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현실 못 따라가는 공교육 역량 지적 꾸준…학폭 대응 등 생활지도에 대한 불신도 커져
공교육계에서는 '학교는 전인격 교육기관'으로 수업이 전부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한때 연예계를 휩쓴 학교폭력(학폭) 문제가 정순신 변호사와 이동관 대통령실 특보 등 사회 고위층 자녀들까지 덮치며, 학폭의 실태는 물론 학교 측의 부실한 대응도 동시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국 수업 역량과 인성교육 및 행정처리 등이 전부 도마에 오른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공교육의 신뢰 확보 방안도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한다.
#사교육 카르텔 깨야 하지만…공교육 경쟁력은
"일반 고등학교가 제공하는 교육 수준이 학생들의 학력수준과 성취도를 따라가긴 하나." "공교육 카르텔도 문제 아닌가. 수업 연구 안 하는 행태야말로 카르텔."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교육이다. 그러나 공교육만으로는 수능을 치를 수 없다."
정부의 '사교육 카르텔' 제재를 바라보는 누리꾼들의 반응이다. 대형 학원을 겨냥한 세무조사와 부조리 신고센터 운영 등 고강도 조치가 이뤄지고 있으나 시선이 복잡하다. 사교육이 일으켜 온 여러 사회 문제의 개선 필요성에는 이견이 적어도, 공교육을 신뢰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단연 학교의 학습지도 역량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염원'인 입시에서 학교 교실이 가져다주는 믿음은 공교육계 스스로도 쉽게 자신 못하는 게 현실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윤건영 충북교육감 등 현직 교육감들도 최근 언론 인터뷰 등에서 '공교육 역량 강화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지적은 흔한 편이다. 대학 교수로 20년 넘게 일하다 최근부터 한 사립고교 재단에 몸담은 한 인사는 "교사들 각각의 역량은 상당히 뛰어난데 현실에 안주한다는 느낌을 솔직히 지울 수 없다"며 "교단에 섰으면서 연구 활동을 안 해도 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대학은 조교수, 부교수, 교수, 학과장 등으로 가기 위해 억지로라도 자기 공부를 하지만 교사들은 입직과 동시에 정년 보장을 받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인공지능(AI) 도입과 디지털 활성화로 세상은 급변하는데, 교사들의 지식이 되레 노후화되어 가는 듯해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정부도 같은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에 6월 21일 '공교육 경쟁력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수업 전문성이 뛰어난 교사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학생들의 기초 학력 향상을 위한 맞춤형 교육 및 자율평가 확대, 교사의 행정업무 경감 등을 담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공교육 부실 우려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담은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추진이 원만할지는 미지수다. 한국교총은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반대가 거세다. 전교조는 "결국 잘하면 우대할 테니 경쟁하라는 선언"이라며 "한국의 교육 문제는 누군가 잘 가르치지 못해서 발생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특히 "교육부가 교육을 '가르치는 행위'나 '성적 올리는 일' 정도로만 편협하게 인식하고 있다"면서 "학력의 진단이란 가정·사회·학교·관계·정서 등 학습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를 찾아내는 전인적 과정이며, 학생 개개인의 처지와 상황을 잘 파악하고 지원 사항을 찾아내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수업 역량 외에도 학생들의 관계 및 정서 등 정량 측정이 힘든 부분까지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단 그런 관점에서도 지금의 공교육이 신뢰를 가져다주고 있는지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이제 사회 문제로 자리해 버린 학폭 실태가 대표적인 예다.
#생활지도는 잘하나…학교 불신 이유
"학교 현장에선 요즘 학생들이 유독 철부지고 학부모들도 유별나다는 식의 성토가 크지만, 사실관계를 떠나 이런 남 탓이 바람직한지는 모르겠다. 세상 변했다는 얘기야 어느 업계든 십수 년째고 학교도 엄연히 행정을 수행하는데, 시대 변화에 부합하는 역량 개선이 이뤄졌는지 돌아보면 학교가 불신을 자초하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학폭전담경찰관(SPO)으로 5년 넘게 학교 현장을 지키다 최근 자리를 옮긴 어느 경찰관의 소회다. 그는 학교의 조직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여러 번 당혹감을 느꼈다고 한다. 학폭이 발생하면 폭탄 돌리기 하듯 계약직 교사에 처리를 떠맡기거나, 혹은 SPO한테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등 무책임한 모습을 몇 차례 봤기 때문이다.
