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현주와 김상중. |
▲ 드라마 <추적자>. |
공채에 합격했다고 곧바로 인생이 바뀐 건 아니었다. 1991년 김운경 작가의 드라마 <형>으로 공식 데뷔했지만 이후 별다른 배역을 받지 못한 손현주는 4~5년간 조명 기구를 나르는 스태프로 일하며 힘든 신인 시절을 보냈다. 비중은 크지 않았지만 손현주는 1990년대 초반 드라마 <모래시계> <달빛 고향> <바람은 불어도>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반면 김상중은 1990년 연극 <아이 러브 빵>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필모그래피를 쌓기 시작했다. 그의 드라마 데뷔작은 1992년 방송된 MBC 드라마 <님이여>였다. 이후 인기 드라마 <사춘기>에서 주인공 정준의 선생님 역을 맡아 얼굴을 알렸고, 드라마 <천국의 나그네> <아들의 여자> 등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맡으며 빠르게 인지도를 높여 갔다.
#주연의 영광, 김상중이 빨랐다!
공채 출신도 아니고, 데뷔 연도 또한 빠르지 않았지만 김상중은 일찍부터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첫 드라마 출연 이후 불과 2년 만에 KBS 드라마 <김구>의 타이틀 롤을 맡은 것. 당시 그는 청년 시절의 김구 역으로 캐스팅돼 17세부터 38세까지의 김구를 연기했다.
김상중은 드라마 데뷔작 <님이여>에서 윤봉길 역을 맡은 데 이어 김구 등 위인들을 연기하며 남다른 이력을 써내려갔다. 그를 기억하는 MBC 드라마국의 고위 간부는 “김상중은 NG가 거의 나지 않는 철두철미한 배우였다. 단정하고 올곧은 이미지와 정확한 발음 덕분에 데뷔 초반부터 주요 배역을 맡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손현주는 주연으로 올라서기까지 무려 12년이 걸렸다. 2003년 MBC <앞집 여자>를 통해 드디어 ‘주연’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것. 늘 조연에 만족해야만 했던 손현주는 <앞집 여자>를 통해 그 해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 최우수상 부문 후보에도 노미네이트됐다. 이후 낙천적인 모습으로 항상 아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남편의 모습은 손현주의 전매특허가 됐고 손현주의 주연시대가 활짝 열렸다.
▲ 왼쪽 사진은 드라마 <모래시계>(위)와 <장미빛 인생>. 오른쪽은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위)와 <내 남자의 여자>. |
손현주는 문영남 작가의 페르소나라 할 만하다. 그의 초창기 출연작인 <바람은 불어도>부터 <조강지처클럽>까지, 손현주와 문영남 작가는 무려 아홉 작품을 합작했다. 특히 고 최진실과 호흡을 맞췄던 드라마 <장미빛 인생>에서 손현주는 문영남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캐릭터를 빚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손현주는 <추적자>를 통해 문영남 작가 없이도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손현주에게 문영남 작가가 있다면 김상중에게는 김수현 작가가 존재한다. 통상 두 사람이 합작한 작품으로 <내 남자의 여자>와 <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올린다. 하지만 두 사람의 첫 인연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상중은 역시 김수현 작가가 쓴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얼굴을 비쳤다. 이후 무려 12년이 흐른 뒤 <내 남자의 여자>의 주연 배우로 발탁되면서 김 작가와의 남다른 인연을 이어갔다.
연기 좀 한다는 배우들 사이에서도 발음 좋기로 소문난 김상중은 토씨 하나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한 김 작가의 대본을 가장 잘 소화하는 배우로 손꼽힌다. <내 남자의 여자>의 홍준표와 <인생은 아름다워>의 양병준 역시 김상중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대체 불가 캐릭터로 불리는 이유다.
#예능 vs 시사교양
두 사람 모두 연기만으로도 승부가 가능한 진정한 배우로 불린다. 물론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좋지만 매일 같은 반찬만 먹을 수는 없다. 때문에 손현주와 김상중 역시 배우로 살아오며 한눈을 팔기도 했다. 하지만 한눈을 판 분야는 상당히 다르다. 바로 이 지점에서도 두 배우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손현주는 잠시 가수로 외도를 했다. 그는 과거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라는 노래를 불러 화제를 모았다. 역대 한국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 기록을 갖고 있는 <첫사랑>에서 부른 노래라 더욱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 노래는 단순히 드라마에 삽입된 것이 아니라 정식 앨범으로 제작됐다. 당시 손현주는 <첫사랑>의 극중 이름이었던 주정남의 이름을 단 ‘주정남 첫사랑 메들리’를 발표했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손현주는 “당시 길거리에서 40만 장 정도 팔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상중의 얼굴과 목소리의 느낌은 누가 봐도 시사와 교양에 가깝다. 그는 이 장기를 십분 살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고 있다. 문성근 이후 정진영에게 갔던 MC 자리는 2008년 김상중에게 왔다. 그리고 그는 벌써 4년째 <그것이 알고 싶다>의 MC로 장기집권 중이다.
