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아끼려 원장이 자꾸 꺼” 온라인 게시글 화제…“창문 계속 열려 있는 게 수상” 맘카페 등서도 성토
#취업 불이익 우려 보육교사 속앓이
12년째 일하고 있는 보육교사라고 밝힌 글쓴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 ‘에어컨 못 켜게 하는 어린이집에 근무합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글쓴이는 “원장이 에어컨을 못 켜게 한다. 켜놓으면 와서 인상 구기고 꺼버린다”며 “‘전기료 올랐다’, ‘아이들 감기에 걸린다’ 등 온갖 핑계를 다 대지만, 아이들과 교사들은 땀을 많이 흘린다”고 밝혔다. 이어 글쓴이는 “대부분 이런 곳이 많을 거다”며 “내부 고발자가 되면 다음 취업에 영향이 크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여러 육아 커뮤니티 카페에서도 부모들이 에어컨을 안 켜는 어린이집이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서울 소재 맘카페에서 한 부모는 “아이에게 땀띠가 심하게 난다”며 “아이가 다니는 가정어린이집을 등원할 때나 하원할 때 보면 창문이 계속 열려있던데 에어컨을 틀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울산 소재 맘카페에서는 “어린이집이 에어컨을 안 틀어서 그런지 아기가 땀에 흥건히 젖은 거 같고 몸에 땀띠가 나 있다”며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말하는 게 민폐일 것 같아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2018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뉴스1에 따르면 2018년 8월 경북 구미시의 한 아파트 민간 가정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아동학대를 하는 장면이 CC(폐쇄회로)TV를 통해 확인됐는데, 폭염이 지속된 7~8월 에어컨이 없는 방에서 어린이들에게 낮잠을 재운 사실도 밝혀졌다. 2018년 7월에는 인천의 한 어린이집 원장이 원생들을 복더위에 에어컨을 켜지 않은 방에 방치하는 등 학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원 전에만 켜 학부모에 눈속임”
앞서 보육교사라고 밝힌 게시자는 에어컨을 안 트는 어린이집이 많을 거라고 주장했는데, 댓글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 누리꾼도 있다. 어린이집 교사라고 밝힌 한 게시자는 “이 글이 거짓말일 것 같지만 실화일 거다. 듣는 이야기들이 많다”고 댓글을 달았다.
함미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장도 “원장이 에어컨은 물론 난방도 안 틀게 하는 일이 많다”며 사용 요금을 아끼기 위해 원장이 냉·난방 가동을 막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함 지부장은 “7년 전 새로 개원했던 한 어린이집 원장이 돌아다니면서 에어컨을 못 틀게 했고 리모컨을 뺏은 일이 있다”며 “땀에 젖은 아이의 모습을 부모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하원 전에 에어컨을 틀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함 지부장은 부모들로부터 민원이 들어오면 불이익이 생길 수 있으며, 내부 고발로 인해 원장들 사이에서 평판이 안 좋아지면 이직이 어려워지기에 의견을 내지 못하고 근무하거나 조용히 퇴사하는 보육교사들이 많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어린이집 원장들은 운영비를 아끼려는 욕심에 냉·난방 가동을 막는 원장들이 있을 수 있지만, 비일비재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서울 성북구 한 민간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은 “국·공립, 민간 등 교육용 전기료로 계산하는 어린이집에 비해 누진세가 적용되는 가정어린이집은 이용료가 2~3배 차이가 나서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원장 본인은 물론 교사·원생들도 더울 텐데 운영비를 아끼려고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 것은 구시대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서울 성북구에서 한 가정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도 “지방자치단체가 상반기에 냉방비, 하반기에 난방비를 어린이집들에 지원해 주기에 부담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원생이 적어서 운영비가 적은 곳에서는 부담이 크겠지만, 이윤을 내려는 욕심에 냉난방을 하지 않는 것은 보육의 질을 떨어트리는 것은 물론 교사와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아이들 건강권 침해” 엄마들 분노
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아이들을 장시간 더위에 노출하는 것은 건강권이 침해되는 것은 물론 쾌적한 환경에서 자라야 하는 아이들의 기본권도 침해되는 행위”라며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정서적 폭력도 아동학대”라고 비판했다. 이어 “냉·난방비가 부담스럽다면 지원금을 늘려 달라고 정부에 적극적으로 요구해야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주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기관과 전문가는 냉·난방 가동을 막는 원장들에게 아동학대 혐의를 적용하려면 면밀히 조사해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해당 행위만으로는 학대라고 판단하기가 어렵다”며 “신고를 접수한 뒤에 충분히 조사해야 하며 최종적으로는 사법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소속의 신수경 변호사도 “만약 원장에게 아동학대 혐의를 적용하려면 아이들이 부적절한 환경에 있게끔 하려는 고의가 있었다는 게 확실히 입증돼야 한다”며 “적정 온도를 유지하지 않아 아이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면 그 인과관계도 명백히 입증해야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밝혔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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