 가중되더라고요. 온아 언니가 부러울 때가 많아요. 올림픽 경험이 있고 없는 게 큰 차이가 있거든요. 저도 베이징 때 백업멤버로 뛰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두려움은 없었을 거예요.”
# 슬럼프 겪으며 ‘간절함’을 만나다
유은희는 베이징올림픽 때 대표팀 승선이 유력했지만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그 이후 한동안 긴 슬럼프를 겪어야 했다. 당장 핸드볼 공을 만지는 것도 싫었고 현실에서 벗어나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직접 베이징올림픽을 현장에서 관전하며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언니들이 숱한 난관을 뚫고 동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제가 대표팀에 포함되었더라면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전 그 언니들처럼 해낼 자신이 없었으니까요. 올림픽을 코트가 아닌 관중석에서 지켜보며 다음 올림픽에 대한 각오와 도전 정신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게 이렇게 현실로 이뤄졌고요. 많이 떨릴 게 분명한데, 경험 많은 언니들만 믿고 열심히 뛸 겁니다.”
유은희는 주공격수이다보니 상대 선수들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인다. 한 번 경기를 치르고 나면 온몸이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통증이 느껴지지만 이 또한 체격 좋은 유럽 선수들을 상대해야 하는 운명이라 안고 가야한다며 활짝 웃는다.
어렸을 때부터 ‘핸드볼 천재’로 불렸던 김온아는 실업팀 입단 첫 해를 눈물로 보냈고, 그 한 해가 최악의 슬럼프였다고 설명한다.
“효명건설(전 벽산건설)에 입단 후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중·고등학교 때만 해도 핸드볼에 관해선 제가 제일 잘 하는 선수라고 자부했는데 막상 실업팀에 들어가 보니 잘 하는 선배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던 거예요. 아니 선수들 중에서 제가 제일 실력이 부족했어요. 선배들과 제 실력 차이가 너무 크니까 감히 그들을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제가 너무 ‘고운 환경’에서 화초처럼 운동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즉 칭찬만 받고 생활하다 갑자기 못하는 게 너무 많아진 상황이 힘들고 어려웠던 거죠.”
김온아한테는 선배들과의 실력 차이뿐만 아니라 임영철 감독의 카리스마를 견뎌내는 문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미 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며 ‘독사’ 이미지를 강하게 전했던 사람이라 김온아는 임 감독이 점점 두려운 존재로 다가왔다고 말한다.
“경기 중에 감독님이 제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울면서 감독님한테 뛰어 갔어요. 혼나는 게 너무 무서워서요. 감독님과는 지금 6년째 같은 팀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여전히 무섭고 어려워요. 조금 달라진 부분이라면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는 거?(웃음) 이젠 절 벤치로 불러들이셔도 울지 않고 달려가거든요.”
# 올림픽 메달이 필요한 이유
김온아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생 김선화를 떠올리며 시련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같은 핸드볼 선수인 동생은 올림픽 최종예선전에서 함께 대표팀 선수로 활약했을 만큼 실력이 뛰어났지만 안타깝게도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태릉선수촌을 떠나야만 했다.
“동생이 떠난 후 며칠동안 방황을 했어요. 정말 같이 가고 싶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했는데 저만 남고 동생이 떠나니까 마음이 허전하고 운동에 집중이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동생이 이런 말을 해줬어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서 후회없는 올림픽으로 만들어서 오라고.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 훈련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유은희도 가족을 내세운다. 바로 어머니 박순례 씨다.
“엄마가 절 뒷바라지하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그 고생이 보람으로 바뀔 수 있도록, 후회없는 올림픽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예선전부터 스페인 등 강팀을 만나는 바람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힘들 때마다 엄마 얼굴 떠올리면서 긴장감을 풀어가도록 노력할게요. 엄마, 조금만 더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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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릴 반반씩 합치면 최곤데…’
“온아 언니한테 궁금한 게 있어요. 언니가 순간 스피드가 엄청난 편이에요. 전 체격이 있어서 많이 느린 편이거든요. 그런 스피드는 어떻게 해서 나오는 건지 정말 궁금해요.”
유은희한테 ‘김온아에게 궁금한 것 한 가지’를 질문해달라고 하자, 처음 나온 말이 “남자친구 있느냐고 묻고 싶지만, 언니한테 그런 사람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질문이 안 나올 것 같다”며 스피드의 원천에 대한 얘기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김온아는 “어렸을 때부터 핸드볼 선생님께서 근력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뛰면서 치고 나가는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가르치셨고 기본기를 착실히 다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은희는 나한테 직접 물어보지도 않고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단정짓느냐”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젠 김온아 차례다.
“평소 은희한테 궁금했던 건 중거리슛이 굉장히 좋은 편인데 체격이 크면서도 슛 타이밍이 빠르고 파워가 넘치는 비결이 알고 싶었어요. 전 중거리슛에서 부족함이 있거든요.”
이에 대해 유은희는 “언니보다 체중이 더 많이 나가니까 힘이 실리는 건 당연하다”며 웃음을 터트린다.
“중학교 때부터 골대 앞에 남자 애들 세워 놓고 중거리슛 연습을 엄청 많이 했어요. 점심 때 밥을 먹는 대신 슛 연습을 했을 정도로 슛감을 키우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던 건 사실입니다. 그 덕분에 주니어대표팀에 뽑혔고 청소년, 올림픽대표팀에도 뽑힐 수 있었고요. 얘기를 들어보니 온아 언니와 제가 반반씩 섞였더라면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갖춘 선수가 나왔을 것 같네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