김상중이 <추적자>에서 완벽한 연설연기를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도움이 있었다. 그는 얼마 전 진행된 <추적자>의 간담회에서 “아무래도 다년간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했던 노하우가 있어서 그런지 설득을 시키고 얘기하는 부분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진행을 하면서 (시청자들을) 설득하고자 했었던 부분들을 ‘김상중이 아닌 강동윤이 말하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니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서민 vs 귀족
손현주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서민’이다. 비 연예인과 섞여 있어도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 것 같은 평범한 얼굴과 몸매로 빚어내는 생활형 연기는 막힘이 없다. 꾸미지 않고 포장하지 않아도 빛이 나는 연기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몸으로 부딪히고 깨지는 <추적자>의 강북경찰서 강력1반 형사 백홍석과 손현주는 닮았다. 오로지 딸과 아내를 위해 살아가던 한 남자가 그들을 잃은 후 온몸으로 세상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며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은 공감하고 격려했다.
반면 주름 하나 없는 수트와 바람에도 흐트러지지 않을 것 같은 단정한 머리스타일을 가진 재벌의 사위이자 국회의원 강동윤은 김상중이라는 곧은 이미지를 가진 배우를 만나 꽃을 피웠다. <추적자>는 회를 거듭할수록 손현주를 응원하는 목소리와 김상중을 욕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높아졌다. 두 목소리의 방향은 다를지언정 두 배우가 주연 배우로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했다.
SBS 드라마국 관계자는 “두 사람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실제 그 배역이 되는 것 같다. 이런 진정성 있는 연기가 있었기에 스타 하나 없는 <추적자>가 온 국민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고 평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
이번엔 이정길·박근형 대결?
SBS월화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가 지난 17일 종영했다. 방영 초기엔 마니아 드라마였지만 중반부터 탄력을 받기 시작해 종영 즈음엔 시청률 20%를 넘기며 <추적자>는 작품성과 흥행성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런 만큼 종영을 아쉬워하며 시즌2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지만 드라마의 내용상 시즌2가 나오긴 힘든 상황이다. 이런 까닭에 <추적자> 시즌2에 대해서는 제작사나 방송사에서 모두 별다른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네티즌들 사이에선 <추적자> 시즌2를 두고 다양한 예측이 난무하고 있다. 물론 현실성 없는 네티즌들의 희망뉴스일 뿐이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많다. 기본적으로 백홍석(손현준 분)과 강동윤(김상중 분)의 대결은 끝이 났다. 따라서 새로운 대결 구도가 필요한데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이정길과 박근형의 대결이다. 이정길은 새로 선출된 조동수 대통령 역할이고, 박근형은 한오그룹 서 회장 역할이다. 결국 이들의 대결 구도는 청렴한 정치인과 부패한 재벌의 대결로 압축된다. 또한 시즌1이 중년의 연기파 배우 손현주와 김상중의 연기 대결이었던 데 비해 시즌2는 노년 연기파 배우 이정길과 박근형의 대결이 된다.
또 다른 대결 구도는 한오그룹의 새로운 사윗감으로 급부상한 최정우 변호사(류승수 분)와 강동윤의 대결이다. 한오그룹 회장 자리를 두고 만기 출소한 강동윤과 한오그룹 법무팀을 이끌고 있는 최정우가 한판 대결을 벌인다는 것. 드라마 중반부엔 백동석까지 모범수로 출소하거나 사면으로 출소해 이들의 대결에 가세할 수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의견은 이미 <추적자> 시즌2가 이미 몇 년 전에 방영됐다는 주장이다. 드라마 <아이리스>가 바로 <추적자>의 시즌2였다는 것. <추적자>의 마지막 회에 사진으로만 등장하는 이정길은 새로운 대통령 역할이다. 그런데 <아이리스>에서도 이정길은 대통령 역할을 맡았다. 여기서 이정길은 한국은 물론 북한까지 뒤에서 조정하는 아이리스 조직과의 힘겨운 사투를 벌인다. <아이리스>에선 백산(김영철 분)이 한국 아이리스 조직의 책임자로 밝혀지지만 ‘아이리스’라는 조직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백산의 윗선이 어딘가 존재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바로 그 ‘아이리스’ 조직의 숨겨진 진정한 수장이 바로 서 회장이라는 것이다. 배우 이정길이 대통령 역할로 출연한 두 편의 드라마를 엮어 상상해낸 기발한 발상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