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 전속계약 퍼포먼스, 본 공연보다 긴 뒤풀이…올림픽주경기장 리모델링 전 마지막 공연 성황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싸이흠뻑쇼 SUMMERSWAG 2023’(흠뻑쇼) 무대 위에서 가수 싸이(박재상·45)는 이렇게 말했다. 데뷔 23년차를 맞은, 40대 중반 중견 가수의 허울 좋은 자기만족이 아니었다. ‘흠뻑쇼’ 서울 공연에서 싸이는 사흘 동안 매회 3만 5000여 명씩, 도합 1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그의 커리어 역대 최고치다.
‘흠뻑쇼’에는 놀 준비를 마친 이들만 모였다. 대중가수의 공연인데 이례적으로 ‘파란색’이라는 드레스 코드가 있었고, 이에 호응해 대다수 관객들이 파란색이 포함된 의상과 갖은 액세서리로 멋을 낸 채 잠실벌로 몰려들었다. 특히 7월 1일은 올여름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다. 낮 기온이 35℃에 육박하는 상황을 아랑곳 않고 열기를 끌어올리는 관객들을 향해 싸이는 그들을 ‘관객’이 아닌 “광객(狂客)”이라 불렀다.
오프닝은 영상이 장식했다. 춤을 추는 싸이를 향해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으로 주목받은 배우 허성태가 도발했다. 그가 ‘SNL코리아’에서 선보였던 ‘코카인 댄스’를 추자 관객들은 일제히 환호했고, 이어 싸이가 ‘댓 댓’을 부르며 무대 위로 등장했다.
이날 싸이는 ‘예술이야’, ‘DADDY’, ‘I LUV IT’, ‘젠틀맨’, ‘아버지’, ‘NEW FACE’, ‘강남스타일’, ‘연예인’ 등 다양한 히트곡을 소화하며 객석을 쥐락펴락했다. ‘강남스타일’을 부를 때는 싸이와 일제히 말춤을 추는 장관이 펼쳐졌다. 이 공연은 운동장의 스탠딩석과 1, 2층 좌석으로 구분됐지만, 자리에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싸이는 “오늘 성대와 다리를 잃겠지만, 추억을 얻어갈 수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날 것을 독려했고, 4시간에 육박하는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그 누구도 흥을 감출 수 없었다.
시원한 물줄기는 ‘흠뻑쇼’의 백미였다. 최첨단 시스템에 의해 발사되는 물줄기는 곳곳으로 퍼지며 3만 5000여 명을 모조리 적셨다. 처음에는 물을 피하려 노력하던 이들도 일단 물줄기를 맞고 난 후에는 그 분위기에 젖어 오히려 자신을 향하는 물줄기를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싸이는 모든 관객들을 위해 비닐백을 준비했다. 이 비닐백 속에는 생수 한 병과 응원 도구, 그리고 우비가 담겨 있었다. “이 우비는 물을 피하라고 드린 게 아니”라고 운을 뗀 싸이는 “흠뻑 젖은 채로 집에 돌아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처음에는 공연을 같이 즐긴 이들이 함께 타지만, 한 명씩 내리고 결국 나 혼자 남게 된다. 그때는 주변의 시선이 느껴지며 체온이 떨어진다. 그때 입는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오후 6시 30분 시작된 공연은 약 두 시간이 지난 8시 30분이 지날 무렵 ‘본 공연’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본 공연보다 더 긴 ‘애프터 파티’를 즐기는 것이 ‘흠뻑쇼’의 공식이기 때문이다.
싸이는 “노래가 끝났을 때 나오는 여러분의 함성 소리 길이가 곧 공연의 길이”라고 관객을 자극했고, “주변 아파트에서 민원이 빗발친다고 한다. 제가 ‘민원’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짧고 굵은 함성을 부탁드린다”고 독려했다.
그렇고 시작된 애프터 파티는 또 다른 쇼의 향연이었다. 듀스의 ‘여름 안에서’가 흘러 나왔고, 잠시 후 싸이는 거대한 DJ 부스를 연상시키는 무대 장치와 함께 재등장했다. 이어 룰라의 ‘3!4!’부터 엄정화의 ‘포이즌’, DJ DOC의 ‘런투유’, 소찬휘의 ‘티어스’, 이정현의 ‘와’,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등 1990년대를 대표하는 댄스곡 메들리가 시작됐다.
싸이와 함께 자라며 1990년대를 풍미한 관객들은 노래방 TV 형태로 대형 스크린에 뜨는 가사를 따라 불렀다.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이 3만 5000명이 함께 즐기는 거대한 노래방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싸이는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등 록 메들리까지 소화하며 앙코르 무대에서만 15곡 넘게 내달렸다.
‘흠뻑쇼’와 함께 한 화려한 게스트는 이 공연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였다. 서울 첫 날 공연에는 가수 제시와 화사가 등장했다. 제시는 싸이가 속한 피네이션과 계약이 만료됐음에도 의리를 과시했고, 얼마 전 전 소속사를 떠난 화사는 이 무대에서 싸이와 전속계약을 체결하는 깜짝 퍼포먼스를 곁들여 관객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둘째 날에는 그룹 에픽하이, 로꼬와 그레이가 공연장을 찾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을 장식한 게스트는 로꼬·그레이와 비(정지훈)였다.
이날 싸이는 “24년 전 작곡한 곡이 팔리지 않아서 ‘내가 부르고 끝내자’라고 생각하며 선택한 가수를 이렇게 오래할 줄 몰랐다. 오늘이 제 전성기 같다”고 진심 어린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여전히 톱가수로 활동 중인 자신을 위해, 그런 싸이를 응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관객들을 향해 ‘챔피언’을 관객들에게 불러주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아울러 싸이의 공연은 1984년 개관 후 약 40년의 역사를 가진 올림픽주경기장의 리모델링 전 마지막 공연이었다. 싸이가 그 마침표를 찍은 주인공인 셈이다.
한편 ‘싸이흠뻑쇼 2023’은 7월 15일 전남 여수 진남종합운동장, 22일과 23일 경기 수원 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 29일 충남 보령종합경기장, 8월 5일 전북 익산종합운동장, 8월 12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 8월 19일과 20일 대구스타디움 주경기장, 8월 26일과 27일 부산 아시아드 보조경기장에서 전국투어를 이어간다.
안진용 문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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