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총알, SNS에 퍼진 억측들
2022년 7월 8일 오전 11시 30분. 총성과 함께 주위에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베 전 총리가 선 채로 뒤를 돌아보자 두 번째 총성이 울렸고, 결국 아베 전 총리는 앞으로 쓰러졌다.
아베 전 총리가 피격을 당하는 충격적인 상황은 동영상으로 촬영돼 인터넷에 공유됐다. 지금도 다수 남아 있으며 관련 게시물에는 어김없이 음모론적 댓글이 달린다. 대체로 “현장 인근 건물 위에 전문 저격수가 따로 있다” “야마가미 피고는 ‘미끼’일 뿐이고 진범은 외국 첩보원이다” “불편한 진실을 수사 관계자들이 숨기려 한다” 등으로 요약된다.
현장에 있던 청중을 수상한 사람으로 몰아간다거나, 지역 의원의 이름을 거론하며 “첩보조직의 협력자”라고 비난하는 댓글도 눈에 띈다. 해당 의원은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실무근”이라며 어이없어했다.
이 같은 음모론은 피격사건 직후 단편적인 정보가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근거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아베 전 총리가 맞은 총알의 위치다.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야마가미 피고가 발포한 2발의 총탄이 아베 전 총리의 왼쪽 팔과 오른쪽 목 앞부분(右前頸部)에 맞았다”고 한다. 야마가미는 아베 전 총리의 후방 약 7m 지점에서 사제총을 1차 발사한 뒤 약 5m까지 접근해 2차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문은 여기서 제기된다. “사건 당시 영상을 보면 아베 총리는 왼쪽으로 고개를 살짝 틀고 있기 때문에 야마가미가 있던 위치에서는 목 오른쪽 측면을 도저히 맞힐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정확히는 목 오른쪽이 아니라 목의 중앙선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친 위치”라면서 “영상 분석을 통해 탄환이 맞은 순간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야마가미 피고가 서 있던 위치와 총알이 맞은 곳에 모순은 없었다”는 설명이다.
총알의 행방도 의혹을 부추긴다. 아베 전 총리는 2발의 총알에 맞은 것으로 보도됐지만, 사법 해부에서 실제로 발견된 총알은 1발뿐이었다. 치명상이 된 왼쪽 상완부로 들어간 탄환이 발견되지 않은 것. 일부 네티즌들은 “아베 전 총리가 쓰러진 뒤 수상한 인물이 달려왔다”면서 “그 인물이 암살용 고압가스총을 사용해 마지막 숨통을 끊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따라서 체내에서 총알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추측이다.
그러나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총격 현장에서 헬기로 이송되는 구급 조치 과정에서 총알이 몸 밖으로 나온 것 같다”고 한다. 관계자는 “당시 가슴을 절개한 후 심장 마사지를 했고, 대량 출혈과 함께 총알이 손실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살해 동기가 비약이 심하다는 점도 음모론에 힘을 실어준다. 야마가미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에 빠진 어머니가 거액의 헌금을 해 가정이 파탄 났고, 아베 전 총리가 통일교와 연관 있다고 생각해 사건을 저질렀다”며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범행 동기를 진술했다. 이에 “배후조직이 따로 있다” “야마가미가 다른 공모자로부터 지시를 받은 것”이라는 음모론이 나왔다.
하지만, 일본 경찰은 야마가미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한 결과 ‘계획적인 단독범행’이라고 결론지었다. 수사 간부는 “(단독범행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지만 모든 것을 발표하면 공판에 영향을 미쳐 불리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수사 상황 비공개가 음모론 양산
역사에 남을 대형 사건사고에는 음모론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1963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사건에 CIA(미 중앙정보국)가 연루됐다는 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일본에서도 1997년 고베에서 발생한 연쇄아동살해사건에 ‘진범이 따로 있다’는 추측이 무성했다. 1985년 일본항공 점보기가 군마현 산등성이에 추락해 520명이 사망한 참사와 관련해서는 ‘미군이 격추했다’는 음모론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의하면 “야마가미가 쏜 총알이 아베의 목에 명중한 사실이 여러 CCTV 영상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고 한다. 3D 영상 재현에서도 검증돼 ‘제3자의 관여’는 부정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수사당국이 공판 전에 자세히 발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일본 경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으며, 검찰이 기소 단계에서 일부 밝히거나 재판 과정에서 나오는 식이다. 쟁점을 정리하고 심리할 증거를 좁히는 공판 전 정리 절차도 통상 비공개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렇듯 수사 과정에서 명쾌한 설명이 없다 보니 음모론을 양산하게 됐다”면서 “중대 사건을 둘러싼 형사 사법의 정보 공개가 과제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쓰카하라 에이지 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사건 직후나 용의자 기소 후 CCTV 영상 및 상세한 수사자료가 웹사이트 등에 공개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며 “사실이 ‘블랙박스화’ 돼 있는 기간이 길면 음모론이 퍼지기 쉽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적 논란이 될 만한 중대 사건은 가능한 한 사실을 밝히고 재판 과정도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야마가미 피고와 다른 인물을 진범이라고 한 다음, 그 인물을 특정하는 내용이 동영상 사이트나 마토메(로그 정리) 사이트에 퍼져 있다”고 한다. 광고 수입을 노리고 자극적으로 짜깁기한 것들이 적지 않다. 산케이신문은 “이러한 꼼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들만의 세상’ 음모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인터넷 상 한정된 커뮤니티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교류함으로써 특정한 사상이나 정보만을 진실로 믿는 경우가 많다. 미국 헌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은 이렇게 틀에 갇힌 사람들을 ‘에코 체임버(Echo chamber)’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요컨대 좁은 방에서 내 의견에 동조하는 의견이 메아리처럼 반복되고,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긴키대학의 도모 다이스케 교수(정보윤리학)는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며 “일단 음모론이 유포되면 그에 대한 정보만 도입하고 다른 정보는 배제하므로 진실로 착각하게 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SNS 보급으로 이러한 에코 체임버 효과가 증폭되고 있다고 한다. 도모 교수는 “본인의 판단력을 과신하지 말고 가치관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며 언제든지 뒤로 돌아갈 여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