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아이들을 진찰하다보면요, ‘청진할거야’, ‘심장 소리 듣는 거야’, ‘폐 소리 듣는 거야’, ‘입 벌리는 건 목에 염증 있는지 보는 거야’ 등등 일일이 미리 설명하는 부모들이 제법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설명 육아라는 거 함부로 하면 곤란하다는 점을 알아두셔야 합니다.
물론 새로운 일이 생겼을 때 한두 번은 설명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들이 처음 경험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상을 설명할 필요는 없고요, 반복해서 설명할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한두 번 설명한 후에는 스스로 세상을 이해하게 둬야 두뇌발달이 촉진됩니다. 어린이집, 학교,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가정에서도 적당히 설명하고 스스로 이해할 수 있게 두세요. 아이 스스로 세상을 이해하고 적응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배울 기회를 주라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생각보다 이해력이 뛰어납니다. 스스로 궁금증을 해결할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수학문제를 스스로 풀 기회를 주지 않고 답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부모는 약간 도와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이 할 일을 부모가 대신한다면 ‘마마보이, 파파보이’로 키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신의 관점에서 이것저것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신의 눈과 경험으로 세상을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상황에서도 부모가 전혀 설명하지 않고 아이 스스로 보고 듣고 판단할 기회를 줘야합니다. 아이들에게 어른식의 완벽함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실수나 좀 빼먹는 것 역시 아이들이 인생에서 거쳐야 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설명 육아를 하지 말아야 할 제일 중요한 이유는 부모가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일일이 모든 걸 설명하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에 가정의 일상이 아이들 중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 한 명 키우면 인생을 갈아 넣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왜 그렇게 힘든 일을 사서 합니까?
부모가 구태여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부모의 일상을 통해서 모든 것을 설명받고 있습니다. 아이 키울 때 특별한 육아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맞춰주는 것보다 아이가 스스로 세상에 맞춰 사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정훈은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다. 대한소아과개원의협의회 교육이사, 대한소아과개원의협의회 모유수유위원회 위원장,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하정훈소아과의원 원장이다. 베스트셀러 육아지침서이자 육아교과서라 불리는 '삐뽀삐뽀 119 소아과'의 저자이기도 하다.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