이 경찰관은 "옛날에야 학교와 선생님들을 으레 믿고 뭐든 맡겼다지만, 이제는 학폭 등의 사안처럼 학부모한테 공개되는 행정 절차와 결과가 많아지지 않았나"라며 "누구든 예외 없이 행정역량을 강화해 적응해야 하는 시대인데, 학교는 성찰이나 개선 노력보다는 극성 학부모 등 외부 요인에 유독 집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꼬집었다.
학폭 피해자의 부모로서 책 '학교폭력 부모 바이블'과 '아빠가 되어줄게' 등을 저술한 이해준 학교폭력연구소 소장의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소장은 "학폭위원회 등 학교·교육청의 학폭 처리 제도가 안착한 지 수년째지만 여전히 학교는 그 운영의 묘를 찾아보기 힘든 혼돈의 현장"이라며 "교사들은 학부모 민원 등으로 사건에 휘말릴까 봐 문제를 외면하거나 기계적 중립을 고수하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교육청은 아무 권한도 없는 일선 학교에 책임을 떠미는 탓에 교육당국 전반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신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물론 학교폭력예방법의 부실한 시행령과 학폭위의 제한적인 선도조치 등 제도적 결함 역시 심각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학폭위 등 제도를 10년가량 운영해 왔는데도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누적하지 못한 채, 불신이 더해진 현실은 교육당국과 교사들이 함께 되돌아봐야 할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교사들에 대한 신뢰 하락은 지표상으로도 나타난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2022년 공개한 '2001~2021 교육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중·고 교사의 자질과 능력을 신뢰한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2001년 29.5%에서 2021년 22.1%까지 떨어졌다.
특히 교사가 갖춰야 할 능력으로 '생활지도 역량'을 요구하는 응답이 크게 늘었다. 2001년 18.1%에서 2021년에는 두 배 수준인 31.1%까지 증가했다. '교육과정이 잘 운영되고 있다'는 응답이 13.8%에서 20.2%로 오른 지점도 눈에 띈다. 시스템은 나아졌으나 이를 작동하는 학교와 교사를 향한 불만이 커진 셈이다.
청소년 문제를 주로 연구하는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는 '책임교사제' 현실화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서 교수는 "학폭 문제는 담당 교사들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며 "이에 따라 피해자에 2차 가해를 가할 수 있고, 가해자를 올바르게 교화하는 데도 실패하며 이의 제기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형성된 것"이라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이제 학교의 교육과 행정도 대외에 공개되는 시대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학폭 담당을 1년씩 돌아가며 맡는 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며 "교육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수석교사와 같이 학폭 책임교사 역시 해당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물론 몇몇 현상만으로 문제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과도한 잡무로 교사들이 수업 연구에 주력하기 힘든 환경과 소송, 악성 민원 등에 따른 학폭 업무 기피 등 구조적 문제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더라도 공교육의 전문성 강화 대책 마련과 교육청 및 학교 현장의 성찰도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소한 정년 보장을 바탕으로 학생 교육과 인권은 물론이고 승진마저 관심을 두지 않는 '무기력 교사'를 최소화할 장치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는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공교육 역량 강화는 반복되는 문제 제기라 한때 교사 역량평가 도입까지 추진됐는데 교원들의 저항에 가로막혔다"며 "현재는 학부모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지만, 만족도가 낮다는 이유로 교사들을 재교육할 수도 없으니 크게 의미는 없는 평가 방식"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유럽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교육 전문가들이 일주일가량 교사 수업에 참관해 평가와 개선 사항을 짚어주기도 한다"며 "한국은 여느 공직사회가 그렇듯 학교도 연차가 쌓일수록 무기력 교사들이 늘어나는 상황인데, 행정 등 업무 경감을 전제로 교사들의 자기개발 동기를 부여할 장치는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고도 덧붙였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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